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일유
작년부터 올해까지, 케이팝 씬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밴드 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돌 밴드’가 있다. 아이돌 밴드는 실력이 없을 것이라는 과거 인식과 달리, 최근에는 아이돌과 밴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아이돌 밴드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는 데이식스, 루시, 엔플라잉 같은 아이돌 밴드가 페스티벌 무대의 헤드라이너로 오르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특히 더로즈는 한국 밴드 최초로 미국 최대 규모의 페스티벌 ‘코첼라’에 출연하며, 국내외를 아우르는 K-밴드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처럼 아이돌 밴드가 케이팝의 또 다른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차세대 아이돌 밴드의 활약이 주목되는 가운데, 밴드 붐을 이어 갈 차세대 주역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Xdinary Heroes)
“조금 난해한데” 데뷔 당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Xdinary Heroes)를 향한 대중의 반응이다. JYP에서 데이식스 (DAY6) 이후 약 6년여 만에 나온 밴드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대중적인 감성의 선배 데이식스와는 사뭇 다른 과감한 하드 록과 펑크 사운드의 음악으로 데뷔하였다. 이들은 데뷔 앨범 《Happy Death Day》부터 《Deadlock》까지 ‘히어로와 빌런’이라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주로 전자음 변주의 하드 록과 악동 이미지에 치중한 앨범을 선보였다. 이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만의 독보적인 콘셉트로 인정받기도 했으나, 일부 대중들에게는 다소 난해한 음악으로 인식되며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히어로와 빌런 사이의 경계라는 세계관에서 한 발 나와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디딘 앨범이 있는데, 바로 《Livelock》이다. 에디터는 해당 앨범을 기점으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음악적 방향성이 더욱 뚜렷해졌다고 생각한다. 《Livelock》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개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앨범이다. 하드 록 스타일의 타이틀곡 <Break the Break>를 통해 다시 한번 음악적 색깔을 확고히 하였고, 하드 록 중심의 구성 사이에 모던 록 장르의 <PLUTO>, 록 발라드 장르의 <Paranoid>, 팝 펑크 장르의 <AGAIN? AGAIN!>을 배치해 엑디즈표 청량을 더했다. 이를 통해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만의 강렬한 하드 록의 색체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록 장르를 시도함으로써 앨범의 전체적인 완급을 조절하였다.
작년 6월부터 9월까지 매달 곡을 발매했던 클로즈드 베타 (Closed ♭eta) 시리즈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에디터는 그중 〈Save Me〉와 〈iNSTEAD!〉 두 곡이 특히 인상 깊었다. 〈Save Me〉에서는 청량한 멜로디 위에 애절함과 위로의 감정을 표현해냈고, 이후 발표된 〈iNSTEAD!〉에서는 전작과는 상반된 헤비 메탈을 선보이며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만의 강렬한 록을 선보였다.
이와 같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행보는 이들이 직접 붙인 ‘장르의 용광로’라는 수식어답게 하드 록을 중심에 두되 다양한 록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청량함과 감성, 강렬함을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지금 이 순간 밴드 붐을 이끌어갈 가장 유력한 아이돌 밴드다.
2. 캐치더영 (CATCH THE YOUNG)
마치 댄스 그룹처럼 헤드 마이크를 착용한 채 안무를 추며 연주하는 밴드. 에디터가 처음 마주한 캐치더영 (CATCH THE YOUNG)의 모습이다. 무대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노래하는 모습이 청춘 그 자체인 밴드다. 캐치더영은 데뷔 앨범부터 자신들의 음악을 ‘YOUTH POP-ROCK’이라 정의하며 젊음을 노래해왔다. ‘젊음과 청춘’, ‘벅참’은 밴드 음악에서 익숙한 키워드지만, 이들이 노래하는 젊음은 조금 다르다. 캐치더영의 젊음은 단지 지금의 청춘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나온 청춘을 추억하는 이들까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젊음과 청춘을 노래한다.
데뷔 앨범 《Catch The Young: Fragments of Youth》의 타이틀곡 <YOUTH!!!>에서는 “ Forever, my youth”, “Remember my youth”라는 구절이 반복되는가 하면, 젊을 적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조급함을 가사에 담았다. 이러한 가사는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이미 청춘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젊음을 추억하게 한다. 이외에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거야’ (<널 만나러 가는 길>中), ‘살아온 시간 속에서 답을 찾아’ (<My Own Way>中)와 같은 수록곡의 가사 또한 각자의 청춘이 지닌 의미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널 만나러 가는 길>에서는 사랑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순간들이 언젠가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임을 전하며, <My Own Way>에서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에 있어 작은 행복을 찾아 이겨내 보자는 다짐을 통해 청춘의 혼란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노래한다.
