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차이트
토성(土星; Saturn)을 아는가? 우주를 그리라면 다들 약속한 듯 그리는 그 행성 말이다. 큰 고리가 그리도 이목을 끄는지 지금도 이 별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우주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데 흔히 쓰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모습과 반대로 토성은 점성술에서 대대로 흉조(凶兆)다. 왜 이런 인식이 생겼을까?
이 별의 공전주기는 약 30년이다. 토성이 그 사람이 태어난 날에 있던 위치와 똑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30년 정도가 걸린다는 뜻이다. 그동안 사람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고, 성장하고, 자립할 기반을 다진다. 수많은 일을 겪으며 세상이 주는 정신없는 신고식을 마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삶에서 스스로의 비중이 커진다. 따라서 이를 인생의 제 2막이라고 보는 바, 자립 이전의 시기를 크게 묶어 인생의 첫 장 삼는다. 그동안 험난했다면 재기의 기회가 있을지, 순탄했다면 곧 나타날 걸림돌은 없을지... 인생의 변곡점에서 30년을 중요한 시기로 보고, 이 때가 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걱정을 안고 토성이 앞으로 자기 운명을 어떻게 가를지 점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토성은 개인의 길흉을 점치는 기준이 되었다.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서른 살 전후로 일어나는 불운에 'Saturn Returns(토성이 돌아왔네).'라고 하기도 한다. 또, '돌아온다'는 의미나 고리가 '원형'이기 때문인지 때가 되어 '돌려받는' 업보(Karma)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신 취급하지만 모두가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까지 우리나라의 '아홉 수'와 비슷한 개념이랄까.
2024년은 케이팝 팬들에게 정말 기쁜 한 해였다. 올 9월 태양(TAEYANG)이 단독 콘서트에서 빅뱅(BIGBANG)의 다른 두 멤버와 보인 깜짝 합동무대가 화제였다. 상반기부터 솔로 컴백 소식을 뿌리던 지드래곤은 얼마 후 정말로 솔로로 차트에 얼굴을 비췄다. 이내 '집대성' 유튜브 개설로 대성까지 단체소식을 향한 노를 젓더니, 결국 당해 MAMA에서 3인조 빅뱅의 완전체 무대를 이뤄냈다. 이 뿐인가? 비슷한 방식으로 2년 전 코첼라(COACHELLA)에서 깜짝 신호탄을 쏘아올린 2NE1도 YG와의 재계약으로 올 11월 월드투어에 올랐다. 여기에 솔로로 연이은 홈런을 친 블랙핑크(BLACKPINK)가 내년 팀 컴백을 예고하면서 YG는 간만에 환한 미소로 올해를 마무리지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겹경사는 비단 YG의 일만은 아니다. 2014, 15년도로 데뷔 시점이 비슷한 두 걸그룹이 각자 활동종료 4년 만에 재결합을 알렸다. 올 3월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모인 러블리즈(Lovelyz)는 기세를 몰아 11월 말 단독 콘서트를 개최, 이를 성황리에 마쳤다. 여기에 여자친구(GFRIEND)가 내년 예정된 매한가지의 소식을 알리며 팬덤은 흥분의 도가니다. 연차가 비슷한 피에스타(FIESTAR)의 멤버들 역시 모두 모였다. 활동 종료 6년 만의 일이다. 올 8월 멤버 차오루가 모은 돈으로 기존 곡 <짠해>의 저작권을 구매, 이를 편곡한 신곡으로 다시 뭉쳤다. 연이어 EXID와 B.A.P. 또한 각각 5년 만에 무대에 오르거나 신보를 내면서 반가운 행렬이 이어졌다.
사실 이런 흐름이 급작스럽지는 않다. 4년 전부터 바람은 조금씩 불고 있었다. 2020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유튜브 예능 '문명특급(MMTG)'이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시리즈를 진행하며 물꼬를 튼 것이다. 여기서 유키스(UKISS), 티아라(T-ara), 애프터스쿨, SS501, 나인뮤지스, 나르샤 등이 기성 곡으로 무대에 서는 기회를 누렸다. 이 모습을 본 케이팝 팬들은 한껏 고무되었다. 모두가 바랐으나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 못하던 재컴백이 잠시나마 실현된 것이다. <우리집> 역주행에 이어 '문명특급' 출연까지 탄력 받은 2PM 역시 팀 공백 5년 만인 2021년 금의환향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해 말 워너원(Wanna One)이 'MAMA'에서 3년 만에 다시 모여 무대를 꾸미는 일도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 워너원의 인기를 다시 실감할 정도로 회장에 가득 찬 흥분이 기억에 선명하다. 같은 때 씨스타(SISTAR)는 완전체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 올 초 유닛 '씨스타19'로서도 돌아오며 잠정 중단된 유닛 단위의 행보도 진척을 보였다.
