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빠가 제대로 욕하는 법을 가르쳐줄게(1)

25년 7월 12일 밤 10시

by 마법수달

이제 1주일이 지나간 사춘기 아들과 매일 10분씩 대화하기.


순조로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암초를 만났다. 점점 아들과 대화가 길어지고 말이 편해지니 예민한 주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매운맛 대화가 시작됐다. 아들의 생각이 새롭고,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오늘은 레지오(성당 모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욕설, 친구 관계, 학교생활까지, 10분 이야기였는데 35분을 넘기는 바람에 2편으로 나누어서 써본다.




< 디지털 디톡스는 성당에서 >


나: 오늘 레지오에 따라갔다가 저녁 먹고 왔다며? 성당 레지오는 가면 뭘 하는 거야?


아들: 모르겠어요. 그냥 선생님이 주일학교 애들 있으니깐 갑자기 레지오 구경하고 고기 먹고 가라고 해서 따라갔어요.


(레지오는 성당에서 기도와 봉사를 통해 선교활동에 참여하는 평신도 단체다.)


나: 레지오에서는 뭐 했어?


아들: 레지오에 들어가자마자 폰을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성경이랑 작은 기도책 보면서 잘 모르는 기도를 하더라고요.


나: 아빠도 레지오는 안 해봐서 잘 몰라. 그래도 따라갔으면 폰 안 쓰고 집중하는 게 맞지.


아들: 따라간 고깃집에서는 앉아서 그냥 유튜브 봤고, 형들 누나들도 인스타 하고 있었어요.


(잠깐이지만 아들에게서 폰을 분리시켰다니, 역시 종교단체는 좋은 곳이었어. 기왕이면 고깃집에서도 선생님들에게 경청하려면 폰 안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하려다가 참았다.)


< 욕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는다고? >


(며칠 전 길거리에서 욕을 하던 아들과 같은 학교 중학생들을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다.)


나: 그런데 학교에서 애들이 좀 거친 말을 많이 쓰니? 패드립 같은 것도 해? 너도 하니?


아들: 음, 잘은 안 해요. 패드립은 잘 안 하고 욕은 좀 많이 해요. 애들이랑 대화하다 보니까


(아들이 학교에서 욕이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편안한 대화와는 다른 꾸짖음이 될 것 같은 느낌에 다른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 근데 네가 욕 들으면 또 기분이 안 좋잖아.


아들: 네.


나: 근데 이제 네가 기분이 안 좋은데 그럼 네가 상대한테 욕을 하면 또 상대도 기분 안 좋을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욕을 좀 하면 안 되겠다 약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아들: 사실 욕 들었다고 기분 나쁠 건 없어요. 저희 반 애들의 80%가 다 욕을 해서 특별할 것도 없고요. 욕이란 게 원래 어차피 인신공격이고 그냥 말로 하는 것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냉소적이라고 해야 하나, 욕 자체를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 네가 부반장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


아들: 욕이 기분 나쁜 건 모르겠고 좀 짜증 나는 거는 부반장이 시끄럽다고 매번 "닥치라고!" 하는데 너무 시끄러워요. 변성기가 안 온 목소리로 그러니 더 시끄러워요.


나: 부반장은 나름 자기 역할하려고 그런 거 아니야?


아들: 그런 것도 있겠죠. 애들 조용히 시켜서 빨리 집 가려고 하는 것도 있겠고 물론.


나: 그럼 뭐 좀 듣기 힘들어도 사실 좀 어느 정도 이해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아들: 그런데 맨날 그래가지고 듣기 짜증 나요.


나: 네가 부반장이었으면 어떻게?


아들: 저는 부반장 출마를 안 했으니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역할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인 거 같아요.


(처음엔 불만만 가득해 보였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반장을 "욕먹고 싫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자리"로 말해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 욕 하는 것보다 더 얄밉게 욕을 이용하는 인간들 >


아들: 것보다 욕을 하게 만든 다음에 그걸 쌤한테 고자질해서 성찰문 쓰게 한다고 협박하는 애가 있어요. 저도 욕 하다가 그 애 때문에 걸려서 한 번 썼거든요.


