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유키
“벌써 12월이라고?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12월이 되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연초, 예쁜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 적어 놓은 일 년 동안의 목표를 모두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필자는 “어떤 형태로든 사랑은 했을 거야”라고 위로하고 싶다. 하루하루 쫓기듯 바쁘게 살아 가는 현대인에게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은 사치 또는 그저 소모적인 일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아이유는 어딘가 허전한 상태로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우리에게 삶의 사이사이에 반짝 피어나는 사랑에 대해 노래하며 이들을 토닥인다.
2021년 12월 29일 연말, 아이유는 스페셜 미니 앨범 ‘조각집’을 발매했다. 1번 트랙 ‘드라마’부터 5번 트랙 ‘러브레터’까지 총 5곡이 수록되어 있고, 타이틀 곡은 3번 트랙의 ‘겨울잠’이다. 이는 구태여 바깥에 내놓지 않았던 아이유 자신의 이십대 그 사이사이 조각들이 잘 맞춰진 그림 같은 앨범이라 소개되고 있다. 2022년이 되면 30대로 접어드는 아이유가 자신의 20대를 조각집에 더욱 뚜렷하게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조각조각을 펼쳐 보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꼈을 사랑에 대한 감정이 순수 한글만으로 담담히 적혀 있다.
https://youtu.be/AkugjXUj5sM?si=W0T61BOCA1tDNaVA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 힘을 다해 빛나리
아이유가 스무살에 쓴 ‘드라마’라는 곡의 한 구절이다. 실연을 하고 사랑에 대해 비관하던 친구가 잠시나마 웃었으면 하는 마음에 만든 곡이라고 한다.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사랑할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온다면 사랑하는 내 모습이 누구보다 밝게 빛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을, 나의 꿈을, 한 사람을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사랑했던 무언가를 잃었다 하여도, 다시 사랑할 기회는 언제든 찾아 오기 마련이다. 이때 두려워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해 사랑을 잃었던 독자들이 있다면, 드라마라는 곡의 따뜻한 속삭임을 듣고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
https://youtu.be/bJYW68ogcaA?si=b0fMl4HnIMg9SICG
다음 정거장에서 만나게 될까, 그리워했던 사람을
아이유의 스물다섯과 스물여섯 사이에 만들어진 ‘정거장’이라는 곡이다. 아이유는 이 곡에 대해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의 캐릭터 ‘지안’과 인간 ‘지은’ 사이에 정거장이 존재하고, 정거장 하나만큼의 거리가 둘을 이었다고 설명한다. 지안이를 연기하며 지안과 지은이 닮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이 곡에 대한 해석은 내 안의 여러 자아의 연결에만 머물지 않고, 타인과의 연결로 확장할 수 있다. 삶은 버스이고, 내가 잠시 멈춰 있을 여러 정거장에는 나의 버스로 승차하는, 나의 버스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떠나 버린 인연이 다시 나의 버스에 머무르길 바라는 아이유의 이야기는 시절인연이었던,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https://youtu.be/FXfvbMEWkhk?si=zSvPqams5XrkPE18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
아이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떠나 보냈던 스물일곱, 스물아홉 사이에 쓰여진 ‘겨울잠’이라는 곡의 가사이다. 몇 번의 헤어짐을 겪고, 먼저 떠나 보낸 그들을 그리며 보냈던 첫 1년을 담은 곡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 곡에는 겨울잠을 자는 ‘너’를 위해 봄에는 못다 핀 꽃송이를, 여름에는 별 띄운 물 한 잔을, 가을에는 빼곡한 편지 한 장을, 겨울에는 보고 싶은 그 사람에 대한 혼잣말을 띄워 보내는 모습이 나타난다. 아이유는 겨울잠을 녹음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곡이라고 소개한다. 최대한 간단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평소와 달리, 이 곡을 녹음할 때에는 굳이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레기도, 시리기도 한 연말에는 꼭 보고 싶은 이름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름답지만 무심코 내려 쌓이는 눈 때문일까? 겨울잠은 그 차가운 겨울에 듣는 이를 차분히 감싸 주는 따뜻한 안식처 같은 노래이다. 이번 연말에는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꼭꼭 담은 사랑 편지를 보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ttps://youtu.be/HP4kVAiQLEw?si=-7msA9RAYZmHTOlU
문득 걸음이 멈춰지면 그러면 너도 잠시 나를 떠올려 주라
아이유가 ‘보보경심 려’를 촬영했던 스물네 살 즈음 쓰여진 ‘너’라는 곡이다. 산골짜기에서 며칠 동안 드라마 촬영을 하던 도중 멀리 있는 유인나가 너무 보고 싶어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소개한 노래 속 한 표현에는 사랑하는 친구에 대해 과도하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지만, 그 마음 속에는 나를 마음 한 켠에 남겨 주길 바라는 간절함과 애틋함이 묻어 난다. 그저 그 사람에게 따뜻한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떠올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우정을 그렸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다. 서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아끼고, 응원한다면 그것 또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https://youtu.be/4x7BrWTUmZo?si=q5896gujW8tUgJm-
좋아하던 봄 노래와 내리는 눈송이에도 어디보다 그대 안에 나 머물러 있다오
아이유가 스물여섯에 시작하여 스물여덟에 완성한 ‘러브레터’라는 곡의 일부이다. 본래 가수 정승환에게 선물한 곡을 아이유가 리메이크하면서 재탄생한 러브레터는 생의 끝을 같이하고 있는 노부부가 서로에게 남기는 마지막 연애 편지를 담은 노래이다. 이 곡에는 오랫동안 날 알아 온, 더 알려고 해 준 그들에게 감사함과 따스함을 전하려는 아이유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을 테지만, 말과 행동으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어쩌면 낡아 있을 나의 오래된 관계를 되돌아 볼 수 있다. 이번 연말에는 나의 인연에게 손을 내밀어 언제든 깊이 연결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아이유는 이전에 ‘인간은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시니컬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어요.’라며 사랑에 대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지난 2024년 9월 22일에 진행된 콘서트에서도 ‘항상 미움이 솟구쳐 오르는 순간에도 결국 그 끝에는 사랑이 이기길 바란다’며 여전히 삶의 의미를 사랑의 따스함에서 찾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유는 사랑이 단순한 낭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가치 있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연말을 맞아 우리 모두 내가 해 왔던 사랑,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한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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