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16일 22:30
어제도 회식 때문에 늦게 귀가해서 아들과 이야기를 못했고, 내일도 회식 때문에 이야기 못 할 예정이다.
피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아무 이야기라도 해서 10분을 채워야겠다는 의무감이 더 앞섰다.
아들은 힙합을 들으면서 숙제를 하고 있었고 따라 듣다가 불러내서는 다짜고짜 음악 이야기로 직진했다.
나 : 너 음악 좋아하잖아? 친구들이랑도 음악 얘기 많이 해?
아들 : 네, 학교와 성당을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힙합은 안 듣는 거 같아요.
나 : 그럼 네가 입문시키려고?
아들 : 네. 걔도 음악을 좋아하고, 걔도 제가 힙합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가능성이 있어요.
나 : 어떻게 친구에게 힙합을 소개할까?
아들 : 그냥 ‘이거 들어볼래?’보다 ‘이게 왜 좋은지’ 설명해 주면 더 괜찮을 것 같아요.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 졌다.)
나 : 오~ 좋다. 연습으로 아빠에게 힙합을 소개해보자. 힙합의 어떤 점이 좋은 것 같아?
아들 : 자유롭잖아요. 기존 음악 틀에서 벗어난 느낌? 감정도 다양하게 담을 수 있고요.
나 : 다양한 감정은 다른 장르에도 있지 않나?
아들 : 맞아요. 그래도 팝은 보통 싱글 위주인데, 힙합은 앨범 단위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곡들이 유기적이고 스토리텔링도 더 잘 살아 있어요.
나 : 맞아. 옛날에는 팝 앨범도 앨범 중심이었는데. 근데 힙합도 스트리밍 영향으로 앨범 다 듣는 사람이 줄었을 텐데?
아들 : 그래도 앨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앨범으로 말하는 거죠.
나 : 어른들이 생각하는 힙합은 멜로디 없이 랩만 나오는 음악으로 생각하거든. 그래서 좀 거리감 느껴지는 경우도 있어.
아들 : 아니에요. 힙합에도 피아노 나오고 기타도 나오고, 다양한 스타일이 있어요. 사운드도 꽤 감각적이고.
나 : 그럼 너는 외국 힙합으로 들려줄 생각이야?
아들 : 고민 중이에요. 외국 힙합은 가사나 주제가 좀 세잖아요. 듣자마자 욕 나오는 것도 있고
나 : 듣자마자 욕이 튀어나오는 거 아니면 괜찮지 않나? 팝을 해석 안 하고 듣는 경우도 많잖아.
아들 : 솔직히 말하면, 욕이 좀 있어도 사운드 좋으면 전 많이 들어요. 가사가 좋으면 더 좋지만요.
나 : 그건 네가 이미 많이 들어서 그런 거고. 힙합이 새로운 친구한테는 조금씩 접근해야겠지.
아들 : 네. 그래서 그런 사운드 좋은 곡,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느낌의 곡 위주로 보여주려고요.
나 : 근데 힙합은 가사가 길어서 그런지, 욕이 들어갈 확률이 높긴 하지.
아들 : 맞아요. 근데 걔는 음악을 막 깊이 듣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런 부분에 민감하진 않을 것 같아요.
나 : 그 친구랑은 아직 음악 이야기 본격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
아들 : 네. 얘기는 자주 하는데 음악 얘기는 잘 안 해요.
나 : 그럼 네가 먼저 자연스럽게 꺼내야겠네. 아빠 친구는 옛날에 헤비메탈 입문시키려고 아빠 책상 위에 노래 테이프를 다짜고짜 올려놨어.
'헤비메탈'은 두껍고 무겁게 울리는 기타 리프에 파워풀한 드럼, 거친 샤우팅과 어두운 가사 주제(사회 비판, 죽음, 종교, 반항)가 특징이며 대표적인 그룹은 Judas Priest, Metallica, Pantera, Helloween 등
아들 : 학교에서요?
나 : 응. 몰래 들고 왔어. 자기 좋아하는 앨범이라면서 이거 들어보라고. 이 테이프에는 어떤 노래가 들어 있을까 하고 호기심이 발동했지.
아들 : 테이프 들어본 적 있어요! LP는 요즘도 사는 사람들 있다면서요?
나 : LP로 음악을 듣기도 하는데, 소장용으로 사는 경우도 많지. 예전에는 카세트, LP, CD로 음악을 들었지.
아들 : 요즘도 LP 앨범 사는 사람들 있어요. 진짜 좋아하는 아티스트 거면 일부러 앨범 사요.
나 : 그건 ‘소장용’이지. 옛날엔 LP로 음악을 들어야 했으니까. 듣고 싶은 음악 있으면 용돈 모아서 샵으로 달려가는 정성이 있었어.
아들 : 맞아요. 지금은 스트리밍에서 제목만 입력하면 바로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나 : 대신 쉽게 스킵도 해버리지. 예전처럼 몇 번을 돌려 듣고, 음미하고 그러질 않지.
아들 : 저는 그래도 같은 곡 되게 많이 들어요.
나 : 그건 네가 듣는 법을 아는 거고, 입문자한테는 그게 어려울 수도 있어.
아들 : 맞아요. 한 번에 “좋다!”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나 : 그래서 소개할 땐 뭔가 이야깃거리가 필요해. 음악 자체 말고도, 그 곡에 얽힌 이야기나 뮤비, 굿즈, 뒷이야기 같은 거.
아들 : 뮤비 좋죠! 유튜브 영상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나 : 맞아. 그게 바로 ‘입문자용 영업 전략’인 거지.
오늘도 공부를 이야기할 틈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신나게 이야기하는 아들을 보니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나도 같이 힙합 전사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음악에 대한 생각이 진지해서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백하자면 아들이 '친구 힙합 끌어들이기 전략'을 짜는 동안 난 아들에게 "힙합 말고 다른 장르를 들어보는 건 어때?"라고 영업하고 싶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남에게 소개하고 영업하는 방법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사람을 관찰하는 좋은 공부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