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단 1.6%의 유전자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를 갈랐는가!
1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제3의 침팬지>라니요. 혹성탈출류의 SF적 느낌도 나고, 저 침팬지가 '우리가 아닐까'라는 놀라운 예지력도 들 수도 있는.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사야 했습니다. 호기심은 못 참거든요. 그래서 도서정가제 전에 충동구매했습니다. 벌써 일 년이 지났군요. 촌스러운 책 표지도 스킵하고, 511페이지를 자랑하는 두께도 살펴보지 않고, 그냥 제목 보고 질렀던 책입니다.
2
아, 사실 '그냥'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대충 다른 도서에 끼어 넣고 샀지만 그냥 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최고의 지성인 국립도서관에서 대출 1위라는 영예로운 기사와 퓰리쳐상 수상 경력을 보고, 지성인 마냥 훈훈한 미담에 동참하고 싶어서 <총, 균, 쇠>를 읽었으니까요. 물론 그 대출 1위가 과제로 인한 대출이라는 것과 마케팅의 힘으로 일등을 하는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았긴 했지만, 뭐 어떻습니까. 나는 덕분에 <총, 균, 쇠>라는 대작을 읽었으니 퉁친 걸로 했더랬습니다.
3
<총, 균, 쇠>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인류 문명과 역사는 인종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순전히 환경적 차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이 주장을 마주할 때는 막연하게 '그래,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우월한 백인족' 그러면서 서구 사회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기도 하였죠. 그런데 읽으면서 빠져들어버린 것입니다. 순전히 환경적 차이임을 증명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방대한 지리학적, 역사학적 증명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납니다. 문명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할까요. 문명을 만들어낸 것은 '유별난 종족'이 아닌 '그 환경에 살았던 재수 좋은 종'이어서 그러했을 것입니다. 뭐 이것 역시 팔자 아니겠습니까. 엄청난 환경을 물려받은 금수저 이론은 요즘도 팔자로 치부하니, 인간의 역사는 '팔자'의 역사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4
휴. 사실 다이아몬드는 그리 재미있게 쓰는 과학자는 아닙니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정말 차분하고 잔잔하게 박학다식한 교수님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느낌. 그래서 졸리기도 하는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살짝 겁도 나고 그랬었는데. 의외로 <총, 균, 쇠>보다 위트가 있네? 이렇게 느꼈습니다. 이 책이 <총, 균, 쇠> 이전에 나온 책인데, 위트가 있다니 생경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그냥 읽으면서 재미있다 재미있다 연발하는 책은 절대 아니니, 주의하시고요. 하지만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굳이 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만 읽으면 정말 유익한 책 중 하나로 자리는 잡을 만한 책인 것은 확실해요.
5
그래도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라던가, 과제 때문에 이 책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도 한 번에 후려쳐 봅시다. 쉽게 줄여 보면 이것입니다. 우주인이 만약에 우리 지구에 와서 종들을 분석해 본다면 우리 종은 인간으로서의 종이 아닌, 피그미침팬지, 아프리카 침팬지에 이어 인간을 제3의 침팬지라고 분류할 거랍니다. 왜냐하면 유전자인 DNA 분석을 해보면 그렇답니다. 유전형질의 98.4%가 같고 차이는 1.6%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실 인간과 침팬지가 700만 년 전부터 분화되었음을 과학자들이 논증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렇다면 그런 1.6% 차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어'라고 다이아몬드는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매개로 진보한 1.6%의 차이 때문에 인류가 폭삭 몰락할 것이랍니다. 다 되었습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생물학적으로 거의 비슷하지만 복잡한 언어 체계라는 것을 만들어서 인간은 모든 만물의 영장이 되어 있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망해가고 있다'라는 게 이 책의 핵심입니다.
