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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Apr 07. 2017

피렌체 병에 걸린 사람들

피렌체 사람들은 피렌체 병에 걸려 사는 것 같다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피렌체로부터 #1


 이른 아침, 찬 공기에 코가 살짝 시려온다. 일어나기 싫은 늦겨울 2월 날씨에 오늘도 투어 고객을 만나기 위해 간단히 씻고 집을 나선다. 오전에만 일하는 아파트 관리 아저씨와 아침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파트의 유일한 동양인을 살갑게 대해주는 아저씨와 몇 마디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서둘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향하는 트람을 탄다.

 언제나 그랬듯 기차역 안에는 떠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떠나거나 닿거나 하나같은 설렘을 안고서.

시뇨리아 광장에서


 격자로 된 피렌체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중세와 르네상스시대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벽안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굳건할까. 어째서인지 만져봐야 할 것 같은 호기심에 건물에 손바닥을 대고 스쳐 지나간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를 비롯해 피렌체 도심의 주요 명소들은 오백 년 전 르네상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눈에 띄게 낡았다 싶은 벽의 건물엔 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지만, 견고하고 단단해 불도저가 밀어도 끄떡없을 것 같다. 분명 이 건물을 지은 이들은 적의 침입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로 등록되어 있는 피렌체는 그 자체가 미술관이다. 무심코 꺾은 골목 어귀에 16세기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거나 집 앞 슈퍼 옆 작은 분수대에 중세 시대에 조각했을 법한 그리스 신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종교화이며,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프레스코화는 붓으로 도화지에 그리듯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석회질 반죽을 벽에 평평하게 펼친 뒤 밑그림을 그리고 붓으로 물감을 찍어 색을 스며들게 하는 기법이다. 그런 그림은 훔쳐갈 수도, 떼어 내 미술관에 전시할 수도 없다.

 간혹 지진으로 인해 훼손된 건물에서 그림이 그려진 벽을 박물관으로 통째로 옮겨와 전시하는 경우도 있고, 벽 위의 그림들에 투명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씌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도 한다. 그림 밑에는 그림의 기법과 내용, 추정 되는 제작 시기를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골목은 그대로 중세 미술관이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정원 속 미술관을 걷는 것이다. 이 도시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정도다. 투어객들에게 피렌체를 소개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감격에 겨워 울컥하기도 하는데, 그게 몇 번이었는지 세지도 못할 지경이다.


 어느새 피렌체 병에 걸린 걸까. 피렌체 사람들은 피렌체 병에 걸려 사는 것 같다. 집 앞 마트에 물 하나를 사러 가면 그 앞 골목에 15세기 조각품이 서 있고, 자주 가는 책방 골목 벽에는 17세기 종교화가 그려져 있다. 미술관에 사는 피렌체 시민들은 자기 도시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다른 도시를 가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 한다고 한다.

 내가 겪어본 피렌체 사람들은 꽤나 도도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조상들이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이고, 일찍부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그뿐인가, <데카메론>을 남긴 근대 소설의 선구자 보카치오, 정치, 시, 음악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며 <신곡>이라는 대 희곡을 남긴 단테 알리기에리가 이 작은 도시 출신들이다.

베키오 다리를 그리는 젊은이


 이탈리아 표준어도 피렌체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1861년 3월 17일, 이탈리아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이래 1865년부터 1870년까지 이탈리아의 수도는 피렌체였다. 피렌체 시민들이 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척추가 바르게 펴져있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 그래서일까 피렌체 시민들에게 혹시나 ‘당신은 이탈리아 사람인가요?’ 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항상 ‘네. 저는 피렌체 사람이에요.’ 하고 말한다. 마치 ‘한국 분이신가요?’ 라고 물어보면 ‘네. 저는 부산사람입니다.’ 라고 하듯이 말이다.

베키오 다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태어난 곳에서 초중고를 다니고 친구들은 모두 평생을 함께한 가족 같은 동무이며, 대학교는 집과 가까운 곳으로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동네에서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그 자식에게 집과 일을 물려준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나를 거쳐 내 아이와 손자까지 으레 물려받게 될 것이다. 행여나 학교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도시를 선택해 살아야 했다면 노년이 되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피렌체 병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도시에서 앓고 있는 고약한 병일지도 모른다. 


레푸블리카 광장


 피렌체의 작은 옷 가게에서 바지를 사던 날이었다. 주인이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답했더니 마치 유명인을 본 것처럼 ‘와! 그 나라는 미래의 도시잖아. 그 곳에서 온 거야? 거긴 어때?’ 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캐물었다. 문득 몇몇 사람들은 자기 도시가 미래의 도시로 발전되기를 바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묶여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좁은 골목이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아니면 지하철이라도 간절히 바라진 않을까? 현대적인 건물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아닌가. 그 의문은 일단 나만의 것으로 남겨둔다.





글/사진 Stella Kim

글쓴이 Stella Kim은 짧은 여행이 아쉬워 낯선 도시에 닿으면 3개월 이상 살아보고자 했다. 호주를 시작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태국에 머물렀다.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와 4년째 피렌체에서 거주하며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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