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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글 May 17. 2016

마음이 듬직해야 남자지

#가족이 나에게 - 문득 고마운 날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이 재활용 쓰레기를 주섬주섬 양손 가득 들고 나선다.


"아우~ 출근하는 사람이 그런 건 왜. 얼른 출근이나 하세요."


"이건 내가 할 일인데 뭐."


"그게 뭐 자기가 할 일이야. 나 화요일 오전은 한가해. 내가 슬슬 버리면 돼."


"됐슈. 갔다 올께."


충청도 사투리를 한방 구수하게 날려주시고는 굳이 쓰레기를 들고나가시는 우리 남편.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사실 난 출근할 때 신랑이 쓰레기를 들고나가는 모습이 별로다.


출근해서도 복잡한 일들이 많을 텐데 괜히 일거리를 들려 보내는 것 같아서다. 평소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을 아는 같은 동 동갑내기 친구랑 언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부러워들 하지만.


원래는 신랑이 퇴근해서 쓰레기를 버려준다고 하는 게 싫어서 내가 버렸더니, 어느 순간 아침에 출근할 때 저러고 들고나가신다.


'저러니 살이 안 찌지. 쯧쯧.'


태생이 무뚝뚝한 경상도 아줌마는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함 가득한 눈빛만 남편의 뒤통수에 쏘아댈 뿐.




마음이 듬직해요


1년 반 정도 연애를 하고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부모님께 소개했을 때, 엄마는 그리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키도 작은 편에 몸도 마른 편, 남자치곤 하얀 피부,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오빠면서도 동갑 혹은 연하같이 보였던 (제가 노안이 아니고, 남편이 동안인 거예요.) 남편의 외모는 소위 어른들이 '듬직하다' 하시는 사윗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중에도 내게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건 그의 순수함'마음의 듬직함' 에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남자를 만날때 표현이 헤남자가 싫었다. 넉살좋게 능글능글 웃음을 흘리거나 유머러스함이 과한 사람들에겐 호감이 가지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응팔 정환이처럼 툭툭 던지듯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택이같은?


남편은 연애 때 남자들이 흔히 하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 줄게."라는 사탕발림이라던가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것 같은 허풍 내지는 닭살스런 표현 따윈 없는 '촌사람' 이었다.

쉽게 얘기하면 '뺀질뺀질 말만 잘하는 과 ' 라기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동파' 적인 면모가 있었다.


연애 때나 해봄직한 닭살 멘트 같은 건 할 줄도 몰랐고,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오글거리는 건 또 어찌나 부끄러워하시는지, 참 재미없다 싶은 그의 모습들이 내눈에는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였었다.


내가 감기라도 걸린 날엔 잠깐 편의점 좀 다녀온다고 하곤 약을 사서 쥐어주거나,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나 때문에 어렵게 담배를 끊기도 했었다. 살짝 썸을 탈때 담배 끊으면 사귈거냐 하더니 사귀면서 바로 끊더라. 많이 힘들었단건 그 후에 알게됐지만.

밤늦게까지 데이트를 하던 날, 별자리에 대해 조근조근 얘기를 해주기에 '참 해박한 사람이구나' 했더니 벼락치기 학습의 결과물이었다는 것도 결혼 후에 남편에게 들은 얘기다.


연애할땐 흔히 '콩깍지가 씌인다' 고 하는 표현처럼, 듬직했던 신랑의 마음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 마음만큼 신랑이 커 보였었나 보다. 지금은 맨날 송중기만큼만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놀리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남편의 '듬직한 마음' 이 좋다. 다소 다혈질에, 감정기복도 변덕도 심한 나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니 듬직하다는 표현이 딱인듯 싶다.




갑자기 예전에 먼저 결혼한 직장동료 언니가 했던 언니남편 얘기가 생각나 혼자 한참을 웃었다. 남편분이 키가 크고 덩치가 좋으셔서

"언니, 너무 든든하시겠어요." 했더니

"그런말 하지마. 덩치만 곰처럼 컸지, 마음은 밴댕이에 하는 짓은 애기야 애기. 휴.."


혹시 미혼의 남녀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체격도 듬직하시고 마음도 듬직하신 분들도 있으실테지요. 단지 체격이 듬직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듬직할거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는 마시라는 인생선배의 조언쯤으로 받아주시길.


오늘은 체격은 안 듬직하시지만 마음은 듬직하신 남편에게, 결혼 10년차가 넘은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고싶다. 아파트 화요장에서 사온 남편이 좋아하는 참두릅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내어주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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