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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Mar 07. 2022

안 먹는 게 요리를 못해서라고?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1장 이토록 주관적인 요리실력

큰 딸은 좀체 먹으려 하질 않았다. 모유는 물론이고, 분유를 시원하게 160ml 이상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잘 먹어야 한 번에 160ml이고, 보통은 한 시간마다 60ml, 40ml, 100ml 이런 식으로 나눠먹곤 했다. 어머님 말씀으론 애들 아빠도 그랬다는 걸 보니 유전적 요인이 큰 듯했다. 전형적으로 식욕이 적고, 뱃고레가 적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이유식 시기가 되자, 고충이 심해졌다. 큰 딸은 내가 만든 이유식이든 시판 이유식이든 세 숟갈 이상 먹는 법이 거의 없었다. 맛을 달달하게 해 준다는 구기자도 넣어보고, 감칠맛도 더한다는 이유식용 조미료도 넣어봤지만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배를 곯려봤지만 아이는 '배고픔'의 감각을 모르는 듯 잘 놀았다. 지쳐서 손을 놓고 있는 내게 친정 엄마는 달려와서 "엄마가 뭐 그러냐?"며 주방에서 몇 가지 요리를 했다. 하나를 안 먹으면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요리, 또 다른 요리를 계속 시도했다. 아이는 한 끼에 꽤 다양한 요리를 접했으나 먹는 건 기대에 못 미쳤다. 그래도 아예 안 먹이는 것보단 결과적으로 나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 방식을 고수하는 수밖에... 힘에 부치면 나는 시판용 이유식도 먹이다가 그것도 안먹으면 사먹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다.


  이유식을 안 먹으니 당연히 간식은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유식 양에 큰 변화는 없었다. 나는 이유식을 안 먹으면 영양가 있는 간식이라도 많이 먹이자는 생각에서 도서관에서 간식 만드는 책을 빌려와 각종 간식 만들기를 시도해봤다. 하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처음에 반응이 좋은 것도 몇 개 먹고 나면 끝. 만든 공에 비해서 입 속에 들어가는 양을 고려할 때 효율이 매우 낮았다. '타고난 문제일까?',  '이제 그만 적당히 하자!' 싶다가도 TV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TV 속 육아 전문가는 그토록 까다롭고, 식욕이 적은 아이도 결국에는 잘 먹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인터넷과 육아서적을 찾아보며 이건 어디까지나 '내 능력 부족'이라는 생각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내 풀리지 않는 육아 이슈가 '먹이는 것'이다 보니 엄마들을 만나면 하는 얘기엔 아이의 식욕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질 않았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에게는 "아이 잘 먹어요?"라는 말이 거의 인사말처럼 나오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물며 아이 돌잔치에서조차 나는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을 붙들고 '너네 딸 잘 먹니?"라는 말을 내뱉었다. 친구는 당당하게 "응. 잘 먹어! 내가 만든 이유식이 맛있나 봐. 이유식 잘 안 먹는 애가 우리 집에 와서 많이 먹고 갔어. 주아도 언제 한번 먹으러 와!"라고 말했다. 옆에서 나와 딸아이 먹이기의 고충을 같이 겪어온 친정엄마가 그 말을 듣고 "걔는 뭐가 그리 자신감이 넘치냐"? 라며 입을 삐죽거렸지만, 난 삐죽 댈 틈이 없었다. 그 이유식을 잘 먹는다면, 비법을 전수받아와야 했다. 아이를 잘 먹이는 방법이라도 있다면 비행기라도 탈  마음이었다.

 

돌잔치가 끝나고 이틀 후, 돌쟁이를 안고 나는 택시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그 자신감 넘치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주방에서 흰살생선을 넣고 끓인 보들하고 따뜻한 이유식을 내왔다. 3개월 늦게 태어난 그 친구의 딸도 한 그릇 금방 비운 이유식이라고 했다.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냉장 보관되어 배달되는 시판 이유식과는 정성과 때깔면에서 차이가 컸다. "내가 만든 이유식이 동네 엄마들한테 소문이 났어. 이걸로 이유식 장사를 해볼까 생각 중이야. 이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에게 저가로 공급한다고 계산 봤는데 꽤 남겠더라."


