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1 -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
매거진 [연]은 여성 공연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녀들의 생각과 고민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 뜻에 공감하는 인터뷰이를 만날 때마다 큰 힘이 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연]과 함께 풀어내는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시는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어느덧 네 번째네요. 이번에 만난 분은 바로 연출가 김민정입니다. 김민정 연출은 작년부터 <비너스 인 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나, 혜석>까지 ‘여성 3부작’을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훨씬 오래전부터, 다른 작품들뿐만 아니라 공연계 바깥에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왔습니다. 연출가로서 국내 공연계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21세기 사회는, 공연예술은 과연 어떤 양상으로 변화하게 될까요?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 중 하나는 ‘고민한다’였습니다. 연출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끊임없이 고민해왔고, 어쩌면 그 덕분에 우리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의 끝없는 공부와 고민은 계속되겠죠. 그녀가 이야기한 대로, 이상과 가치를 공유하는 개인들의 연대에 대하여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인터뷰, 조심스럽죠. 말이 활자가 되기 때문에 무게감이 다르고 많은 것들이 현재 진행형이라서요. 진행 중인 생각들이 최종적으로 어느 곳에 도착할지 알 수 없고. 참 조심스럽습니다. 근데 매거진 [연]의 기획의도가 좋았어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사실 어제 잠을 못 잤어요. (웃음)
Q. 여성 3부작 <비너스 인 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나, 혜석>에 관하여
2017년, 벌써 작년이네요. 작업자로서는 여성 3부작에 대한 계획이 있었어요. <비너스 인 퍼>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나, 혜석>. <비너스 인 퍼>는 신화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인문학적인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었고, <마츠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화 공연이었고, <나, 혜석>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실존 인물을 다루는 작품이에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각각의 차별성을 지닌 이 여성 3부작이 저한테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이어서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는 기획자 친구한테 말했더니 ‘너무 힘들겠다, 연출님은 왜 힘든 것만 하세요?’ 하는 거예요. 아,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싶었죠.
앞의 두 작품은 공연을 마쳤고 <나, 혜석>은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사료들을 검토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층위들이 많더라고요. 사료 조사와 드라마 구성에 더 많은 탐색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명동 로망스>를 같이 만들었던 조민형 작가가 함께 할 거고, 안유진 배우, 전성민 배우도 대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조사만 하다가 끝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멈춰야 한다면 멈추는 거죠. 멈추는 게 두렵진 않아요.
Q. 실존 인물을 다룰 때 고민이 있다면
시대적인 평가가 묻어날 수밖에 없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요. 미화해서도 안 되고, 존재하는 사료를 통해 객관성을 얻는 것도 어느 지점에선 한계가 있고 모호해지기도 하고요. 지금 공연 중인 <명동 로망스>도, 이중섭 화가, 박인환 시인, 전혜린 작가와 같은 실존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겨우 60년 정도 과거 일이거든요. 역사적으로 한 인물을 평가하거나 맥락을 만들 때는 60년으로는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 같고 더 많은 시간이 있어야 해요. <나, 혜석>이 지금도 진행 중인 건 그런 고민들과 좀 닿아있어요.
<명동 로망스> 같은 경우는 일종의 입문서 같은 공연이고 깊이 있는 탐색은 그다음의 모색으로 여지를 남겨놓았어요. 그런데 <나, 혜석>은 입문서가 아닌 심층서여야 해서 더 앞뒤 좌우를 꿰뚫지 않으면 안 된단 생각이 들어요. 몇 가지의 분명히 매력적일 것 같은 장면들만으로 작품을 만드는 건, 소재주의고 하면 안 되는 일이죠. 소재주의는 위험해요. 우리가 너무나 빠지기 쉬운 덫 같은 거라 언제나 경계해야 되는 것이죠.
앞으로도 저에게는 이런 흐름이 더 지속될 것 같아요. 특별히 여성의 시선을 담는 공연만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어쨌든 제 생각들과 제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게 그쪽(여성주의)이 많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끌리고, 더 힘을 쓰게 되네요. 돈은 언제 벌지? (웃음)
Q.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마츠코>가 개막 후 혹평을 많이 받았어요. 큰 이유 중 하나는 마츠코로부터 그녀의 목소리를 빼앗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쇼에 대한 새로운 설정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저는 페미니스트고, 노예 해방을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페미니스트여야 할 텐데 어떻게 아닐 수 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에요. 그런데 여자 주인공의 목소리를 빼앗았다는 평을 듣고 만 거죠.