캐치더영의 전곡을 쭉 듣다가 에디터는 문득 이들의 노래에 ‘추억’, ‘기억’, ‘영원’이란 단어가 유독 자주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캐치더영이 노래하는 청춘은 단지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노래하는 청춘은 뻔한 감상에 기대지 않기에 더욱 특별하다. 지금처럼 청춘이라는 소재를 자신들만의 방식과 감성으로 풀어나간다면, 머지않아 캐치더영은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3. 하이파이유니콘 (Hi-Fi Un!corn)
이들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케이팝과 제이팝을 아우르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 밴드 명가 FNC에서 데뷔한 하이파이유니콘 (Hi-Fi Un!corn)은 보이밴드 오디션 프로그램〘THE IDOL BAND: BOY'S BATTLE〙에서 우승하며 결성되었다. 네 명의 한국인 멤버와 한 명의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이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
에디터는 데뷔 앨범 《Over the Rainbow》가 하이파이유니콘의 음악적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씨앤블루 (CNBLUE) 정용화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해당 앨범은 타이틀곡 <Over the Rainbow>와 오디션 프로그램 당시 파이널 곡이었던 <DoReMiFa-Soul>이 수록되어 있다. 두 곡 모두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으로 발매되었는데, 특히 <DoReMiFa-Soul (KR ver.)>은 케이팝과 제이팝을 아우르는 이들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듣는 내내 한국어 곡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이팝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양국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듯한 멜로디 라인과 두 보컬, 엄태민과 후쿠시마 슈토의 합에서 비롯되는 케이팝과 제이팝의 신선한 조화 덕분일 것이다. 해당 곡을 들은 많은 이들이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호시노 겐의 <恋 / Koi>를 떠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렴에서 느껴지는 제이팝 특유의 감성적인 코드 진행과 멜로디, 그리고 일본 록 밴드풍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태민의 케이팝 특유의 강하고 뚜렷한 발성과 후쿠시마 슈토의 제이팝 감성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톤이 한 몫 한다. 두 보컬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케이팝과 제이팝의 매력을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인다.
최근 국내에서는 제이팝, 특히 밴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피셜히게단디즘, 요아소비, 킹누 등 일본 밴드들의 감성적인 멜로디와 음악성이 국내 팬들에게도 주목받으며 사랑받고 있는 지금, 하이파이유니콘만의 케이팝과 제이팝을 아우르는 음악적 색깔은 차세대 아이돌 밴드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4. 드래곤포니 (Dragon Pony)
‘불완전한 소년들의 뜨거운 음악’ 이러한 캐치프레이즈 속에서 드래곤포니는 데뷔 앨범부터 최근 EP에 이르기까지 자전적 서사와 불완전한 청춘의 모습을 음악에 담아내고 있다. 이들의 서사는 데뷔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네 명의 멤버 중 편성현, 권세혁, 고강훈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교 동문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합주를 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져왔다. 이후 오디션을 통해 안테나에 모여 보컬 안태규와 함께 팀을 결성하면서 드래곤포니가 탄생하였다.
‘드래곤포니’라는 팀명이 정해지기도 전, 이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새하마노’라는 이름으로 자작곡을 들고 클럽 공연에 나섰고 연습생임을 밝히지 않은 채 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후 수차례의 버스킹과 직접 만든 전단지를 돌려 팀을 알리는 등 데뷔를 향한 여정을 쉼 없이 달려왔고, 이들은 마침내 첫 번째 앨범 《POP UP》으로 정식 데뷔에 이르게 되었다.
드래곤포니의 이러한 서사만큼이나 눈에 띄는 지점은 이들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록 사운드 기반의 음악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2000년생과 2002년생으로 구성된 멤버들이 10대를 보낸 2010년대는 밴드 음악보다는 케이팝과 힙합이 대중음악의 주류였던 시기다. 그럼에도 드래곤포니의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마치 1980~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의 빈티지한 록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멤버들이 그 시절의 밴드 음악을 듣고 자라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 점을 감안해 볼 때, 드래곤포니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빈티지한 록 사운드는 이들의 음악적 취향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팀의 기타리스트 권세혁이 1970~80년대 밴드 음악에 주로 사용되던 SG 모델의 기타를 주력으로 연주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음악적 색깔이 반영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드래곤포니는 스스로의 음악적 강점 또한 클래식한 매력으로 꼽은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클래식함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용에 그치지 않으며 촌스럽거나 올드한 느낌이 전혀 없다. 이는 빈티지함과 모던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데에서 오는 드래곤포니만의 개성이 느껴지는 음악 덕분일 것이다. 이러한 감성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에디터는 최근 EP 《Not Out》의 수록곡인 <Waste>와 <이타심 (To. Nosy Boy)>를 추천한다. 이처럼 클래식한 록의 정서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뉴트로 록’ 사운드로 독자적인 색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이들은 단연 차세대 아이돌 밴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팀이다.
밴드 붐의 흐름 속에서 차세대 아이돌 밴드들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음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케이팝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이들은 아이돌 밴드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고 밴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변화하는 케이팝의 씬에서 아이돌 밴드로서 이들이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에 주목해볼 때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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