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철은 자신의 병원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이자카야에서 먼저 나와서 이미 한 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우철은 제법 상냥하게 나를 맞았다. 같이 있을 줄 알았던 봉일은 없었다. 나는 우철이 저녁에 자신을 이곳에서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그동안 자신이 너무 매몰차게 대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것이 만남의 요지였다. 의외였지만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대한 이유 찾기가 무의미하다고 결론짓고, 이내 현재에 집중했다.
우철과의 대화는 좀처럼 주제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피부과 내방객들에 대한 얘기를 너저분하게 나열했다. 모 드라마에 나오는 인기 연예인이 사실은 자신이 예전 병원에 있을 때 시술했던 연예인이었는데, 방송에서 자연 미인이라고 떠들고 다닌다며 낄낄거리고, 내 얼굴 견적을 봐주겠다며,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기도 했다. 나는 그가 친근하게 느껴졌고, 그에 대한 궁금증도 강해졌다. 금지의 영역을 넘어서기에 사케의 도수는 적당히 높았다.
“원장님 약혼녀. 다섯 살 아이 엄마 맞아?”
마구 풀어져있던 그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이 원장이 그래?”
“아니, 그 건물에서 만난 어떤 5살쯤 되는 남자애가”
우철의 얼굴은 잠시 떨리더니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 여자 좋아한 지 꽤 됐어. 근데 결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났고, 남편이 죽었고.”
멋모르는 아이의 장난으로 치부할 법도 한데, 그는 의외로 솔직했다. 그는 그 여자의 남편 49재 다음 날 여자에게 가서 오랜 사랑을 고백했다. 그는 봉일이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 남자와 친하게 지냈다고 해도 어쩌면 봉일처럼 그의 팬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다소 우수에 젖어 있었다. 분위기가 묵직해지자,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원장님, 로맨티시스트! 멋져요! 우리 한 병 더 할까요?”
“아뇨. 너무 취했어요. 나갑시다.”
우철은 자신이 계산을 하더니 문까지 열어주며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지하철역까진 꽤 멀었다. 그는 지하철역까지 가는 지름길을 안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가 인도하는 길은 좁고 후미진 골목이었다. 양옆으로 술 취한 연인들이 비틀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는 모텔들이 즐비했다.
그는 골목 어딘가에서 나의 손을 잡더니 나를 벽으로 밀치고,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에선 씁쓸한 사케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노천카페에 우울하게 앉아있던 그 여자의 씁쓸한 표정과 닮아있었다. 나는 정신이 확 들어서 우철을 밀쳤다. 가로등 아래 우철의 비열한 웃음이 번졌다.
지하철로 가는 공백의 거리를 술집과 모텔들이 채우고 있었다. 나는 성과 자본과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곧이어 속이 느글대더니 구토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녁에 먹은 것들이 엉겨 붙어 나왔다. 나는 속이 개운해질 때까지 속을 비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