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버렸다.

집 밖으로

by MagicalPeppersLonely

이 집에는 아주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꺼내어 늘어놓고는 하나하나 한 번씩 꽤 길게 쳐다보고는 봉투에 담아나갔다. 담으면 담을수록 생각보다 너무 많다. 이렇게나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많았었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나 내 삶에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었었나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의 형태를 파괴해서 저기 난지도 어딘가에 묻혀있게 하는건 나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게 잘못하는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든다. 나와 관련이 없는 예술품이더라도 아름답다면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뭔가 좋지 못한 기분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래서 미처 세상에 아름다움이 이렇게 많았는지 몰랐다. 이 물건들이 나와 닿아 있을 때도 세상에 아름다움이 이렇게 많았었나 하는 궁금증이 들지만 언제나 그건 쉬이 틀린다.


봉투에 하나하나 담으며 오늘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시간이 언제인지 계속 생각한다. 만약 내가 환경미화원보다 더 늦는다면 이걸 하루동안 집에다 두어야 할까, 밖에다 두어야 할까 고민한다. 아무래도 담아내는 속도를 빠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가 아니라 한움쿰 한움큼 씩 집어든다. 그래도 참 많다. 꽤 큰 봉투를 사왔는데 벌써 많이 채워졌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이런것들을 세상에서 없애 버린 것에 대해서 나중에 나에게 심문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됬건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우니까 말이다.


밖에 청소차가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신경이 계속 쓰인다. 내가 그들보다 늦고 싶지는 않다. 이 뭉텅이를 어디다 하루동안 보관하고 있는가 말이다. 이제 거의 다 담았다. 마지막 물건을 담는데 지금까지 담은 물건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진짜 지층 어딘가에 묻혀있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내가 세상에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확신이 들지 않지만 마저 담았다.


하얀색 종량제 봉투에 다 담고 끈을 묶고 나니 그저 한 봉다리다. 세상에 어떤 위인도 결국은 하나의 시체로 끝난다는게 이런 걸까. 그저 한 봉다리다. 꾹꾹 눌러담으니 세상 많았던 것들이 저기에 다 들어갔다. 종량제봉투의 "xx구청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씨가 나에게 용기를 줬다. 이 넓은 세상에 나 하나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고 큰 일이 나겠어? 하는 생각이 든다.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 하얀 종량제 봉다리들 사이에 툭 던져놓는다. 이것도 하얀 봉다리고 저것도 하얀 봉다리다. 하얀 봉다리가 참 많았다.


집에 들어와 하얀 벽을 바라보는데 왠지 청소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가져가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걸까 세상에. 역시 내가 세상에 잘못을 해서 그런건가. 왜 이리 오지가 않는다. 하얀 벽을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데 눈을 감아도 내 손이, 내 발이, 내 머리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느껴지는 것처럼 집 밖의 하얀 봉다리가 느껴진다. 나는 그 봉다리에 젖거나 냄새가 나는 다른 물건을 같이 넣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가? 왜 이리 청소차가 오질 않는다. 설마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건가? 하루 동안 하얀 봉다리가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폭탄처럼 터지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진 않을까? 세상에 문제를 일으키면 어떡하지? 내일까지 내가 집에 보관하고 있는게 나을까? 주위 봉다리들의 서걱서걱하는 소리, 바퀴벌레들이 스스슥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결과가 자기 눈 앞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잔인하게 동물을 잡아 고기를 먹어도 그건 내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는게 좋다. 사람은 그러면 괜찮다. 아무래도 오늘은 청소차가 오지 않는 날이다.


아무래도 난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는게 관에 들어가서 묻히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체를 알 수 없이 작은 조각이 되어서 세상에 흩뿌려 지는게 연한 맛이 날 것 같다. 관에 들어가 지금 모습 그대로 묻히는 건 삼키기도 어려운 답답한 가슴같은게 될 거다. 아무래도 난 향과 재료를 특정하기 힘든 연한 맛이 좋다.


청소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하얀 봉다리들을 초록색 트럭으로 담아내는 소리가 오늘의 자장가가 되면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가망이 없다. 조용히 시간만 흐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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