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오드
나비효과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가져온다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달의 소녀의 〈Butterfly〉는 노래 제목처럼 케이팝 씬에 그러한 나비와 같은 존재였다. 타이틀 〈Butterfly〉가 수록된 이달의 소녀 미니 1집 리패키지 《[X X]》는 온음이 선정한 ‘2019년 연말 결산 올해의 케이팝 앨범’이라는 영예를 안았고, 〈Butterfly〉는 멜론이 선정한 ‘K-POP 명곡 100선’에 69위를 차지하며 케이팝 역사에 당당히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여타 유수의 평론 매체에서도 인정받은 ‘띵곡’이다. 패스츄리 마냥 겹겹이 쌓아 올린 화음과 일렉트로닉 비트가 깔린 베이스 드랍, 후렴을 가사보다 멜로디 위주로 구성하는 등 〈Butterfly〉 속 음악적 도전은 트리플에스 등 후속 세대의 걸그룹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인된 존재다.
필자 역시 이달의 소녀의 명곡을 하나만 뽑자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Butterfly〉를 고르겠다. 이달의 소녀 완전체에 바라던 노래와 이미지 모든 것을 충족시킨 노래이기 때문이다. 프리 데뷔 때부터 던진 ‘떡밥’을 죄다 회수해 전 세계의 소녀들을 향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뮤직비디오는 잊을 수 없다. 이후 프로듀서 제이든 정이 떠나고, 해외 팬덤을 겨냥한 급격한 노선 변화로 기존 음악 스타일을 벗어나 아쉬웠지만, 그들의 서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잘못으로 인해 이달의 소녀가 공중분해 된 이후에도 그들을 향한 응원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쌓아 올린 서사와 음악성이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지만, 걱정과 달리 각자의 자리에서 아티스트로 진화하고 있는 이달의 소녀 멤버들. 각자 또 따로 그려내고 있는 그들의 음악적 비행을 살펴보자.
꿋꿋하게 홀로 선 나비
나비는 날 수 있는 곤충이나 새와는 달리 특이한 비행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불규칙한 비행경로에다가 비교적 느린 속도로 날아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는 환경에 맞춘 유연한 비행으로, 나비에게는 생존 전략이다. 츄와 이브도 마찬가지이다. 첫 앨범이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는 앨범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먼저, 츄는 〈Howl〉이라는 곡으로 아무리 세상이 망해도 둘만 있다면 괜찮다며 첫인사를 건넸다. 츄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본인과 리스너 모두에게 위로를 전하는 곡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그럴 땐 웃음이란 망토를 쓰곤 해 들키고 싶지 않아 나를’이라는 가사가 츄의 아픔을 잘 드러낸 문장 같아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츄의 아카펠라 보컬만으로 시작해 집중력을 높인 〈Howl〉은 신스 팝 기반의 몽환적 사운드에 츄의 편안한 보컬이 덧입혀져 리스너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반대로 다음 앨범에서는 음악적 스타일은 유지하되, 츄의 귀엽고 엉뚱한 매력을 십분 살려 분위기를 환기했다. 〈Howl〉에서는 츄의 진지한 면모를 만날 수 있었다면, 〈Strawberry Rush〉에서는 기존 츄의 발랄한 이미지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앨범의 이야기는 위로를 넘어 서로를 보호하자는 메시지로 이어져 유기적이다. 〈Strawberry Rush〉는 상큼한 멜로디와 매력적인 보컬 톤의 조화로, 츄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대중적 매력을 확실히 증명했다.
마지막으로 츄의 최근 4월에 발매한 〈Only cry in the rain〉을 제일 추천한다. 비 올 때마다 자꾸 꺼내 듣게 되는 마성의 곡이다. 동명의 타이틀 곡이 담긴 3번째 EP 《Only cry in the rain》은 그간 앨범 중 가장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 이번 앨범의 주제 역시 위로로, 메시지는 비슷하다. 이번 앨범은 특히 청춘에게 보내는 위로로, 필자가 많은 공감을 하면서 들은 앨범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만난 첫사랑과의 이야기를 그려 낸 〈Back in town〉, 더 이상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사과하지 말고 움츠러들지 말라는 다소 파격적인 메시지를 담은 〈No more〉, 이외에도 레트로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디스코 팝 〈Kiss a kitty〉, 환상적인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 〈Je t’aime〉까지. 앨범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유기성이 높고, 모든 곡이 타이틀 감인 앨범이라 꼭 들어 보길 바란다.