나: 그런데 걔가 고자질한 거 말고는 증거가 없잖아?


아들: 네, 그래도 그냥 고자질하고요. 보통은 가해자가 인정해요, 그래서 성찰문 써요. 만약 인정 안 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전 사실대로 다 말했거든요, 거짓말이 더 커지고 상황도 더 커지는 건 안될 것 같아서요.


나: 그냥 욕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네. 오히려 성찰문 쓰고 나서 더 큰 싸움 나겠는걸?


아들: 걔는 선생님을 이용하려는 애예요. 그 시스템을 그냥 이용하려는 애요. 자기는 티 안 나게 욕하고 남이 대 놓고 욕하면 그걸로 성찰문 쓰게 만들어요. 저도 대놓고 욕하는 편이어서 오히려 좀 배우고 싶어요.


(욕 하는 것도 스킬이 필요하구나, 뭐든지 요령 있게 하는 게 중요해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욕을 자꾸만 권장할 수는 없었다.)


< 라떼는 욕하면 말이지? >


나: 나도 배우고 싶네, 그 티 안 나게 욕하는 방법.


(그리고, 여기가 라떼는 타이밍이다. "아빠도 사실은... " 충격고백!)


나: 아빠도 그게 안 됐던 거야. 초등 6학년 때 할아버지, 할머니랑 저녁 먹는 자리에서 욕을 한 거야. 나도 모르게. 뭐라 했냐면. "엄마, 날씨가 X나 춥네요"라고 했거든.


아들: 그때도 "X나"라는 말이 있었어요?


(뭔가 흥미로워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이걸 잘했고 저걸 잘했고 보다 아빠도 이래서 혼나고 저래서 못하고 쪽에 공감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나: 있었지. "X나"라는 욕은 역사 깊은 오래된 말이지. 그렇게 욕했어. 그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갑자기 이렇게 팍 째려보는 거야.


나: 아빠는 잘 몰랐어. 아빠는 알면서 욕한 게 아니야. 그냥 입에 붙은 거예요. 그래 조금 있다가 또 말했어. "진짜 날씨 X나 춥네요." 그랬더니 갑자기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호통치시고는 아빠를 팬티만 입힌 채로 집 밖으로 쫓아내셨어.


나: 아빠 그때... 주위에 좀 일진 같은 애가 있었고, 걔가 밥만 먹으면... 그러니까 욕이 거의 80%였어요. 욕만 나왔어. 욕만 했어. 그런 사람하고 어울려 있으니까 계속 욕을 하는 거지.


아들: 주변 환경도 한몫하긴 하겠네요.


나: 주변 환경이 정말 중요해. 욕을 안 하는 사람 3명 하고만 둘러싸여 있으면 네가 욕하는 방법 잊어버릴걸?


아들: 아니에요, 전 그래도 계속 욕을 할 것 같은데요?


나: 그러면 앞으로는 언제쯤 되면 욕을 안 하고 살 것 같아?


아들: 60살 갱년기가 되면요.


나: 갱년기가 몇 살이야?


아들: 대충 50대 후반 아니에요? 아님 60대?


나: 그럼 아빠는 지금 욕 못 끊고 계속하면서 사는 것 같아?


아들: 그건 아닌데 그래도 가끔씩은 욕하시지 않을까요?




이번 대화를 통해 깨달은 몇 가지는


1. 아이들의 기준을 존중해줘야 한다.

욕설이나 친구 관계에 대해서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먼저 들어보지 않으면 그대로 대화가 끝나버리겠더라.


2. 경험담이 생각보다 공감을 받는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집중해서 들었다. 교훈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더 와닿는 것 같다.


3. 대화는 시간이 필요하다.

35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나오지 않았던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4. 대화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가 매번 다르고, 때로는 당황스럽지만 이런 대화들이 쌓여서 아이와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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