Q. ‘마츠코’의 목소리를 빼앗았다는 부분에 대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부분은 ‘마지막 쇼가 부르는 넘버는 결정적으로 마츠코가 불러야 한다. 마츠코의 목소리를 빼앗았다,’였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넘버는 대본상으로는 쇼가 아니라 마츠코가 부르도록 썼습니다. 음악 구성도 그렇게 짰죠. 노래 연습까지 했어요. 그런데 장면 연습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생겼어요. ‘이렇게 악의에 가득 찬 폭력을 당한 상황에서 이걸 노래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노래 부르면 저 죽을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작가로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습 후반부 무렵이었고, 모든 공연이 그때쯤 다 힘들지만 특히 마츠코는 더 심했습니다. 배우들에게 더 이상의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습 상황에서 그 넘버를 쇼가 부르는 것으로 바꿨어요. 저는 그 또한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했어요. 쇼도 마츠코처럼 사회적 맥락에서 똑같은 약자고 그들은 연대하고 있는 거니까요. 공식 수정할 수 있는 프리뷰 기간 동안에도 이 장면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혹평의 주요 이유 중 하나였지만 배우에게 큰 고통을 주는 장면을 실행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것이 일단은 저한테 가장 중요했어요. 만약 재연을 하게 된다면 마츠코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것과 동시에 배우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최소화하는 지점을 찾을 겁니다.
Q. 그렇다면 <비너스 인 퍼>와 <번지점프를 하다> 작업은 어땠는지
<번지점프를 하다>, <나, 혜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비너스 인 퍼>까지 수면 아래를 관통하고 있는 맥락이 개인적으로는 하나인데, 표면적으로 나오는 결과물들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비너스 인 퍼>는 어떤 점에서는 쉬웠어요. 명확하고 명쾌했거든요. 반면 <번지점프를 하다>는 고민이 좀 많았어요.
Q. <번지 점프를 하다> 삼연의 수정 작업에 대해
페이지마다, 단어 하나하나 봤어요. 사실 처음에 대본의 언어를 수정할 때 다들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조금 주춤하게 됐죠. ‘내가 너무 날이 서있나? 유별 떠는 건 아닌가. 노이로제 걸린 건가’ 그렇게 또 고민하다 ‘아냐, 이건 날을 세워서 봐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아니, 그렇게 보는 게 맞아.’라고 스스로를 밀고 나갔어요.
저는 20세기의 훨씬 더 불평등한 시스템에서 교육받았고 그 교육들이 제 몸에 스며들어 있는 게 있기 때문에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여기서 내가 또 놓치고 있는 게 있으면 어떡하지?’ 숨 막히고, 겁이 납니다. 자기검열이 생기고 안에서 끊임없는 내부 투쟁이 벌어져요. 이쯤에서 그만해야 하나 싶어지다가도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가야지.’ 하기도 하고 또 멈칫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어요. 이렇게 개인들이 나아가면서 역사는 앞으로 전진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전진했으면 좋겠기 때문에!] 그런데 공연이라는 게 어느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 제작자, 창작진들이 함께 그 세상에 대해 합의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진 공연을 다시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고요. 그 과정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가치들이 치열하게 힘겨루기를 합니다. 특히 이렇게 쉽지 않은 이슈에 있어서는 이 과정의 에너지가 많이 필요합니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페이지마다 단어들을 다 수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베이스에 있는 주제가 유효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있거든요. 가사도 조금 수정하고, 아내 이름도 지었지만 그건 지엽적인 것이어서요. 여전히 그 고민은 진행 중입니다. 더 남았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혐오’와 ‘악의’예요. 수면 위로 올라와 말하고 싸우기 시작할 때 반작용으로 다른 흐름들이 더 거세지기 마련이거든요. 21세기에는 훨씬 더 거세게 싸울 거예요. 혐오와 악의가 더 커진다는 얘기죠. 이제 시작입니다.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시기고 싸우고 있는 중이에요.
2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