다음으로 이브는 이전 소속사와의 계약 효력 정지 이후, 무려 2년 만에 나온 첫 앨범을 통해 아이돌의 이미지는 잠시 내려놓고,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여감 없이 드러내 화제다. 실제로 이브는 솔로 데뷔를 할 때부터 팬들에게 솔직하고 자전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앨범에 녹아든 진정성이 통한 것인지 2025년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케이팝 앨범 후보에 오를 정도로 한국 하이퍼 팝을 이끌 신예로 손꼽힌다.
이브의 첫 번째 앨범 《LOOP》는 정해진 시스템이라는 고리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새로운 세상에 내던지는 이브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제목이 《LOOP》인데, 고리 밖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역설적이라 인상 깊다. 포크, 록 등 이브가 처음 도전해 보는 장르 음악을 담아 새로운 매력을 선사했다.
후속 앨범 《I Did》에서는 《LOOP》보다 더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올렸다. 앞선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 《LOOP》의 얼터너티브 비트를 보다 비틀고 뭉갠 하이퍼 팝 〈Viola〉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Viola〉는 이브라는 온전한 형태의 원을 유지하고 싶은 구심력, 즉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고 싶은 이브의 욕망을 묘사한 곡이다. 이 욕심이 뮤직비디오에 잘 드러나는데, 원과 관련한 오브제가 다수 등장해 몰입도를 높인다. 이브는 비주얼 디렉팅에도 의견을 제시해 미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I Did》의 수록곡 〈Dim〉은 올해 3월 미국 '바이럴 50' 차트에서 1위까지 차지하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She doesn't know it yet, but..."밈을 사용한 영상이 틱톡에서 200만 뷰를 넘으며, 음원이 함께 퍼진 것이다. 이렇듯 《I Did》는 ‘해냈다’는 뜻처럼 이브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선보였는데,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긴 앨범이다. 이브는 본인이 갈 길이 멀다며 겸손함을 드러내면서도, 새 앨범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이번엔 직접 작사, 작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더 풍부한 음악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렸다.
첨언하자면, 츄와 이브 모두 앞으로의 앨범에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색깔을 보다 명확히 정립하는 데 방점을 두면 좋겠다. 츄의 최근 음악은 신스 웨이브 장르를 강조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Midnights》 앨범을, 이브의 하이퍼 팝은 찰리 XCX를 연상시키는 등 레퍼런스가 다소 짙게 느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신스 팝과 하이퍼 팝이라는 뚜렷한 장르적 방향성을 갖추고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흡수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아직 2, 3개의 EP만 나온 만큼 앞으로 발매할 정규 앨범에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두 아티스트가 보여줄 음악적 성숙은 케이팝 씬에 풍성한 다양성을 더할 것으로 기대되어 이들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보겠다.
나비도 같이 살아요
나비는 태생적으로 혼자 사는 동물이지만, 월동이나 생존을 위해 모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달의 소녀라는 거대한 꽃밭에서 날아오른 나비들이 다시 한데 모여, 새롭지만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난 존재가 바로 아르테미스(ARTMS)와 루셈블(Loossemble)이다.
먼저, 아르테미스라는 그룹명은 모두 으레 들어 봤을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달의 신 아르테미스에서 따왔다. 이달의 소녀 영문 표기 LOONA가 '달의 신', '달'이라는 뜻의 라틴어 'luna'에서 차용된 이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완벽한 네이밍이다.
아르테미스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모드하우스로 먼저 둥지를 튼 김립, 최리, 진솔 세 명의 유닛 '오드아이써클 (ODD EYE CIRCLE)'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지 클럽 장르로 선보인 〈Air Force One〉은 그들의 새로운 스타일을 담아내면서 'Butterfly'와 'Uncover' 등 이달의 소녀의 명곡들을 탄생시킨 프로듀서 G.high가 참여해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오드아이써클의 상징이었던 '컨버스'를 벗고 '에어 포스 원'을 신는다는 것은 단지 스타일링의 변화가 아니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처럼 하늘 위로 올라가 한 단계 성장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중의적으로 담겨 있다.
