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없는 것일지도 몰라요.
[에세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 반비
1.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딜런과 에릭이라는 아이가 총기를 난사했다. 이 사건으로 열 세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언론은 가해자를 광기어린 살인마라고 말하며 자극적으로 헤드라인을 뽑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왜'에 초점으로 맞추며 그 원인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2.
총격사건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어쩐지 흔히 보는 풍경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정신나간 가해자의 행위에 주목하고, 그 행위를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메스컴은 대단히 폭력적이고 자극적으로 사건을 구성하며, 뉴스 사회자는 웅변하듯이 감정을 극한으로 고조시킨다. 전문가들은 모여서 패널이라는 형태로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면서 원인을 짚는데 그 해석이 각각 제각각이어서 뭐 그리 참고할 사항도 아니다.
3.
그럴때마다 궁금한게 내가 만약 전지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도대체 정말 그 가해자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상황은 어떠했을 것이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트리거는 무엇이었을까.
4.
이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은 콜럼바인 총격 사건에서 그 가해자들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거다. 그것도 그 가해자의 엄마가 본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니. 정말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인과관계가 작용했을까. 가해자들의 사적 생활이 얼마나 엉망이었고, 뒤죽박죽이었을까. 누구도 깊게는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을 더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에 책을 읽었다.
5.
결론부터 말하자면 뿌연함으로 덮인 실체를 찾기 위한 엄마의 처절함과 숭고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계속 읽어가면서 느낀 불편한 생각들이 가득한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악마가 되어버린 아들을 온전하게 실체와 마주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6.
타인의 목숨을 빼앗고 결국 자살로 마감한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처절히 '왜'가 아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를 엄마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랑을 넘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절대적 사랑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숭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니까. 그래서 공감했고, 아팠다.
7.
그러나 불편하다. 결국 엄마는 아들인 딜런에 대한 '어떻게'의 이야기는 실패했다.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처절하다. 암마의 기대와 다르게 가해자인 아들의 행동과 생각은 '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미 악이 되어버린 아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헛된 고생같아 보였다. 전지적 시점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음을, 오직 본인만 알 수 있음으로 귀결되는 내 마음 속의 생각들 때문에 편치 않았다. 악은 평범할 수 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평범성 때문에 '어떻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다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로 다시 치환될지 모른다. '왜 그 사람은 그런 일을 벌였을까.'
9.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문화들을 간과하지 말자. 사람들의 행동은 놀라운 것이어서 그런 것들을 진화적으로 체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해자의 행위에 주목하고, 그 행위를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감정을 고조하고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일수도 있겠다. 다행히 그런 악이 도처에 도사리니, 우리들은 제도를 만들고 윤리를 만들어내 인간성 속에 있는 폭력성을 제어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지극히 생뚱맞은 생각.
"나는 그저 내 아들을 꼭 안고 싶었다. 그리고 아들이 죽기 직전, 그 무시무시한 행동을 하기 전에 아들을 막을 한 번의 기회를 얻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빙빙 돌며, 똑같은 곳에서 시작해서 똑같은 곳에서 끝난다. "어떻게 우리 애가 그랬을 수가 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p85)
"딜런을 키우는 일은 끝이 났다. 이 아이를 만들어내는 데 들였던 모든 사랑과 노력이 끝이 났다.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p95)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