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능소화

by 일향지

거실에 제사상이 놓여있고, 여자가 주방에서 쟁반에 담긴 음식을 제사상 위에 놓고 있다. 제사상 옆 소쿠리에 부침개가 쌓여있는데, 여자가 허리를 아파하며 부침개를 담고 있으면, 엄마는 부침개를 먹기만 한다. 매니큐어가 지워질까봐 조심스럽게 부침개를 집는다.

엄마 (여자 눈치 보는) 박 서방은 안 들어오냐?
여자 (부침개를 담는 손이 멈칫하는) 출장 갔어.
엄마 아.. (이해되는) 언제까지?
여자 (귀찮은) 몰라!
엄마 결혼한 지 3년밖에 안됐으면, 아직 신혼이다! 벌써 남 말하듯 해서 되겠냐? (사이) 혹시 너네 사이 안 좋냐? (의심하는) 그래서 애가 아직 안 생기는 거 아니야?
여자 (짜증난) 이거... 나 혼자 다 해야 해?
엄마 (아랫배를 누르며) 내가 허리가 안 좋다니깐! 요즘 삐듯하면 이러네...


엄마는 소파로 가서 멍하니 다 차려진 제사상을 본다.


엄마 (중얼대듯) 생전에 나한테 뭘 잘했다고 매해 기일마다 이래야 하는지...
여자 (관객에게) 아빠의 죽음에 그녀는 슬펐을까요? 아마... 아닐 거에요.

무대가 어두워지면 여자는 교복을 입은 17세의 모습으로, 엄마가 30대의 모습으로 변한다. 무대가 밝아지면,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에게로 카메라 가방을 멘 아저씨(40대)가 다가온다. 아저씨는 카메라 가방을 어디에 둘지 망설이다가 소파 옆에 두고, 소파에 앉는다. 여자가 아저씨에게 안기고, 아저씨는 엄마를 토닥인다. 여자가 소파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한다. 무대 어두워지고, 오직 여자의 모습만 환하다.


여자 (관객에게) 아빠의 죽음은 그녀에게 새 생명을 줬으니까요. 여자로서의 생명.


꽃집 앞에 30대의 예쁜 엄마가 등장한다. 뒤에는 교복을 입은 여자와 친구가 서 있다.


친구 너네 엄마야? (감탄하는) 우와-예쁘시다.


여자는 엄마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다.


여자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의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그러니까... 그게... 그래. 그녀는 능소화 같았어요.

엄마가 꽃집 앞 화분 중 능소화라고 쓰인 팻말이 붙여있는 화분을 들어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그러다가 화분에 기어다니는 벌레를 노려본다.


엄마 으... 벌레!!

여자 벌레가 들끓는 능소화


아줌마1, 2가 등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달려가서 엄마의 머리채를 잡는다.


아줌마1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이년이~왜 가정 있는 남자한테 꼬리를 쳐?
엄마 아! (머리를 잡으며 인상을 찡그리는) 난 그런 적 없다니깐!
아줌마2 이 년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다... 야 더 해!


엄마와 한바탕 난리를 치는 아줌마1, 2 아줌마들에 의해 엄마가 들고 있던 능소화 화분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그 모습을 놀란 채 바라보는 친구가 여자를 살피면 여자, 바닥에 짓이겨진 능소화를 멍하니 보고 있다. 무대 어두워진다.

이전 02화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