선공개 싱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Birth'의 뮤직비디오는 아르테미스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달의 신 아르테미스가 다섯 개의 자아로 분화되어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달의 소녀 시절부터 함께해 'LOONAverse'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영상제작팀 digipedi와의 협업으로, 기존의 세계관에 아르테미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촘촘하게 덧입혀 수작을 만들었다.
4개의 선공개 싱글을 포함한 정규 앨범 《Dall》에 이르러서는 이달의 소녀의 가장 몽환적인 부분만 모아 화려하게 터트린다. 첫 정규 앨범의 모티프가 가장 사랑하는 〈Butterfly〉라니. 앨범에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전반적인 앨범 기획이 〈Butterfly〉에서 시작했고, 〈Butterfly〉의 속편을 자칭하는 트랙 〈Butterfly Effect〉를 수록하는 등 유기성이 좋아 통으로 감상하기 편하다.
6월 13일 발매 예정인 EP 1집 《Club Icarus》를 앞두고, 지난 4월에는 선공개 싱글 〈Burn〉을 발매했다. 전국적인 산불로 인해 발매가 한 주 연기되기도 한 이 곡은 이달의 소녀 《[#]》 앨범의 타이틀로 예정됐던 곡이다. 발매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만큼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곡이다.
이달의 소녀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계승해 발전해 나가고 있는 아르테미스. 모(母) 그룹과의 계보를 대놓고 드러내는 점이 여타 재데뷔 그룹과 차별화되긴 하나 전신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계다. 아르테미스도 이제 막 정규 앨범을 하나 낸 상황이기에 여러 앨범을 내다보면 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해 내리라 믿는다. 달의 여신들의 새로운 챕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루셈블도 그룹 이름부터 이달의 소녀 DNA를 품고 있는데, 아르테미스의 작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Loossemble’은 이달의 소녀의 영어 명칭인 'LOONA'와 ‘모이다’라는 의미의 영단어 'Assemble’의 합성어다. 아르테미스가 이달의 소녀의 몽환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를 애용한다면, 루셈블은 밝은 에너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중점으로 이야기하는 그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루셈블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 오브제는 ‘우주선’이다. 우주선은 험난한 세상 속 멤버와 크루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 힘을 합쳐 나간다는 스토리의 중심 역할을 한다. 미니 1집 《Loossemble》에 이러한 과정이 가장 잘 드러난다. 타이틀 곡 〈Sensitive〉의 뮤직비디오는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감정을 자극한다. 멤버 전원이 작사에 참여해 이달의 소녀 시절부터 축적해 온 음악적 감각을 고스란히 이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선별된 이브의 작사·작곡 참여작 〈Strawberry soda〉까지 멤버 간 끈끈한 우정과 창작 역량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미니 2집에서 다소 낮은 퀄리티와 얼기설기한 연결성으로 점철된 앨범으로 잠시 주춤하더니 미니 3집 《TTYL》에서 다시 퀄리티를 회복했다. 〈TTYL〉은 ‘Talk To You Later’라는 뜻으로, 강렬한 플럭 사운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울려 확실히 기억에 남는 타이틀이다.
한편, 현재 루셈블은 소속사와 계약 종료로 잠시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리더 현진이 곧 새로운 소속사에서 재출발을 예고하며 희망을 남겼지만, 구체적인 소식이 들리지 않아 팬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하루빨리 좋은 소식으로 우리 앞에 다시 훨훨 날아오르길 바란다.
끝나지 않은 비행의 의미
지금까지 살펴본 이달의 소녀의 분화와 진화는 여전히 진행형인 장대한 대서사다. 그들은 예측 불가능한 선율로 음을 갖고 놀기도 하고, 나비처럼 잠시 날개를 접어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때로는 홀로 혹은 함께 비행하며 음악이라는 광활한 꽃밭에서 수분(受粉)하는 나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팬들은 단순한 응원을 넘어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제약 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리시안서스의 꽃말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들의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도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고픈 음악을 원 없이 할 수 있도록 열렬히 지지하겠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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