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이 아닌데요!

상처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by 단정

“그러고는 그냥 끝내도 될 걸 굳이 또 ‘너랑 얘기하면 꼭 그 30대 특유의 느낌이 있어’ 이러고 마무리를 하시더라.”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아, 네. 부장님한테는 꼰대 그 특유의 느낌이 있는데!’라고 하고 싶었지…. 뭐. 그냥 저는 그 느낌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랬어.”


불쾌한 점심시간이었다. 평소 나를 딸처럼 생각해주는 마음이야 알지만 정작 그에게는 딸이 따로 있지 않나? 존중은 짜장면에 말아서 후루룩 삼키고는 남은 별로의 것만 주시는 분의 챙김을 성의랍시고 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종일 쌓인 언짢음에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이제는 집에서 제법 거리가 생겨버린 사당으로 간다. 화요일은 도자기를 빚는 날이다. 영화나 드라마, 매체를 통해 접하는 도자기는 물레를 돌려 모양을 잡는 낭만적인 모습을 상상하게 하지만, 사실 물레는 도자기를 빚는 기법의 하나일 뿐이다. 보통은 물레를 한번 배우면 타기법을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 3개월을 배워야만 물레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아직 2개월 차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법은 판을 미는 것인데, 컵을 만든다고 치면 흙을 밀대로 얇게 밀어 넓은 판을 만든 뒤에 그걸 잘라서 바닥과 옆면, 손잡이를 각각 만들어 이어 붙이는 형식이다. 나는 판을 미는 순간이 가장 좋다. 생각보다 무겁고 단단한 흙을 얇게 펴는 건 의외로 꽤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렇게 끙끙대며 흙이 고른 두께로 펴지도록 밀고 있자면 그날 하루에 쌓인 별 볼 일 없는 대화와 스트레스가 까마득한 일이 된다.


판을 이어 붙일 때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매끈하게 밀어진 면들은 종이로 치면 풀의 역할을 하는 묽은 흙, 슬립을 사용해 붙인다. 하지만 밀어진 판에 그냥 슬립을 발라 붙이면 붙기야 하지만 실은 나중에 생각보다 쉽게 떨어진다. 그들이 가진 밀도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과 판을 이어 붙일 때는 슬립을 바를 각각의 면에 날카로운 것으로 스크레치를 내야 한다. 잘 붙으려면 오히려 멀끔하던 판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니, 나는 이점이 의아했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더 잘 붙는 게 있을까?

더 잘 붙게 하기 위해 상처를 입혀야 하는 게 있을까?


세상엔 워낙 재치 있고 기발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걸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상처는 상처일 뿐 그게 더 나은 역할을 하는 건 없다.


같은 이유로 최근에 나는 아끼고 아끼던 이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소중한 만큼, 좋아하는 만큼 우리는 서로를 상처 입힐 수밖에 없었다. 꼭 고슴도치들처럼. 우리는 서로를 더 크게 안으려 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됐다. 나는 T니, F니 하는 것들이 끔찍이 싫다.


흙이 상처 입고도 더 아름다운 하나의 물성이 되는 것이 부럽다고 해서, 우리도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T니, F니 하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는 좀 더 살았고, 누구는 다른 세상을 살아봤고 하는 이유로 서로를 상처입혀 놓고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때에 어쩌면, 그래서 더욱이 존중이 필요한 관계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날에는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동기부여 선생님 지그 지글러를 생각한다. 그는 한 책에서 이런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는다면, 그 자리는 쓰레기장이 된다. 지나가는 이가 그걸 보고 쓰레기장이라고 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다. 그러니 남들이 던진 쓰레기 위에 당장 시멘트를 바르고 건물을 쌓아 큰 쇼핑몰을 세우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더는 그 자리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고.


요점은 쓰레기를 치우기보다는 그 자리에 시멘트를 바르라는 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상처라는 것이 그렇다. 갈라진 살들 사이로 피가 멎고 나면 그 자리에는 ‘새살이 돋는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상처로 벌어진 틈은 절로 붙는 것 같아도 실은 새살이 돋아나 그 자리를 메운다. 가끔은 그 틈이 너무 큰 바람에 자연스럽지 못하고 흉이 지기도 한다.


우리는 상처를 입곤 한다. 아무도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은데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의 일은 몸의 일처럼 절로 새살이 돋지 않아서, 흙에 슬립을 발라주듯 직접 그 자리를 잘 메워주어야 한다.


그렇다. 던져진 쓰레기는 아무도 치워주지 않고, 치울 수도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틈틈이 잘 메우고 덧발라 그 위에 예쁜 집을 지어야겠다. 거창하고 대단한 건물보다는 동화 속 마을처럼 예쁜 집을 짓고, 맛있는 쿠키를 구워봐야지. 그리고 누군가 찾아오면 나가서 인사를 건네야지.


“앗, 여기는 쓰레기장이 아닌데요! 쓰레기는 잠시 넣어두시고, 여기 들어와서 구경 한번 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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