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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Dec 02. 2015

너무 일찍은 철들지 마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바스콘셀로스/ 박동원 옮김 / 동녘

7살이 된 아들 연우는 한 켠에 수북이 쌓여있는 장난감 통에서 장난감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엄마에게 말한다. 


"이 장난감, 유치원 동생들 줘도 돼." 


아내가 얼마 전에 장난감 이제 많이 가지고 놀지 않으니 유치원 동생들 주는 게 어떠냐고, 흘려지나가듯 말했던 걸 계속 생각했나 보다. 


 "우리 연우 많이 컸네. 그럼 동생들 주자!" 


엄마와 아들은 그 많은 로봇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연우가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을 본 후 사 달라고 노래를 불렀던 또봇이며, 헬로카봇, 울고 불고 했던 로보카폴리 등이 우르르 끄집어져 내어졌다. 떨어져 있는 팔, 다리를 하나하나 다시 조립하고 접혀 있는 로봇 바퀴를 폈다. 그렇게 한참을 뚝딱거리더니 모든 로봇을  한쪽으로 몰았다. 


"기념사진 찍어줘!"


이제 가지고 놀지 않을 거냐는 나의 말에도, 그럼 이제 무엇을 할 거냐는 아내 말에도 그냥 씩 웃으며 '진정한 일곱 살'은 로봇을 가지고 놀지도, 떼를 쓰지도 않는단다. 그리고 이제 다른 걸 할 나이라고, 책을 보고 일기를 써야 진정한 일곱 살이라고 말한다. 아이 엄마는 대견하다고 머리를 흩뜨렸다.


나 역시 칭찬을 해주다가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져 버렸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가 얼마 전이었는데. '슈웅~'거리면서 장난감을 들고 날아다니고,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변신해 악당을 물리치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내가 항상 생각하는 연우보다 더 빨리 커버렸다. '상상 속의 로봇들은 이제 너  마음속에서 떠나가는 거구나.' '이제 동화의 나라에서 나올 준비를 하는 것이구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바스콘셀로스 / 박동원 옮김 / 동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바스콘셀로스, 동녘)에서 제제는  마음속에서 항상 노래를 부르고 말을 시키고 있던 작은 새를 놓아주기로 결심하며 밍기뉴에게 말한다.


"제제, 우리가 기다리는 게 뭔데?"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이 하나 지나가는 것."

"뭘 하게?"

"내 작은 새를 풀어 주려고."

"그래, 풀어 줘. 더 이상 새는 필요 없어."

우리는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거 어떨까, 밍기뉴?"

잎사귀 모양의 크고 잘생긴 흰 구름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밍기뉴."

나는 가슴이 뭉클해져 벌떡 일어나 셔츠를 열었다. 내 메마른 가슴에서 새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p102) 


그런 것일까. 제제가 가슴속에 살고 있는 상상 속의 새를 보내줌으로써 철이 들어감을 받아들이듯이, 연우가 로봇을  떠나보냄으로써 철이 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연우가 아니어서 연우의 마음에 깊숙이 닿을 수 없어 그의 뜻을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어렸을 때 상상 속의 영웅에서 물러나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았듯이, 그도 그럴 것 같다는 묘한 동질감이 들어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겠지 싶다.


에휴 이게 무슨 청승이람. 벌써 커버린  것처럼, 자신은 진정한 일곱 살이고 말하는 연우는 이제 조금 더 크면 더 큰 세상으로 갈 것인데, 아직 나는 보호가 필요한  작디작은 새처럼 내 품안에 꼭 넣고만 싶은 마음만 가득하니, 앞으로 서글플 일이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커나가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하나 또한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이 기억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쓴다. 사실 어쩌면 이 글은 상상 속의 로봇과 지내는 연우를 보며 나 역시 순수해지고 싶은 욕망을 다시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셀프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이다. 연우야. 너무 일찍은 철들지 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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