그 후로는 더욱 이렇다 할 만한 굵은 가닥이 잡혔다. 2022년에는 소녀시대와 카라, 틴탑, 2023년에는 인피니트가 정식으로 팀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이들은 음악방송 및 각종 홍보 활동까지 열심이었는데, 이렇게 긴 단체활동은 더 이상 이전만큼의 일정 조율이 어려움을 생각하면 매우 감동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상기한 그룹의 경우는 모두 멤버 전체가 재결합을 향한 뜻이 확고함을 여러 번 어필한 적 있는데, 이 유대관계가 팀을 끈끈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힌다. 특히 카라(KARA)는 긴 텀을 주지 않고 2년이 지난 올해도 다시 돌아왔다. 올 하반기 한일 양국에서 신곡을 내며 작지만 꾸준하게 팀 일정을 이어간 것이다. 심지어 이 와중, 고(故) 구하라의 목소리가 녹음된 곡까지 실으며 팀의 아픈 손가락을 치유해가는 과정도 작은 화젯거리였다. '그 시절 모두의 아이돌'인 엑소(EXO)도 빠지지 않았다. 작년과 올해 한 번씩 완전체 팬미팅으로 4년 만의 단체인사를 건넸다. 그룹 활동 수명을 길게 보는 SM답다고 할까. 당연히 때때마다 팬덤은 한껏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황금기'를 위시한 르네상스(Renaissance; 과거 문화를 그리는 부흥운동의 대명사) 흐름이 이어져 많은 팬들에게 선물 같은 무대가 주어졌다. 그러니 지금의 다양한 재결합 소식이 쏟아지기 훨씬 전부터 각자의 결집을 위해 분주했을 이들의 노력 역시 빠질 수 없다.
선후배, 가수와 팬 할 것 없이 서로의 붐업(Boom-up) 계기가 되어주는 일이 반복되며 업계는 전례 없는 활기를 띠었다. 올 11월에도 동방신기(TVXQ!) 출신의 김재중(영웅재중)과 김준수(시아준수) 듀오가 콘서트를 여는 등 연말까지 복각 랠리는 이어졌다. 과거 회사와의 분쟁에서 지킨 팀명으로 계속 활동하던 신화(SHINHWA)를 포함해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 f(x) 등도 'SMTOWN LIVE 2025'의 공개 라인업에는 없었지만 일시적 재결합 무대를 선보일 것으로도 예상된다. 해체 수순을 밟은 다른 SM 소속 그룹도 많으나 이들만은 30주년 헤리티지를 기념하는 이 '브랜드 필름'에 SM 소속 그룹과 함께 비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SM의 패밀리콘서트와 함께 30주년 자축의 일환인 이 브랜드 필름에 소개된 활동종료 그룹만큼은 적어도 출연 확정으로 담긴 것 아니겠냐는 추측이다. 지난 SM의 30년 간을 함께 해 온 일부로서 참여가 머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국제적 흐름조차 같은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는다는 점이다. 특히 근현대 음악사의 중요지점에 위치한 이들의 낌새가 두드러진다. 그 중에서도 브릿 팝(Brit Pop)과 얼터너티브 록, 메탈 등의 음악을 아우르는 쪽이 그렇다. 불과 작년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에도 타이틀 OST로 수록된 의 원곡자 '라디오헤드(Radiohead; 1993 데뷔)'가 올해 재결합에 대한 운을 띄웠다. 이들은 영국 얼터너티브 록 씬에서 우울한 류의 록 음악 열풍을 일으킨 밴드인데, 아직도 건재한 인기와 별개로 2020년대 들어 단체로서는 뜸했다. 그런데 올 9월 멤버 콜린(Collin Greenwood)이 "우리는 두 달 전쯤 런던에서 예전 노래들을 합주(rehearsal)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말을 SNS에 남긴 것이다. 의미심장한 뉘앙스지만 팬들은 이른바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미 이틀 먼저 같은 스트림의 '린킨 파크(LINKIN PARK)', 갤러거 형제로 유명한 브릿 팝 밴드 '오아시스(Oasis)'가 연달아 활동재개 소식을 쏘아올리며 씬을 달구는 중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에서 과거의 것을 복각하는 흐름은 늘 있어왔다. 그러니까 팬덤만 과거를 추억하고자 해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체 활동으로, 솔로에서 얻지 못했던 반응과 이득을 다시 꾀하고 싶은 가수도 있고, 당사자(아이돌 그룹 멤버) 간 유대에서 나오는 사적 즐거움 역시 동반되니 이해관계가 맞은 것이다. 