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비트 까는 아들 vs 락 스피릿 아빠

25년 7월 13일 오후 10시

by 마법수달


아들은 헤드셋을 낀 채 맥북 앞에 앉아 Logic Pro로 만든 곡의 비트를 반복해서 들으면 수정하고 있었다.


자, 오늘도 10분 대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들. 헤드셋을 벗고 아빠에게 커먼요!




< 진정한 비트에는 가사 따윈 필요 없어 >


나: 힙합 비트에 가사를 붙여보고 싶진 않아?


아들: 해보고 싶긴 한데, 녹음하는 법도 모르고,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도 잘 몰라요. 일단 비트만 몇 개 만들어봤어요.


나: 가사는 그냥 한 번 써보면 되잖아?


아들: 써보긴 했는데, 완성까지 어떻게 이어나갈지 모르겠어요. 유튜브 보면서 혼자 조금씩 배워보는 중이에요.


나: 네가 직접 부를 생각은 있어? 아니면 AI로 목소리 입히는 건 어때?


아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비트 만드는 게 더 재밌어서요.


나: 완성된 곡도 있어?


아들: 아직 다들 비트만 있어요.


나: 멜로디는 어떻게 해? 메인 멜로디가 있어야 곡이 완성될 텐데.


아들: 보통 신시사이저로 멜로디도 넣어요. 그런데 멜로디가 곡 분위기를 너무 정해버릴 때가 있어서 일부러 불완전하게 만들기도 해요.


< 제 취향은 하드코어 >


나: 만들고 싶은 노래는 어떤 분위기야?


아들: 하드코어. 느낌이 좋아요. 무거운 비트, 어두운 분위기. 밝기만 한 것보다는 분위기 있는 게 좋아요.


나: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 그런 감정이 담긴 음악?


아들: 그런 것도 있고, 요즘은 하드락 스타일의 사운드도 만들어보고 있어요. 다양하게 시도 중이에요.

거기에 일렉기타, 트럼펫 같은 다른 악기 사운드도 넣고 싶어요.


나: 이야, 멋지네. 그럼 실용음악학원에서 배우는 음악이랑은 다르지?


아들: 맞아요. 학원에서는 재즈 피아노만 배워요. 지금 만드는 비트나 곡은 다 독학해서 만든 거예요.


나: 코드나 즉흥 연주도 배우니?


아들: 코드는 조금 배웠는데, 요즘은 악보대로 곡 연주하는 게 많아요. 즉흥 연주는 아직 어렵고요.


< 이지리스닝은 Not 마이 스타일 >


나: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보다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곡을 만드네?


아들: 네. 그냥 제가 듣고 싶은 걸 만드는 게 좋아요. 요즘 자주 듣는 아티스트가 있어요. 비프리라고 멤피스 랩 스타일인데, 반미디어, 반자본, 공연 위주의 인디 활동을 하는 래퍼예요.


멤피스 랩은 90년대 초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시작된 힙합의 하위 장르로, 저예산 제작과 lo-fi 사운드, 어두운 정서, 기본 템포보다 두 배 빠르게 랩을 하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아들: K-pop은 안 좋아해요. 너무 뻔한 느낌이라서. 오히려 장기하 같은 가수가 좋아요. ‘달이 차오른다 가자’ 같은 곡들. 약간 옛날 스타일, 독특한 분위기 있는 음악이 좋더라고요.


아들: 예전엔 에미넴을 잘 들었는데 이제는 이지리스닝 같아서 잘 안 듣게 돼요.


(이지리스닝? 쉽게 들리는 건 힙합이 아니다 이런 거겠지? 우리 때의 락부심인가? )


< Rock will never die >


아빠: 하드락이나 메탈은 들어봤어?


아들: 조금요. Judas Priest의 Painkiller 같은 곡. 락은 아직 많이 듣진 않았어요.


아빠: 울산에 헤비메탈만 틀어주는 음악 카페가 있더라. 그런데 Queen 같은 그룹 신청하면 이지리스닝 곡이라 금지라고 하더라. 아, Painkiller도 금지야!


(그런데 사실 Queen도 Easy 하지 않은 곡이 많다. The Prohept's song, Party, Living in the lap of the God 등. 아쉽구나. )

[출처] Metalhead.ulsan 인스타그램


아들: 그런 데 가면 진짜 심취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근데 음악 카페라는 게 진짜로 있어요?


아빠: 옛날에는 음악 신청하면 틀어주는 카페가 따로 있었어. LP나 테이프 들고 다니던 시절이라서. 요즘처럼 애플뮤직이나 스포티파이로 바로 듣는 시대랑은 다르지.


아들: 그러면 한 가수 앨범을 통째로 듣는 게 당연했겠네요.


아빠: 맞아. 대신 앨범 한 장을 깊게 듣고 곱씹는 맛이 있었지.


아들: 힙합도 앨범단위로 나오는 게 많아서 한 번 들으면 끝까지 듣게 되더라고요. 그런 감성, 좋아요.


아빠: 그럼 이번 여름에 저 음악카페에 같이 가볼까?


아들: 좋아요!




오늘 처음 알았다. 아들이 작곡을 학원에서 배우지 않고 독학 중이라는 사실을.


브런치 작가 소개에 '작곡을 배우는 아들'라고 썼었는데.


당황했고 부끄러웠다. 집사람과 아들은 이 글을 되도록 늦게 보길 바란다.


그래서 대화를 해야 한다. 오늘도 했고 내일도 해야 한다.


PS.


문득 생각난 오래된 기억.


Sony 워크맨에 꼽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Queen의 Radio GaGa를 들으면서 독서실로 향하던 중학 시절.


그 당시 시대의 뒤편으로 밀려날 거라던 라디오를 향해 프레디 머큐리는 노래한다.


Radio, someone still loves you...


아들의 시대에도 새로운 것들은 계속 등장하고 오래된 것들은 사라지겠지만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음악처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하나씩 찾아가고 싶다.


이번 여름에 아들과 함께 울산젊음의 거리 메탈바에서 금지되지 않은 곡들을 마음껏 신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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