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10일 오후 10시
오늘 이야기는 교실에서 야구하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반의 3분의 1이 야구를 하다가 선생님께 혼났다고 하면서 본인은 야구를 하지 않아 혼나지도 않았고 친구가 혼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덤덤히 이야기했다.
내 아들이지만 이건 좀 냉랭한데?
이야기할 때면 보통 타이머를 켜두고 10분이 지나면 이야기를 끊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계속 이야기가 길어져서 야구를 하기에는 교실이 덥지 않느냐로 이어졌고 더위진 교실에서 지구 온난화로 이어지는 이야기 릴레이가 다시 시작됐다.
참고로 이 때는 장마가 끝났다는 일기예보가 지배적이었는데 지금은 전국이 폭우로 인해 수해에 고통받고 있다니. 정말 야구랑 날씨는 모르는 거다.
< 요즘 날씨 덥지 않아? >
나: 요즘 날씨 많이 덥잖아.
아들: 요즘은 좀 많이 더워요. 그래도, 에어컨도 틀고 선풍기도 있어서 괜찮은 편이에요.
나: 학교에선 에어컨 잘 틀어줘?
아들: 맨날 틀죠. 근데 잘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어요. 반마다 좀 달라요.
나: 너무 더워서 에어컨 준비 안 된 학교는 지금 폭염에 시달린다는 기사도 있던데.
아들: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선풍기도 있고 에어컨도 있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애들도 휴대용 선풍기 가져와서 많이 틀기도 해요.
나: 이틀 동안 좀 시원했잖아. 어제는 바람도 불고.
아들: 네. 오늘은 흐리기도 했고요.
< 벌써 장마가 끝났다고? >
나: 장마는 끝났다고 하더라. 근데 장마가 끝났다고 해서 비가 안 오는 건 아니니까.
아들: 올해 장마는 왜 이렇게 갑자기 끝난 거예요? 너무 더워서?
나: 원래 장마전선은 고온 다습한 남쪽 저기압과 차갑고 무거운 북쪽 고기압이 만나서 생겨. 근데 올해는 남쪽이 너무 뜨거워서 장마전선을 밀어 올려 버린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장마전선이 사라졌어.
아들: 아하, 그래서? 서울도 비 안 온다 하던데요.
나: 최근에 장마전선이 우리나라 한참 위로 올라가 버렸어. 중국, 러시아 위쪽으로.
아들: 서울은 잠깐 비 왔었대요. 근데 진짜 금방 끝난 거였구나.
< 올해 여름, 역대급이죠? >
아들: 부산이 이렇게 더운 적 별로 없잖아요. 요즘 역대급 아니에요?
나: 맞아. 사실 매년 신문, 뉴스가 역대급이라고 하긴 해도, 올해는 진짜 '역대급'인 느낌이야.
아들: 맞아요, 부산이 34도까지 올라간 적은 잘 없잖아요.
나: 꼭 그렇지는 않아. 문제는 이 더위가 너무 빨리 왔다는 거지. 7월 말쯤 돼야 하는 더위가 7월이 시작하자마자 왔잖아.
아들: 7월이면 보통 28~30도 아닌가요?
나: 맞아. 근데 요즘은 여름 시작부터 폭염이야. 더운 데는 36도도 넘잖아.
아들: 미국도 그렇죠? 42도 넘는 데도 있고.
나: 맞아. 거기다가 미국은 지금 전기가 부족해서 에어컨도 못 틀고, 그래서 더워서 사망하는 사람도 많아.
< 더위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
아들: 미국에서 에어컨도 못 트는 집이 있다고요? 그래도 미국은 선진국이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고 일할 사람도 많고. 그래서 다들 잘 사는 거 아니에요?
나: 미국 인구는 많지. 그런데 거기도 못 사는 사람들이 있어.
그 와중에 멀리서 엄마가 끼어든다.
엄마: 미국에도 돈이 없어서 과자로 배 채우는 사람도 많아요. 미국이라고 다 잘 사는 거 아니거든.
엄마: 그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예요.
나: (씁쓸한 표정으로 살짝 정색하며) 아들한테 그렇게 비관적으로 말하지는 말자고.