6
써 놓고 보니 다이아몬드에게 죄송합니다. 사실 이렇게 후려칠 내용이 아닙니다. 주장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가는 거와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 책을 읽게 되는 중요한 까닭인 지식의 확장과 논리적 설득이 빠져버리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과학적 글쓰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책이에요. 천천히 따져가며 읽어야 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논증하여 주장하는지를 꼼꼼히 분석해가야 합니다. 문단 간의 관계도 고려하고 '장'마다 하는 이야기들이 '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부'의 '장'들이 이야기들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계속 추적해가야 하는 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7-1
1부는 인간은 대형 포유류의 일종이랍니다. 인간은 침팬지에서 분화된 유인원과 다르지 않으며 98% 이상이 침팬지와 같다는 지극히 생물학적 관점을 다룹니다. 우리 인간은 어느 종쯤에 있는지 말이지요. 그러면 왜 인간으로 분화되어 왔으냐를 생물학적으로도 따져봐야 하는데 그 나머지 약 2%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4만 년쯤에 인간으로서의 대약진이 일어났는데 그 대약진의 방아쇠는 음성언어의 발달을 듭니다. 4만 년쯤의 대약진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우리 현대의 모습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현대적인 신체구조와 행동 양식, 언어능력 모두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때의 사피언스가 현대에 와도 아이폰을 만지고 자동차도 운전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7-2
2부는 이상한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 동물인 인간의 생활상의 변화를 다룹니다.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사이클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한 장입니다. 진화학이나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익히 알고 있을 그런 내용들, 성행동의 진화, 섹스, 유전자 번식의 과정, 인종의 기원, 죽음과 노화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연도태,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진화해 온 인간의 생화 모습을 다룹니다. 2부는 쉽게 다가옵니다. 아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본능을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간통을 어떻게 볼 것인가요. 왜 늙어가고 죽습니까? 단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냥 생물학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당위가 아닌데 사실과 당위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아서 진화심리학을 얼핏 알고 그 내용을 가지고 많이 싸워요.
7-3
3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1.6% 차이인 인간의 특수성을 다루고 있는 장이기 때문이에요. 인간만의 특수성이 무엇일까요. 바로 언어 문법의 발달입니다. 언어를 복잡하게 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다른 종들보다 우월하게 대약진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예술, 기술, 농업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농업혁명으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사회와 국가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다 들어보셨을 테니 패스하고, 인간의 특수성으로 약물 중독도 다루고 있으니 그것도 읽어볼 만합니다. 요약은 짧게 했지만 굉장히 구구절절한 부가 되겠습니다.
7-4
3부가 하이라이트다라고 써는데 전 4부를 훨씬 강렬하게 읽었습니다. 어쩌다 1.6%의 특수함을 가진 인간이 어쩌다 정복자가 되어 필연적으로 망해간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특수하기 때문에 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인간이라니. 환경을 파괴하고 조각내고 왔다는 게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라니. 다른 종을 말살시키면서, 같은 종이라도 조금만 다르다 느끼면 제노사이드 해나가는 게 우리 놀라운 지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 현상이었다니. 우울하게 장을 서술해나가고 있으나, 가치 있다 여긴 장입니다. 정복의 과정도, 파괴의 과정도 거시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문명의 역사를 조명해볼 수도 있는 장입니다.
7-5
결국 마지막 5부와 에필로그는 그러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우수성과 문제점을 두루 가진 인간의 특성을 잘 파악해, 우수성을 살리고 문제점을 제거해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덜도 말고 더도 아닌 딱 그만큼의 장입니다. 하이라이트를 넘어와서 그런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샌님 같은 마무리가 있는 장이에요.
8
이제 그만 써야겠습니다. 한창 인간이었는데 쓰다 보니 머릿속이 막 어그러져 침팬지 98% 유전자가 욱 하고 치밀어 올라서요. 요약하다 보면 가끔씩 폭력적인 내 유전자가 발현되나 봅니다. 여하튼 제목이 마음에 든다고 떠들면서 쓴 글이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중언부언하다 끝난 것 같아 제대로 된 책 요약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속은 상하는데 어쩌겠습니까. 다이아몬드의 방대한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미천한 독자의 한계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딱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