 나는 기대에 차서 아이를 재빨리 아기 의자에 앉혔다. 아이는 처음엔 낯선 의자에 앉히려고 하자 살짝 발버둥 쳤지만, 이유식을 보자 배가 고팠는지 이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조그만 숟가락에 적당량의 이유식을 올려 입김을 후후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였다. 아이는 살짝 징징거렸다. 옆에서 이를 보던 친구가 "양이 많은 것 아니냐"며 숟가락을 빼앗았다. 그러더니 본인이 두 번째 숟갈을 먹였다. 아이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친구의 얼굴이 밝아졌다. 친구는 "이봐. 내 이유식은 애들이 다 잘 먹는다니깐!" 하며 또 한 숟가락을 떴다. 하지만 아이는 좀체 먹으려 하지 않았다. "자자~ 주하.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거라고. 영양 가득한 거야. 이모가 주하 주려고 정성을 담아 끓였어." 아이는 좀처럼 입을 벌리려 하지 않았다. 친구가 숟가락을 갖다 대자 불편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친구는 거의 입에 쑤셔 넣다시피 해서 이유식을 먹였다. 아이가 크게 울기 시작했다.

세 숟갈... 이유식 맛집인 그곳에서 아이가 먹은 최대의 양이었다. 친구는 생선살로 직접 쪄서 만든 기다란 어묵도 챙겨줬다. 아이는 한 개 정도 맛있게 씹었다. 씹기만 하고 삼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아이의 미각에는 어느 정도 합격이라 믿으며,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야~ 이거 맛있게 잘 만들었네. 나 좀 챙겨주면 안 될까? 집에 가서 먹여볼게!" 이유식 먹이기에 실패해서 다소 의기소침해진 친구는 그제야 신나게 어묵을 챙겼다. 그리고선 혹시 모르니 냉장실에 소분해둔 자기 딸의 이유식도 챙겨줬다. "이거 주하가 먹을지 모르겠다. 하나는 소고기로 만든 거고, 다른 하나는 게살로 만든 건데 우리 애가 모두 잘 먹는 거야!"


나는 음식 하는 사람의 정성과 안 먹을 때의 상실감을 누구보다도 알았다. 아이는 그 친구가 챙겨준 수제 어묵을 이후에 먹지 않았고, 친구의 이유식도 얼마 먹지 않았지만 난 친구의 정성이 고마워 전화로는 "주아가 잘 먹는다. 고마워!" 했다. 나의 절망적인 상황을 환기시키기 위해 근간에는 시어머니께서 만든 바나나 소고기 이유식을  절반 정도나 먹었다고 하자, 친구는 "그래. 너네 시어머니 요리 잘하시는구나! 너도 연구해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친구는 그 바나나 소고기 이유식도 그다음 날엔 아이가 거부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차피 생의 모든 디테일들은 겪어본 사람들만 안다. 같은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라도 자기의 아이와 완전히 다른 아이의 육아에 대해선 신세계다. 더구나 자신의 아이가 이토록 먹는데서 까탈스럽지 않은 엄마는 "음식이 맛있어봐! 어떤 애가 안 먹고 배겨?"라는 망언을 내뱉는다. "애가 그렇게 안 먹으면 그냥 사 먹여!"라고 멋 모르는 소릴 해대기도 한다.


아이가 안 먹는 가장 큰 이유를 엄마의 음식 솜씨 때문이라고 규정한다면, 아마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맛집들을 다 찾아다녔을 것이다. 아이는 사는 음식보다는 바로 만든 따끈한 음식을 대개는 잘 먹었기에 일반적인 반찬의 경우 나는 만들어 먹이는데 치중했던 것이다. 나는 음식을 사 먹일 줄 모르는 그렇게 답답한 엄마가 아닌데, 음식을 그렇게 못하는 것 같진 않은데... "아이가 음식을 안 먹는다"는 하소연에 대한 대답은 위로가 아니라, 가시 돋힌 말이 되어 날아오는 경우가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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