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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e Beauty in the Worl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d Me

by maggie chae

예술은 일상의 순간을 어떻게 구원하는가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잠시 헷갈렸어. 이게 소설일까, 에세이일까? 제목만 보면 소설 같은데, 읽다 보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회고록, 그러니까 에세이라는 걸 알게 되더라고. 그런데도 소설처럼 흡입력이 있어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문학적 상상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이 책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뉴욕에서의 기억 덕분일 거야. 뉴욕에 갔을 때마다 하루는 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냈는데, 늘 시간이 모자랐거든. 하루 종일 그림 앞에 서 있어도 아직 못 본 방이 남아 있는 것 같았어. 그만큼 압도적인 공간이라, 그 미술관에서 10년 동안 경비원으로 서 있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이상하게 더 끌렸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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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ured by me, Sept 7, 2010.



나에게 이 책은 상실과 예술의 이야기야. 저자는 형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병실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공간에서 오히려 작은 기쁨들을 붙잡아냈어. 약혼을 죽어가는 형의 병실에서 발표하고, 몰래 맥주를 들여와 일회용 컵으로 건배하던 순간. 절망 속의 순간들이 더 큰 소중함을 이끌어낸 걸까. 형이 거의 말을 잃어가던 시기에 갑자기 “치킨 너깃을 먹고 싶다”라고 했는데, 맨해튼 밤거리를 뛰어가 소스를 사 들고 돌아오던 순간보다 더 행복한 때가 없었다는 거지. 침대 곁에서 모두가 함께 웃고 울며 작은 소풍 같은 밤을 보냈어.


저자는 그 장면을 브뤼헐의 〈곡물 수확〉에 비유해. 황금빛 들판에서 농부들이 허리를 굽혀 일하고, 한쪽 구석에서는 잠시 앉아 소박한 식사를 나누는 모습. 평생 고단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잠깐 멈춰 나누는 식사, 그 평범한 풍경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거야. 병실의 치킨 너깃.. 웃음과 슬픔이 동시에 빛나는 일상의 평범한 시간처럼... There are always TWO SIDE!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66523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C2K4IVnMvFWaB94zVPp%2FzE9AL40%3D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수확]



그리고 이 책 속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또 있어.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p.218)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66523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aMclrpqR66eAFlxdWBsb%2FMFMBss%3D 수피파의 [더비시]



16세기 수피파 더비시의 초상화를 보며 저자가 전해준 아랍어 문구였어. 신을 향한 원망이 이렇게나 정직하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 놀랍지 않아? 절제되고 웅장한 얼굴의 더비시와 날 선 문장의 간극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더라고. 수피즘은 “신은 우리의 경정맥보다 가깝다”는 쿠란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려는 사상이라지. 매일 의식처럼 신을 체험하려 애쓰던 그들의 삶은 결국 인간이 신과의 거리를 줄이려 몸부림친 흔적이었을 거야. 그래서 더 느껴졌어.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앞에서 우리는 신과의 대면을 피할 길이 없다는 걸. 원망과 매달림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그 지점에서 예술은 인간의 번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꽤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어.


여러 작품들을 따라가며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예술은 광범위하지만, 그 위대함은 결국 일상과 번뇌에서 비롯된다는 것. 병실의 건배, 치킨 너깃, 더비시의 침묵과 아랍어 문구. 모두 스쳐가는 순간들이었지만, 바로 이 평범한 순간 속에서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이 맞부딪히는 진짜 이야기가 드러나더라. 이 책은 이렇게 잔잔하게 상실 속에 멈춰 선 시간에도 괜찮다고 속삭이며, 예술이 일상의 순간을 어떻게 구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증언처럼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어.


조만간 다시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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