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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Jan 13. 2022

너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진 않지만...

 K는 매일 오전이 되면 내게 전화해 자기 얘기를 30분간 신나게 했다. 내용은 주로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풀리지 않는 감정들이 대부분이다. 초반엔 K가 나에게 친밀감 형성을 하는 방식이라고 여겼기에 흔쾌히 들었다. 나도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는데, '위로 받고 싶을 때만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하는 척했다'라고 말하는 최영미 시인의 시처럼 K의 하소연 비슷한 말들을 듣다보면 뭔지 모를 위로를 받는 느낌도 들고, 나도 내 하소연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니 이런 교류는 꽤 정상적이고, 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몇 개월간 누적되다보니 피로감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K의 부정적 상황에 대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K의 상황이 힘드니 '도와주자'고 생각해 들어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한계에 다다른 건,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내게 생일선물로 전해준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내가 해결법을 제시해주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성가셨던 건가? 입 닥치고 듣기만 하라는 건가?' 나는 불길한 느낌의 그 책을 살펴보다가 하필 이 책을 준 이유에 대해 K에게 물었다. 그는 약간 당황한 듯 "아니, 그냥 승희씨에게 필요한 책 같아서. 호호호" 라며 얼버무렸다. 나는 당장 홧김에 "내가 당신 감정의 쓰레기통이야? 나한테 전화 그만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녀의 상태가 좀 불안해보였다.

 그녀는 내 감정을 눈치챘는지 이내 자신의 딜레마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승희씨는 마음이 답답하면 수다 말고 어떻게 풀어? 난 도대체 수다 이외에 방법을 당췌 모르겠어. 수다 이외로는 풀리질 않아. 가슴에 답답한 건 말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아."

 K는 자신의 이 기질을 꽤나 난감해했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측근들을 보면, 말하지 않고도 자신의 문제들을 강물에 흘려버리듯 흘려버리는 이들이 있는데, K와 나는 그런류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 대학 때 어떤 친구는 나를 꿰뚫어보듯 "너는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다 말해야 하는 성격이야!"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 친구 앞에서 조용한 모습을 많이 보였었을때라서, 그 친구의 그런 말이 너무나도 의외였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친구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던걸까? 이런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당시 그 '저주스러운 규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 사람 잘 못 보는구나! 아니거든?"이러면서 항변했지만, 이제까지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인정해버릴 수밖에 없이 살아왔다. 하소연을 하지 말고, 차라리 문제를 잊고, 외면하는 방식으로도 좋아하는 다른 취미활동에 몰입하는 것도 이제까지 모두 실패였다. 잠깐이면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말이나 글로 SNS에 싸지르면 그나마 낫긴 하지만, 속시원한 느낌은 아니다. 결국은 깨닫는다. '그 친구 말이 맞았어.... 나는 말과 글로 표현하고, 사람에게서 공감받는 소통을 해야 풀리는구나. 어쩔 수 없구나...'

 이리저리 상처받던 20대 때 나는 어떤 감정적 자극을 받으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곤 했는데, 핵심적인 문제는 그 대상이 단지 한 사람으로 만족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상대가 깊은 공감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일까?  질이 낮으면 양이라도 많아야 한다. 나는 10여명의 친구들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하며 내 상황을 알렸고, 위로를 원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20년이 지난 아직도 그대로다.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때보단 안정적인 상태여서 감정적 자극을 받을 일이 크게 필요없다는 사실. 그러므로 큰 위로가 필요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내게 큰 문제가 생겼다면? 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감정노동을 필요로 할지 불보듯 뻔하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고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아는 상태가 되면 말을 어느정도 담아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자기 욕구 충족이 안되어 나를 붙잡고 징징대는 어린 딸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 문제는 저 아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되는 문제일거야. 나는 아직도 이런데, 저 아이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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