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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Oct 21. 2015

다름을 이해하는 것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 김대식 / 문학동네

1. 다름을 이해하는 것


"결국 이번 '드레스 사건'의 핵심은 바로 이거다. 같은 드레스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신기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르게 보는 세상을 같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신기할 뿐이다."(p31)(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몸밖에 있는 세포 덩어리들 역시 내가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이 문제를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 해결했을 거라고 가설한다. 인간은 결국 '언어'라는, 몸밖으로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 내가 아닌 타인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가서 마실 것 좀 사 와'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듯, 베리아에게 '저놈 쏴 죽여'라는 명령 하나로 스탈린은 러시아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p60)


그녀는 나를 스무 살에 만나서 스물일곱 살에 내 곁을 떠났으니, 햇수로 7년을 만났다. 7년이 돼가는 어느 날, 문득  어느 새 그녀가 나의 일부분이 되어있다고 느꼈다. 내 생각이 그녀의 생각과 같다고 믿었고 내 행동은 당연히 그녀가 하는 행동의 연장선이라 여겼다. 나와 그녀는 다르지 않을 것임을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결국 그러한 오만함은 그녀를 언어와 행동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답답했을 것이다. 이십 대의 대부분을 내 울타리 속에 있었음이 억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와 그녀는 분명 다른데, 난 그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다. 긴 시간 울면서 그녀가 말했던 그 '다름'이 그녀가 내 곁을 떠나버린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아닌 타인의 몸과 마음을 제어한다는 것이 커다란 폭력이었음을 그때 알았다. 그녀는 내가 아니었다.



2. 기억을 편집한다는 것


"나쁜 기억을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나쁜' 마음은 없애고 '좋은'마음만 남기느 것도 가능할까?"(p112)(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게 아니다. 기억은 항상 업데이트된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 느낌, 생각이 우리의 과거를 계속 편집하고 있으며, 현재의 변화가 클수록 우리의 과거 역시 더 많이 편집된다."(p127)


헤어지고 한 동안 머릿속이 엉클어져 있었다. 항상 옆에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공허함과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좌절감은 '분노'라는 감정으로 변했다. 미워하는 마음이 커졌고, 상대적으로 좋은 기억은 애써 지워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신기하게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진리인 듯, 여느 연인들의 헤어짐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움의 감정은 지워지고 아련한 장면들만 남아 계속 재생이 되는 거다. 한동안 그랬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할 만큼 뇌의 한쪽 구석으로 바싹 밀려 있지만 ,앞으로도 삭제되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영구 재생될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듯, 기억은 항상 내 입맛에 맞게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될 것이며 내 뇌는 스스로 계속해서 편집하고 있을 것이다.    



3. 왜 우리는 달라졌는가


"생각하고, 인식하고, 기억하고,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지극히 내면적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역시 나 자신과 비슷한 내면적 현실을 느끼고 있는지 증명할 수 없다. 우리는 단순히 타인의 행동, 그리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내면적 세상을 '짐작'할 뿐이다. 결국 "내가 너라면......"이라는 말은 "내 생각에 내가 너라면......"이라는 말일뿐이다."(p193)(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인간에게 대부분 소통은 정보 교환을 위함이 아니다. 우리 뇌는 단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 할 뿐이다 무의미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라도 말이다."(p205)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와 인연이 있던 그녀들과 처음에는 분명 너무나 잘 마음이 맞는다며 격렬히 사랑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왜 달라졌는가... 아마도 모든 것이 사랑이었던 것이 이제 환경으로 보이고, 상황으로 보이는 그 시점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너라면"이라는 주술이 입안에서 수없이 되뇌인다. '내가 너라면'이라는 말 속에는 '너'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너'라는 말을 핑계 삼아 단지 나의 의도와 나의 바람만 들어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 서로의 이기적 요구만 난무하고 그것을 해결할 의지는 상대에게 떠밀게 된다. 우리는 서로 지쳤을 것이며 그 누구도 상대를 공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을 정확히 그때, 나는 놓아줬으며 그녀들은 떠났다.



4. 너와 나는 다르다


"우리 모두 이메일, 소셜 네트워크, 클라우드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인생에 무료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단지 돈 대신 개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딥러닝 기계에 인간은 학습에 필요한 '학습지'일뿐이다." (p262)


싸이월드가 막을 내렸다. 한참 사진을 백업하느라 고생했다. 싸이속에 그녀가 남아있는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모두 삭제했는지, 아니면 애초에 없었는지 헛갈리기조차 한다. 다름을 몰랐던 시기. 다름에 분노하고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그 시기는 싸이 사진을 백업하며 같이 백업하지 않았다. 미숙하고 철없던, 고집불통이고 감정적이었던 그때의 나는 여전히 종료된 싸이월드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대신 학습의 효과는 대단한 것이어서 항상 '너는 나와 다르다'란 말을 주술처럼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길 것이다. 내가 보는 방향이 상대가 보는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서로 마주 보고 공감해주기 위해서는 서로 방향이 반대일 수도 있음을 평생 내 머릿속 기억에 그렇게 자리 잡고 반복 재생될 것이다.





* 유독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기억에 없다고 여겼던 이가 툭 튀어나와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동시에 잡아 가두어 기억 구석에 밀어넣었다... 고 여겼다.

* 서로 행복하면 그걸로 되었다.

*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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