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나에게 - 평범한 소속사의 딱 하나뿐인
※가수 아이유 이미지는 본 글과 그다지 연관성은 없습니다.
우리 SOOK 엔터테인먼트에는 '윤슬'이라는 연예인이 있습니다.
또 누가 있냐고요? 없습니다. 사장님 한분에 직원이라고는 매니저인 저 하나, 신생 기획사이다 보니 메이크업, 헤어, 트레이너 등 역할의 구분이 없이 제가 다 하고 있어요.
말이 매니저지 요리에 빨래에 숙소 청소까지.. 안 하는 게 없습니다. 다행히 저희 사장님은 "나 사장이네." 하고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분이 아니어서, 제가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서 짜증 폭발 직전일 때를 귀신같이 알고 도와주시곤 하지요.
가끔 다른 기획사의 듀엣이나 아이돌 그룹을 보면, 나의 연예인이 좀 외로워 보여 '신인을 한 명 영입해 볼까?'
사장님과 고민도 해봤지만 그녀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될 때까지 그녀에게만 집중하자고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장님! 제발 밤에 술드시고, 이미 결론난 신인 얘기하시면서 끈적한 눈빛 보내지 말아주세요. 부끄부끄)
그녀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윤기 나고 촉촉해 보이는 뽀얀 피부, 밝게 빛나는 유난히 햇살 같은 미소. 그렇게 그녀는 10개월 동안의 끈질긴 프러포즈로 우리 회사 첫 연예인, 아니 연습생이 되었답니다.
사장님은 그녀만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며 우리말 대사전을 독파하셨고, 일주일을 꼬박 고민한 끝에 '윤슬'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하셨어요.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름 아닌가요? 사장님이 이름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잘 지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늘하늘 여성여성, 차분하게 새침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는 반전매력을 자랑합니다.
넘치는 흥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디선가 음악소리만 들리면 리듬을 타기 시작합니다.
'겨울왕국' 의 인기가 한창 일때는 '레잇 꼬우~ 레잇 꼬우~' 이외에는 해석불가한 발음으로 한곡을 완창하기도 하셨지요. 엘사 드레스도 입었냐구요? 두말하면 입 아픕니다.
그녀는 여성스럽고 고상한 외모답지 않은 소탈한 식성을 자랑합니다. 제가 슬럼프에 빠져 다른 직장을 좀 알아보느라 외할머니 매니저님이 일을 봐주신 1년동안 그녀는 '토종입맛' 이 되었더라구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볶음밥, 된장국, 불고기, 열무물김치, 오이소박이 입니다. 이런 토종입맛이 날씬한 몸매의 비결이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물론! 피자나 햄버거를 가끔 사달라곤 하지만, 밥만큼 많이 먹질 못하더라구요. 밥.순.이
너무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이 길었던 탓일까요? 사장님과 저의 욕심이 너무 컸던 탓일까요?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일까요?
애교스러운 말투와 상냥한 미소를 날리던 그녀가 점점 까칠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말고 다른 옷 없어? 색깔이 안 아울리는 거 같아."
"나 너무 바쁘게 사는거 같아. 놀 시간이 너무 없어."
"나도 이제 휴대폰 사주면 안돼?"
혹시나 다 받아주면 버릇없어질까 억지로 따끔하게 타이르지만, 눈물 그렁그렁한 그녀의 강아지같은 눈빛을 보면 어느새 마음이 약해집니다.
스케줄을 다 정리하고 신나게 놀게 해주고 싶지만, 다른 기획사 아이돌의 행보를 보면 그녀가 뒤처질까 조바심이 생깁니다.
이러려고 그녀를 캐스팅한게 아닌데..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힘껏 도와주고 싶은데..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안아줘야 하는데..
가끔은 피곤하다 짜증내고, 나도 모르게 다른 연예인들과 비교했던게 미안해 집니다.
혹시나 체력이 딸려 그런가 하고 영양제도 주문하고, 홍삼도 주문했습니다.
그녀가 아프면 제가 더 아프니까요.
내일은 오랜만에 그녀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앞에 기다리고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나의 그녀가 총총 거리며 달려와 얘기하겠죠?
"엄마~~ 더워~! 나 아이스크림 사줘~!"
외동딸을 키우는 일이 한명의 연예인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 봤습니다.
쌔근쌔근 잠든 나의 그녀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가끔 무슨 꿈을 그리 재미있게 꾸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을 때는 너무 귀엽습니다.
잘자요~ 나의 연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