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항상 야심한 밤 10시면 아이들은 자기 위해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꼭 안아주고 시크한 딸은 간접 키스를 날립니다. 올려놓은 주전자에 물을 끓일 때쯤 노트북을 켜놓고. 기관지에 좋다고 몽땅 사다 놓은 도라지차를 한 잔 타서 자리에 앉습니다. 읽다가 만 책들도 옆에 놓아두고, 조명의 채도도 약간 낮추어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져 오늘의 일들을 다시 꺼내어 살펴보고 좋은 것들을 담아봅니다. 그럴 때면 이 치열하고 난폭한 세계에서 그래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조각들이 생기는 겁니다. 조각들을 잘 맞추어나가는 것은 내일의 일이겠고, 오늘은 단지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확인하는 걸로 만족합니다.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p168)
나 아닌 '너'가 옆에 있으면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면 따라오는 그림자는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모두들 힘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