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나에게 - 잠든 딸의 모습에 마음이 아리다
우리 연예인 딸 1호님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갔다. 무더운 날씨, 미술학원 가기 전에 아삭아삭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기분 좋게 보내려고 했는데.
여느 때 같으면 배시시 미소 지으며 "엄마~" 하고 달려오는 아가씨 표정과 발걸음이 평소 같지 않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찬찬히 들여다보니 눈도 빨갛고, 코끝도 발갛다.
'울었구만.'
속으로 생각하는 찰나, 왕~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심장이야..
"엄마, 나 친구들이랑 시소 타다가 떨어... 흑흑."
"시소에서 떨어졌어? 조심 좀 하지.. 그래서 어디가 아파? 많이 다쳤어? 어디 봐."
"아니.. 흑.. 떨어진 건 아닌데.. 안 떨어지려고 하다가 손목이 꺾여.. 으앙~"
뭐가 그리 서러운지, 많이 놀랐는지 눈물이 끊이질 않는다.
"많이 아파? 보건실에 갔었어? 엄마랑 병원에 가보자."
"보건실에.. 갔었는데.. 보건 선생님이.. 그리 심한것 같지는 않다고.. 손목쓰지 말고 쉬라고.."
안 그래도 워낙 살이 없어 가녀리기 짝이 없는 손목이 얼마나 힘이 있다고.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정형외과에 들러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인대가 살짝 늘어난 거 같으니 일단 반깁스로 고정을 좀 시켜놓고 주말 동안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선생님 말씀.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이긴 해도 한 번도 깁스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지라, 팔목을 고정하고 붕대를 감는 내내 울상이다.
"엄마, 나 이렇게 하고 학교에 어떻게 가? 창피해."
"창피하긴 아파서 그런 건데. 그리고 오늘 금요일이잖아. 아픈 친구를 놀리면 안 되지. 많이 아프냐고 걱정해 줘야 친구지."
"힝.."
지지배, 아픈 애가 별 걱정을 다하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니 나이 지긋하신 약사 아저씨께서 물어보신다.
"아이고 꼬마 아가씨 팔을 왜 다쳤어?"
다른 때 같으면 90도 폴더인사에 뭐라고 뭐라고 대꾸를 했을 텐데, 요 녀석 입이 삐쭉 나와 못 들은 척 서있다.
"학교에서 시소 타다가 떨어질 뻔했는데, 안 떨어질 거라고 버티다가 손목이 꺾였대요. 근데 깁스해서 창피하대요."
"왜 창피해? 예쁘게 생겨서 인기도 많겠는데. 평소에 너 좋아하던 남학생이 아싸! 하고 가방도 들어주고 그럴 거 같은데?"
약사 아저씨 한마디에 딸의 뾰로통한 입술이 잠시 들어가고, 입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살짝 올라간다.
그렇게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왜 그리 먼지.
깁스를 처음 해봐 갑갑한데, 날씨는 더워 땀은 나고 얼마나 찝찝할까.
"슬아, 너 개그콘서트에 이병원 알지? 나랑 장난 지금 하냐? 그거 해봐. 딱인데?"
"아 맞네. 헤헤. 나랑 장난 지금 하냐~ 이렇게? 웃기다~"
애는 애다. 엄마가 관심 돌리려고 한말에, 눈에 눈물은 글썽 해가지고 금방 또 좋다고 헤헤 웃는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가고..
잠든 딸아이 손목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리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니.. 그렇게 귀찮아하던 설거지를 오늘은 음악까지 들으며 신나게 했더라니..
AM 10:00 남편의 전화
"여보세요?"
"응, 자기 왜?"
"우리 마누라 칭찬 좀 해주려고."
"엥? 뜬금없이 무슨 칭찬이야?"
"오늘 고마웠어. 너 아니었음 큰일날 뻔 했어."
"뭐가 고맙지?"
"아침에 깨워준 거.. 근데 어떻게 그때 일어나서 깨웠대?"
어젯밤에 남편이 얘기하기를 오늘 아침에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찍 자라는데도 자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무슨 자료를 더 볼게 있다고 먼저 자라더니만. 쯧쯧.
아침에 갑자기 눈이 떠져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6시 30분!
"자기야~ 일어나 6시 30분이야!!"
그렇게 허겁지겁 출근하시더니 전화를 하신 거다. 별걸 가지고 다. 흐흐. 기분은 좋으네.
PM 12:00 꽃을 충동구매하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오곤 한다. 오늘이 그날.
산책하는 기분으로 슬슬 걸어서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었던 책과 딸이 읽을 책을 골라 돌아오는데,
옆 단지 아파트 시장에서 계란 노른자가 보기좋게 볼록 나온 계란빵을 팔고 있네. 오랜만이야 계란빵! 그 냄새와 비주얼에 이끌려 세개를 사고, '나 좀 봐주세요.' 하고 있는 꽃 한다발을 뭐에 홀린 듯 충동구매.
꽃을 좋아하는 딸이 요리보고 조리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샀는데..
다 이것들 때문이다!!
'뭐야! 이게 다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런 거였어? 남편은 왜 괜히 안 하던 전화는 해 가지고!'
혼자 괜히 생트집을 잡아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곳곳에 복선이 숨어있었구나. 뭔가 너무 기분좋은 날은 행동을 조심해야겠다.
그래도 딸이 이만하니 다행이고, 주말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계란빵을 먹으며 딸은 맛있어했고, 빌려온 책을 읽으며 밖에 나가놀지 못하는 마음을 달랬고,
거실에 꽂아놓은 꽃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살아가면서 아이가 커가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리를 울고 웃게 할까.
그 속에서 맘껏 울 수 있는 품을 내어주는 일, 엄마의 사랑도 그렇게 아이와 함께 커가는게 아닐까.
하루종일 벌렁거리느라 수고한, 아이가 더 놀랄까봐 애써 덤덤한 척 부여잡은 마음을 다독여본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