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능소화

by 일향지

화가 난 채로 꽃집 앞으로 걸어가는 여자. 꽃집 앞. 주인이 그녀의 딸의 얼굴을 부비고 있다. 먼 발치서 그 장면을 보는 여자, 발걸음을 멈춘다.


여자 (관객에게) 저 여자도 딸이 있네요. 저 딸아이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데... 엄마가 떠나면 안 되는데... (혼잣말)


기운이 빠진 채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걸어가는 여자. 집앞에서 서성대는 남편이 여자를 보고 다가온다.


남편 마음의 준비는 됐을 거 같아서(이혼서류 내밀며)

여자 너 제 정신이야? 애 달린 여자야. 너 그 애는 어쩌려고?

남편 내가... 아니 우리가 키울거야.

여자 (기가 막힌) 그 애 네 자식처럼 키울 수 있을 거 같아?

남편 (고개 숙이는)...

여자 혹시 우리 애 없어서 그런거야? 그럼, 우리... 아니, 내가 더 노력할게!

남편 그런 거 아니야. 나 내 감정 속이면서 살고 싶지 않아. 부탁이다.

여자 (흐느끼는) 시간이... 시간이 더 필요해...


남자 퇴장하면, 혼자 남은 여자 펑펑 운다. 잠시 후, 여자가 눈물을 닦고 앞을 보는데, 그 여자 앞으로 의사가 다가오면, 여자가 일어서서 인사한다.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여자에게 할 말이 있는 듯 벤치에 앉는다. 여자도 앉는다.


의사 가까운 사이였나봐요.

여자 ?

의사 장례식장 다녀왔어요?

여자 네?

의사 수술은 잘 끝났는데, 참.. 갑자기 쇼크가 올 줄이야. 저도 오늘 그 분 사망소식 듣고 마음이 안 좋아서...

여자 (혼잣말) 사망? (정신이 드는) 그 분...어쩌다가 그렇게 된지 아세요?

의사 몰랐어요? (머뭇거리는)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여자 눈치 살피는)

여자 (궁금한 듯 바라보는)...

의사 (속삭이듯) 병원 기록 보니 자살시도를 했더라고... 그 이후로 계속 병원신세였어. 척추마비로 몸이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더 괴로웠던 환자 같아. 그런 환자 10년 넘게 간호한 가족들도 참 대단해. 남편이 유명인사들 사진도 곧잘 찍는 이름 있는 사진작가라지 아마? 경제적 사정은 괜찮았으니 망정이지...


핸드폰 벨소리. 의사가 핸드폰을 받는다.


의사 네? 지금요? 급히 갈게요!(전화 끊고, 여자에게) 응급환자가 와서, 금방 갈게요! 의사 퇴장. 힘없는 표정으로 엄마가 걸어온다.

여자 (엄마 보는) 장례식장에 갔다 오는 길이야?

엄마 (살짝 놀라는)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여자 그 분 그렇게 된 거 주치의한테 들었어.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여자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자살을 시도할까? 그 분 아내 자살 시도하다 그렇게 된 거라며. 그게 누구 때문인지 난 알 것도 같아. (엄마 쏘아보는)


엄마, 아랫배가 아픈 듯 어루만진다. 통증으로 넘어질 듯 말듯하며 집 보조키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서 약봉투를 꺼내 손바닥에 쏟으며 불안한 표정으로 수면제를 세고 있는 여자. 한 알 두 알 세면서 고민하다가 한 알만 꿀꺽 삼킨다. 그때 집 안에서 '엄마의 신음소리(E)' 들린다.


여자 (관객에게) 그녀가 곧잘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엄살이 아니었어요. 병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자궁암이래요. 당장 수술하면 생명엔 지장이 없지만 자궁을 드러 내야 하는... 슬펐냐구요? 아니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싶었지요. ‘평생 자기밖에 모르고 산 죄를 지금 받는구나!’ 싶었죠. 통쾌하기도 했다면 제가 나쁜.. 아니 이상한 걸까요?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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