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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그 Dec 29. 2022

나는 매일 저녁 공원으로 퇴근한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2년이 좀 넘었다. 재택이지만 사무실처럼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이 지켜지지는 않았다. 점심만 되면 전화를 걸던 이가 있었다. 퇴근 시간만 되면 갑자기 신규 건으로 피드백을 재촉하는 이가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도 업무 시간 앞뒤 1, 2시간 포함해 화장실도 못 간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퇴근 시간이 되어서 사무실 근처 스튜디오로 일 나갈 때가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외부에서 일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업무 부분 인계를 위해 다른 공유 오피스를 얻어 회사와 남을 위해 출근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퇴근시간 이후 그리고 주말에 진짜 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지쳤을 거다.



그래서 집에서 근무하는 날 해가 지면 마음이 둥그스름하고도 울퉁불퉁 모난 돌멩이처럼 구르고 부딪혀, 이 생각 저 생각에 의자에 더 앉아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저녁 공원으로 퇴근했다. 일에 쫓겨 숨을 제대로 들이키지 못하는 내 몸을 구하려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내 정신을 다독이고 맑은 기운을 채워주려고. 어떤 날은 마냥 걸었다. 어떤 날은 눈 닿은 곳을 향해 사지만 찍었다. 어떤 날은 소복하게 내린 눈만 바라봤다. 뽀얀 길을 보면서 내 머릿 속도 하얗게 비웠다. 


집 가까이에 공원이 없었더라면,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카메라가 없었다면... 내 머릿속은 온갖 걱정으로 뒤엉켜 작동을 멈추었을 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해 질 녘 안식처로 갈 수 있어서.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도, 공원으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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