나: 미국 콜로라도 같은 사막 지역은 기온이 더 오르기도 해. 근데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도 많아. 전력망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곳도 있고. 만약 아빠가 그 에어컨 못 켜는 그 한 명이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아들: 근데 사실 한국도 비슷하지 않나요? 부산이나 제주 말고 대구, 서울 이런 곳들은 여름에 엄청 덥잖아요. 에어컨도 못쓰는 집도 분명히 있을 거고.
나: 그렇지. 그래도 한국은 미국보다는 낫지. 적어도 더워서 죽는 사람 수는 훨씬 적을 거야.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아들: 그런가요? 미국은 사막도 있고 진짜 더운 데가 있긴 하니까요. 우리는 그렇게까지 덥진 않겠죠?
나: 한국은 기후적으로 축복받은 나라지. 근데 대구 같은 곳은 요즘 미국 못지않게 덥다고 하더라.
아들: 대구는 35도까지 올라가잖아요?
나: 응, 거기다가 그 동네에서 주차된 차 안 온도가 40도 넘게 찍혀. 작년 여름 기억나? 차에서 40도 봤잖아.
아들: 맞다. 아스팔트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지면이 너무 뜨거워서.
나: 그것도 있지만 햇빛이 차 유리로 들어오면 내부 공기를 뜨겁게 하니깐, 공기가 빠져나가지도 않고 계속 덥혀져서 차 안이 진짜 뜨거워지는 거야.
< 온난화를 막는 건 우리의 몫 >
아들: 근데 이렇게 장마 없이 지나가면 농작물이 진짜 큰일 난 거 아니에요?
나: 그렇지. 거기다가 이번에 가축 12만 마리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더라. 폭염 때문에.
아들: 진짜요? 그거 스스로 죽은 거예요? 사람이 죽인 게 아니라?
나: 응. 더워서 가축들이 그냥 못 견디고 더위에 죽은 거지.
아들: 그 정도로 덥지 않았던 거 같은데.
나: 야, 평소 27도에 살던 가축들이 갑자기 37도로 올라가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버티기가 쉽지 않지. 노인들도 갑자기 더워지면 돌아가시는 분이 많아 지거든. 동물도 똑같아.
아들: 가축은 진짜 큰일이구나. 농작물은요?
나: 말라죽지. 물도 부족하고. 그래서 올해 가을엔 곡식과 채소 가격 엄청 오를 거야. 너무 더워서 농작물도 제대로 못 자라.
아들: 그럼 가을에는 비 안 내려요?
나: 그건 가봐야 알지만, 이미 여름에 이렇게 가물어 버리면 가을의 비는 소용이 없지.
아들: 이번 여름 진짜 몇 년 만에 이렇게 더운 거라 걱정되긴 해요.
나: 그래서 우리가 온난화를 막아야 된다는 거지.
아들: 근데 계속 탄소 배출이 계속 늘고 있잖아요. 일본 핵폐기물도 그렇지만 자연에 위험한 것들을 자꾸 배출하네요.
나: 맞아.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세계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
아들: 오늘부터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더 잘해야겠어요.
나: 아빠와 아빠세대가 너희에게 미안하구나.
기성세대로써 미안했다. 어릴 때는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분명히 가슴속에 있었다.
샴푸도 덜 쓰고, 샤워도 짧게 하고, 선풍기도 덜 쓰고, 이면지는 악착같이 메모지로 사용했었다. 잔반은 남기지 않고 다 먹었고, 어떤 곳이라도 대중교통으로 못 갈 곳이 없다는 신념으로 뚜벅이로 살았었다.
이제는 이면지를 골라내는 시간이 아깝고, 편하게 갈 수 있으면 집 앞 마트에 갈 때도 운전하기도 한다. 음식 남기지 않으려고 다 먹는 건 건강에 나쁘니깐 생각 없이 다 버린다. 시간을 아끼고 편함을 얻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고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건 국가와 기업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 나 하나로 바뀌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자위하며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아들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기후위기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러면 내가 아빠가 되면 세상이 너무 뜨거워져서 다 못 사는 거야? 그거 알면서도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
아들은 저 이야기를 했던 걸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걸 기억하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고 싶었다. 결말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살아온 날들을 오늘은 반성해 본다.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