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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Nov 10. 2015

반칙하지 않는 사회

국정화 교과서와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1. 

기록으로 적히는 모든 역사는 역사서술자의 '주관적 기록'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서술자의 눈으로 볼 때 사실을 기록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좋은 역사가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를 써 내려갈 것입니다. 물론 나쁜 역사가는 주관적 기록이라는 한계를 넘어 거기에 '조작'을 보태겠지요. 모든 지난 역사는 이런 좋은 역사가와 나쁜 역사가가 서술한 역사들의 총합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2. 

그래서 역사 관련 책을 선택할 때는 작가와 출판사를 따져봅니다. 심지어는 출판 시기까지 살펴보게 됩니다. 그 당시 시대상황과 흐름 속에서 책이 선택되어 나오기도 하니까요. 책을 선택하는 독자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인식을 고려하며 역사책을 집어 듭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책을 선택하던지, 다른 관점의 책을 선택해던지, 무엇 이든 간에 독자는 '의도'를 가지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책,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집어 든 까닭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근현대사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장의 한복판에 있으니까요. 적어도 교사로서 의도적으로 '조작'하려는 역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3. 

저는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유시민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유시민의 가치관에 대한 존중에 대한 '의도', 그의 논리적 사유 체계와 글쓰기에 대한 믿음에 대한 '의도', 그리고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그의 글을 최대한 비판적으로 보겠다는 '의도'가 그것이었습니다. 책은 상당히 속도감이 있습니다. 한 개인의 기록마냥 숨 가쁘게 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었습니다. 의도가 무엇이든 역사 속의 사건은 공과가 모두 있을 터이고,  공(功)과 과(過) 모두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요. 적어도 역사는 역사서술자의 이익을 위해 써 내려가는 것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런 생각을 하고 책을 덮은 그날 정부는 국정화 확정 고시를 강행했습니다.  


4.

진보와 보수, 두 프레임의 가치는 선악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틀리지는 않을 수 있기에, 보수와 진보 양쪽의 주장은 어느 쪽이 더 진실한가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내가 보수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진보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때론 보수의 안경으로, 때론 진보의 안경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념은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답이 없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은 다 허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자기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어느 한쪽이 반칙을 할 때입니다. '너 말이 맞을 수도 있는데, 반칙은 하지 말자.'라는 약속이 깨질 때일 것입니다. 국정화 확정 고시는 그래서 뼈아픕니다. 반칙이 난무하고 민주주의에서 이루어져야 할 의사결정 과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5.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유시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 있다고 믿는 사실들을 가져왔습니다. 그에게 의미 있는 사실들은 일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국가가 성장해가는 모습입니다.  성장해 왔던 대한민국의 빛과 그늘을 이야기하고 민주주의적 가치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탄압과 성장을 기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반칙하는 사회와 그것이 적날 하게 드러나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의미 있는 사건을 뽑아 역사를 통해 배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6. 

그가 진보적 가치를 지닌 '자유주의자'임을 잘 압니다. 따라서  책 속에 담긴 그의 의도를 경계하며 책을 읽기도 했더랍니다. '혹시' 너무 진보적 가치를 추앙하고 보수적 가치에 대해 너무 가차 없이 씹어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쓸데없이 걱정했나 봅니다. 욕망이 질주하는 한국 사회의 변화의 모습을 담담하게 표현해내고 있으니까요. 4.19와 5.16을 평가하고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의 공과를 평가하는 부분은 일방적인 소위 말하는 '좌파'의 주장과는 좀 다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욕망대로 병영국가로서의 사회 속에서 살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까. 그게 투영된 병영 사회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소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가 국민들의 요구로 이제는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 가치로 보면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탄압과 폭력은 비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시대 인식이 좋았습니다. 공과 과를 동시에 보고,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지에 대한 판단의 부분 말입니다. 


7. 

뜬금없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또 시끄럽습니다. 국정화를 찬성하는 쪽 입장을 들어보면 그들의 생각에 신념이 들어있음을 강하게 느낍니다. '시장경제주의, 자유주의 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자랑스러움에 대한 믿음'이 그것입니다.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고 논의될 수 있는 가치와 신념체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신념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반칙'으로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검인정 교과서로 그들의 신념을 표현하는 교과서를 만들면 됩니다. 시장경제체제인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가치로우면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런 번거로운 과정은 생략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국정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시장에는 나오지 않고, 반칙으로 생각을 주입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반칙이 통용된다면 이제껏 우리가 만들어 온 민주주의 사회 체제는 다시 주저앉을 것입니다.


8.

무엇인가 삐걱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니, 삐걱댄다고 느꼈으면 역사를 다시 살펴 잘못된 것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시 유시민 책을 꺼내 든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국정교과서든, 검인정 교과서든 교과서 옆에 이 책 한 권 더 놓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딱딱한 역사책보다 근현대사만큼은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읽는 것이 지적 확장을 넘어 오히려 학습능률과 가독성 측면에서도 더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권 지키기에도 이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민주화운동 세대가 국정화로 공부한 세대가 아니겠습니까? 국정화된 역사책을 읽고 대학을 들어가서 쇼크를 먹어 화염병을 잡았던 윗세대를 우리 아이들이 따라 하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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