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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Apr 05. 2017

미스 함무라비

소설에 대한 짧은 서평

[문학] 미스 함무라비 / 문유석 / 문학동네


1.

종종 아이들이 다툼이 발생했을 때 해결되지 않으면 둘이 씩씩거리고 저에게 옵니다. 그러면 저는 판결 아닌 판결을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집니다. 문제는 선악의 문제로 다룰 수 없는 게 대다수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쉽게 판단하는 것을 뒤로한 채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봅니다. 듣다 보면 시시비비가 가려지거나, 서로 간의 오해가 풀리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의 문제는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상당히 난해합니다.


2.

절대 선, 절대 악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요. 어떠한 장면에서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 다른 장면에서는 선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그 사회에 맞게,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황과 합의에 맞게 법을 만들어서 서로 강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피엔스 종만이 가지는 고도화된 능력이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서 판사라는 존재는 그 법을 해석하고 상황에 맞게 정의 내려주는 법 심판 대리자이겠지요.


3.

그런 의미에서 문유석 판사는 판사계의 돌연변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 심판 대리자인 그가 갑자기 세상에 뛰어 들어서 자기 생각을 막 펼치고 다니니까요. 더욱이 자신의 정체성도 드러내고, 때로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주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종종 화제가 됩니다. 신문 칼럼에 올라오는 글이나, <개인주의자 선언>에서의 그의 당당함은 시원하고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평소에 제가 그를 눈여겨본 까닭이기도 합니다.


4.

그런 문유석 판사가 이번에는 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이 소설은 박차오름과 임바른, 한세상이라는 판사들을 중심으로 법정에서 일어나는 짧은 에피소드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박차오름의 좌충우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시원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책 카피에서 처럼 '법정 활극'으로 보면 됩니다. 사실 문학적인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이야기의 전형성이나 상투성도 곳곳에 존재하고, 문장에서 사유하는 힘을 잘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쉽게 쓰여 있어 가독률도 높고 판사실 속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신선해서 재미가 있습니다.


5.

무엇보다도 평소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소설에 그대로 녹아있기에 합리적 개인주의자로서의 그의 신념을 찾는 조금은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소설로서 책을 본 게 아니라, <개인주의자 선언>의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책을 읽은 까닭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뭐 처음부터 소설이라는 가치보다 작가 문유석의 생각에 대한 취향으로 책을 집어 들었으니까 당연합니다.


6.

법이란 것, 법치라는 것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도 많이 느꼈어요. 법의 존재 이유와 가치, 그리고 매력에 대해서요. 그런데 우리는 법에게 너무 관심을 주지 않아요. 사실 선뜻 다가가기도 힘들고요. 법은 분명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일텐데요. 그걸 이용해 가진 자들이 어려운 용어와 절차로 그들만의 전유물로 만들어내는 구조 속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진 자 문유석은 스스로 내려와서 '권리 위에 잠자지 말자'라고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까. 가지지 못한 자인 나 역시 조만간 법에 관한 책을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생각도 정리해보고 싶고요.


7.

여하튼 문유석 판사의 글은 계속 눈여겨보겠습니다. 전에 서평에도 썼듯이,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읽었던 그 경이로움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니까요. 또 다른 책 기대하겠습니다. 물론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만;;






"교도관에게 끌려나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며 임 판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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