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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Jul 10. 2023

숨고르기 지침서

WRITER 차이트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속하는 여정 중간에는, 모두가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고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구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왜냐하면 계속 나아가며 생기던 잡음들로 조금씩 낮췄던 자신에의 기대치를 다시 조금이나마 올려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NCT 127은 적어도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하다.


  NCT 127은 SM 최초로 힙합과 랩을 위시한 보이그룹으로, 부피감 있는 전자음과 고난도 춤이 주축인 그룹이다. 이들은 작년 9월 중반 정규 4집 <질주(2 Baddies)>와 그 리패키지 <Ay-yo>를 올 1월 발매하고, 8년차에 접어든 활동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지금에 접어들며 유닛과 솔로로 멤버들을 차례차례 다시 내보내고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환기하고 있는 중이다. 


ⓒ SM ENTERTAINMENT

 올 4월 17일 데뷔한 유닛 'NCT 도재정'은 이러한 행보의 첫 주자라고 볼 수 있다. 보컬 라인인 도영, 재현, 정우로 이루어진 유닛이며, 음반 전체의 이미지와 악곡 기획에 걸쳐 살펴본다면 멤버들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트랙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타이틀 <Perfume>은 보컬에 능한 셋이기에 소화할 수 있는 수많은 음정 변화와 아카펠라, 그리고 겹겹의 화음층을 자랑한다. 여기에 "남성 향수"에게 으레 기대되는 이미지를 의식했다. 흐릿하면서도 묵직한 인상이 만드는 농밀한 분위기를 위시해, 멤버들의 이미지적 합에 잘 어울릴 법한 "전형적인 섹슈얼리티"를 구현하는 데에 주력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획은 끝까지 큰 탈 없이 흘러간다. 나머지 하위 트랙 역시도 대부분 꽤 차지면서도 끈적한 사운드의 R&B가 주도하고 이 위에서 세 멤버의 보컬이 만드는 멋스러운 그루브가 기획이 요구하는 바를 성공적으로 구현한다. 여기에 전반적으로 곡 제목부터 가사, 그리고 향수를 뿌리는 제스처의 안무까지 모두 명료한 전형성과 직관성을 가리킨다. 여러모로 잘 쌓아올린 고차원적 의미 설계에서 오는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특별함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원래부터 잘하는 것'(보컬 역량 활용)과 '기본적인 면'(직관적 컨셉 설정)에 집중한 결과물은 오히려 썩 만족스럽다. 이전작과의 대비효과가 있음을 감안해도 적당히 잘 뽑힌 수작임은 분명하고, 다시 그들의 발자취를 정리감 있게 마무리해보기에 더할 나위 없다. 


이미지 아래 링크를 누르면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영상 링크: https://youtu.be/vN2KhyTuCAE 


 이후 나온 태용의 <샤랄라(SHALALA)> 역시 비슷한 결을 잇는다. 여전히 선명한 형광 컬러에 난해한 착장을 시각적 마케팅에 활용하지만, 이 시각적인 요란함을 요즘 유행인 미니멀한 비트 특유의 청각적 차분함으로 덮는다. 춤 역시 특별한 고난도 동작이나 파워 과시보다도 쉬운 동작들에 기본 바운스와 리듬 위주로 짜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숙련자만이 선보일 수 있는 탄탄한 기초 역량이 있어서 나올 수 있는 그림인데, 특히 14년차 베테랑 댄스 트레이너이자 유튜버인 '루다 크리스'는 이를 두고 '안무를 짠 리정의 "태용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곡'이라 설명했을 정도다.(위 영상 0초~5초) 가사도 그렇다. 이 음반은 트랙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서사를 알지 못해도 그저 감상 자체만으로도 편안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타이틀 곡을 포함한 모든 곡의 메세지가 자전적이어서 굳이 이해나 납득을 동반할 필요가 없거나, 혹은 반대급부로 굉장히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춤도 노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 의도된 낮은 장벽이 자연스레 매력으로 다가온다. 결국 태용 역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과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이미지가 주는 원형을 여러 번 꼬고 비틀어 전달하기보다 1차적인 기본과 본인들의 장점에 집중한 행보는 NCT 127이 숨을 고르는 양상에 대한 민낯 그 자체다. 


ⓒ SM ENTERTAINMENT

 물론 <PERFUME>에 비해 <샤랄라>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플로우를 어색하리만치 과하게 자주 끊어대는 타이틀 곡의 프리코러스와, 본인의 톤에 대한 고려 없이 억지로 찍어 누르기만 하는 로우톤의 래핑에 불호의 반응이 많다. 전반적으로 첫 음반을 상당히 공들였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선보이면서 대외적으로는 이래저래 모든 곡이 고르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샤랄라> 역시도 <Perfume>에 준하는 그만의 역할이 있다. 어떤 것일까? 피로할 정도의 부피감 있는 전자음과 알 수 없는 가사만을 "네오함"으로 말하던 전작과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 분명히 높이 살 부분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독특한 타악기 음으로 만들어낸 생소한 장르와 그 분위기가 "네오함"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그리고 이 외에는 전부 힘을 뺀 초경량으로 내놓으며 결과적으로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 있어 "생소하지만 난해하지는 않은"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지속적으로 "네오함"에 대한 독자적 해석과 이해도 없이 진행되었던 이전과는 다르다. 이번만큼은 새로운 방향과 관점으로 그 표현의 새 지침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태용의 <샤랄라>는 솔로이스트로서도, 그룹 디스코그래피의 일부로서도 갖는 의미가 크다. 바로 그 부분이 <샤랄라>만의 역할이라고 필자는 본다.


 아쉬움이 매 활동마다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중간에서 환기와 휴식을 적절히 취하며 다음 목적지를 바라 볼 시야와 판단력을 온전히 선명하게 갖춘 환경을 스스로 마련했다는 그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다. "네오함"의 색다른 해석과 표현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샤랄라>와 자기탐구의 충실함이 묻어나는 <PERFUME>은 이들을 시작점의 초심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원점"에 데려다 놓았다. "원점"과의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새로운 원점"이 더 나은 곳으로 이들을 데려다 주기를 바란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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