회사도 검증된 안정성이 마음 편하다. 케이팝의 세 주축이 모처럼 죽이 맞은 만큼 이들이 날로 먹는 삼인사각 게임을 진행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런 와중 조금 씁쓸하게 느껴지는 구석은 '구관이 명관'이라며 기성의 것에만 기대는 실상이다. 새 것(그룹)을 시도하는 일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는 탓에 점점 업계의 자원 순환이 더뎌짐은 예정된 수순이기에 참 착잡하다. 신인 개발, 투자가 위축되고, 새로움을 향한 불신이 기대를 잡아먹을 정도가 되면 시장 수명이 다했다는 징조가 되기 때문이다. 시장이 불황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무작정 유행에 올라타 너도나도 재결합만 외침은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티아라(T-ara)처럼 여전히 복귀 전에 논란에 대한 해명이나 하라는 항의가 소속사에 빗발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던 풀어야 할 미제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그룹 활동이 얼마나 좋았고에 관계 없이,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을 아름답다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재결합이 무조건 적인 답은 아니다. 마마무(MAMAMOO), 오마이걸(Oh my girl), 우주소녀(WJSN)를 보면 이들은 근 몇 년 간 팀 활동을 쉬는 분위기다. 누군가 강요하거나 간절히 바란다고 환영 받는 컴백이 될 보장은 없는 것처럼 그들만의 때 역시 따로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업앤다운(Up&Down)이 있고, 이는 조절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아이돌의 수명은 기본적으로 5~7년이다. 길어도 10년 이상 유지되는 그룹이 드문 상황에서 케이팝에 몸담으며 느낄 '토성 주기'는 당연히 더 짧다. 심지어 모든 일에 기복이 있는 것처럼 토성의 움직임 역시 개인의 바람과 상관 없다. 미룰 수도, 막을 수도 없다. 변화는 더욱 시시각각 나타나고, 그만큼 마음 추스르기 어려운 곳이 케이팝 업계다. 각자의 토성이 돌아오는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적 취향으로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기를 갉아먹는 감정이 되지 않도록 나름의 대처를 해 둘 필요는 있다. 재결합의 기쁨을 단타적으로 누리고 끝내기보다, 이제는 장기적인 팬덤문화를 위해 다음 토성도 미리 마주할 준비는 해야 한다. 토성은 더 이상 흉조도 아니고, 아름다운 별도 아님을 이젠 모두 알 때가 됐다. 어떤 방향으로의 변화던, 단지 각자에게 어떠한 때가 돌아왔을 뿐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 없지만 각자의 타이밍을 영리하게 잰다면 토성은 이제 그저 모든 시작과 끝, 변화의 효시(嚆矢)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길흉(吉凶)의 분기점마다 과열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모두 건강한 덕질 방법을 찾아 저마다의 성장을 이뤘으면 좋겠다.
시청각 자료
Wikipedia. 2007. "토성". 2007년 12월 11일. 사진. https://ko.wikipedia.org/wiki/%ED%86%A0%EC%84%B1
MMTG 문명특급. 2020. "숨듣명 삐리빠빠". 2020년 10월 3일. 동영상. https://youtu.be/Ijxgl_OkaYk?si=T0lVm1pe9V3TsYQm
놀면 뭐하니?. 2024. "놀면 뭐하니 러블리즈". 2024년 6월 29일. 동영상. https://youtu.be/6ytyJxwicr8?si=0ExFV7TCpA4GrZlC
Google. 2024. "Oasis". 2024년 8월 27일. 사진. https://oasisinet.com/
Google. 2024. "Linkin park". 2024년 8월 25일. 사진. https://www.linkinpark.com/
Google. 2024. "y2k". 2024년 12월 13일.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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