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보라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Generation Alpha)’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난 첫 세대다. 손가락이 마우스를 잡기 전에 이미 화면을 터치하고, TV보다 유튜브·틱톡을 먼저 켜는 세대인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 세대의 관심과 지원 속에 성장해 취향과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가치 소비에 적극적이며, 숏폼·AI·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디지털 네이티브다. 그런 이들에게 케이팝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일상과 놀이, 자기표현이 결합한 종합 문화 콘텐츠이며,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케이팝의 주요 소비자이자 확산 주역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대학생 교육기부 프로그램 쏙쏙캠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케이팝 산업과 기획사, 아이돌, 팬덤 구조를 설명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차원을 넘어, ‘내가 만드는 케이팝 기획사’, ‘우리 그룹만의 앨범 DIY’, ‘챌린지 영상 촬영’ 같은 커리큘럼 속에서 제작자이자 팬이 되는 경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브(IVE) 뮤직비디오 한 장면을 보고 교실은 순식간에 작은 콘서트장이 됐다. “나도 아이브 앨범 집에 있어요!”라며 손을 번쩍 든 아이, ⟨Rebel heart⟩를 완벽하게 따라 부르는 아이까지 케이팝의 위력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깊게 K-POP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걸까?” 그래서 오늘은 알파세대의 케이팝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이 주된 팬층이었다면, 이제는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초등 저학년들도 아이돌 그룹 이름과 유행 안무를 줄줄 외운다. 이처럼 더 어린 나이에 케이팝과 맞닿게 된 배경에는 ‘디지털 환경 변화’와 ‘학교 문화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변화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은 디지털 환경 변화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알파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자랐고, 틱톡과 같은 숏폼 플랫폼이 문화 소비의 기본 채널이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집중 지속 시간이 짧기 때문에 숏폼 플랫폼의 15초~30초 길이 영상은 오히려 이들에게 최적화된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긴 러닝타임의 TV 예능보다, 언제 어디서나 소비할 수 있는 유튜브 기반 짧은 웹 예능과 틱톡 챌린지가 이들에게는 더 익숙하다. 실제로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의 ‘Cupid sped-up’ 버전은 틱톡에서 챌린지 형태로 확산되며 케이팝 걸그룹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포인트 안무와 중독성 있는 후렴만을 편집해 내보내는 클립은 아이들에게 ‘보자마자 따라 할 수 있는 즉각적 재미’를 제공하며, 동시에 조회 수와 ‘좋아요’는 작은 보상처럼 작동해 흥미와 몰입을 강화한다.
여기에 학교 문화의 변화도 한몫한다고 여겨진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체육 시간이나 학교 축제에서 방송댄스를 공식 커리큘럼으로 편성하고, 방과후 활동이나 지역 문화센터에서도 아이돌 댄스 수업을 운영한다. 실제로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는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보고 대중무용을 분석하거나 직접 케이팝 동작을 구현해보는 등의 활동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케이팝을 자연스럽게 학습, 체험 콘텐츠로 흡수하는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또래 집단 내에서 케이팝 안무를 알고 따라 하는 것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결국 케이팝은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또래 관계를 맺고 자신을 표현하는 사회적 놀이의 일부가 된 것이다.
알파세대,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 케이팝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놀이이자 문화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헌트릭스(HUNTR/X), 사자 보이즈(Saja Boys) 같은 가상의 케이팝 그룹이 등장하는 본 작품은 전 세계 넷플릭스 기준 영화 차트 1위에 오르고, 헌트릭스의 ⟨Golden⟩은 케이팝 걸그룹 곡으로는 최초로 미국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이뤘다.
이 작품이 특히 저연령층 확산에 영향을 준 이유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친숙한 장르 안에 케이팝의 음악·안무·세계관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결합해 진입 장벽을 거의 없앤 형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평소 케이팝을 깊게 소비하지 않던 아이들도 ‘만화 속 캐릭터’에 먼저 호감을 느끼고, 이어 그 캐릭터의 음악과 안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구조다. 즉, 애니메이션 속 노래를 따라하거나 안무를 따라 추는 틱톡 챌린지 영상이 유행하며 성별을 뛰어넘어 아이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하나의 놀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확산은 케이팝이 특정 팬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린 세대 전체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놀라운 흐름 가운데, 아이브는 ‘초통령’에 걸맞는 초등학생 팬덤의 아이콘으로 성장하였다. ⟨LOVE DIVE⟩, ⟨After LIKE⟩와 같은 곡들은 포인트 동작이 명확하고 반복성이 높아 초등 저학년이 따라 하기 쉬워 학교 방송댄스, 장기자랑 퍼포먼스, 틱톡 챌린지 등에서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브의 팬덤이 단순히 노래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학교 현장 속 집단 놀이와 롤모델 문화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멤버 개개인의 뚜렷한 캐릭터와 친근한 SNS 콘텐츠는 어린 팬들에게 ‘나도 저런 언니가 되고 싶다’는 동경심을 자극하며, 또래 팬덤 문화의 응집력을 강화한다.
이 흐름은 해외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2025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알파세대 어린이 4명 중 1명은 케이팝을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로 꼽았다. 이는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콘텐츠 소비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초통령’ 아이브가 탄생할 수 있었던 계기는 국내적 현상 뿐 아니라, 글로벌 알파세대 팬덤의 조기 형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즐거운 케이팝,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
케이팝의 저연령층 확산은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먼저, 음악과 춤을 통한 표현 활동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자기표현력과 창의성이 크게 자극된다. 또한, 케이팝의 안무, 가사, 세계관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협동심과 소속감이 형성되어 또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글로벌 팬덤에 일찍 노출되면서 영어 가사나 해외 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로 일부 교육학자들은 음악·댄스 기반의 콘텐츠 소비가 아이들의 운동 발달, 리듬감, 언어 흡수력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먼저, 과도한 상업화와 빠른 유행 순환 속에서 아이들이 자극적이고 표면적인 트렌드에만 몰입할 위험이 있다. 그 뿐 아니라, 지나친 스타 소비 문화가 외모 중심 가치관이나 비교하게 되는 심리를 얻게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SNS 중심의 활동이 길어지면서 집중력 저하와 디지털 의존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아직 미디어 리터러시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저학년층은 광고성 콘텐츠와 팬덤의 과열 양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앞으로 알파세대와 케이팝의 관계는 더 촘촘하고 개인화될 가능성이 높다.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 숏폼 플랫폼과 같은 미디어 노출 증가 등의 현상이 계속된다면,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이른 시기에 자신만의 ‘최애’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비판적 소비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 지역 사회가 함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아이들이 케이팝을 단순 소비가 아니라 창작·참여·문화 이해의 기회로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필요하다.
케이팝은 이미 알파세대에게 또래 문화의 핵심 기호가 되었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문화 자산이다. 그러나 그 힘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려면, 산업·교육·가정이 함께 ‘즐기면서도 건강하게 소비하는 방법’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알파세대는 케이팝의 다음 세대 주역이자 새로운 글로벌 문화 창조 세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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