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민의 <사라진 저녁>
설 연휴 직후 책을 읽고 만나기로 한 독서토론 모임 멤버들. 이에,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과다 업무 중에 유익한 책도 좋지만, 조금은 가볍게 읽고 각자의 생각을 더 이야기할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린이그림책을 골라봤다. 이따금 어른을 위한 동화나 어린이그림책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조금씩 들춰보는데, 이 모임에 딱 좋은 따끈따끈한 신간을 찾았다. 바로, 권정민의 글과 그림으로 배달음식에 대한 사회문제를 다룬 <사라진 저녁>.
이 책은 집밖에 나오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이 족발, 감자탕, 돈가스 등을 스마트폰으로 주문했는데 음식은 배달되지 않고 아파트 앞에 돼지 한 마리가 배달됐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이런 편리와 신속 서비스로 인한 문제 특히 쓰레기를 생각하며 이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출간된 이 책은 얇고 가볍지만 이야기 깊이만큼은 얕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책 속 사람들의 행동이나 눈빛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은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매력에 빠져 책을 다 읽은 멤버들과 모인 날, 이런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어린이그림책 권정민의 <사라진 저녁?을 읽은 소감은? 주요 독자인 아이들은, 이 책을 보고 어떤 말을 했을까?
이게 어린이책이라고? 또 책 속에서 음식 대신 배달된 돼지 잡을 계획을 짜는데 요즘 바퀴벌레도 못 잡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현 시대를 보여주는 이야기 소재 같았다던 광. 이런 블랙 코미디가 어린이 도서로 괜찮은지 아니면 그림을 덜어내고 생각할 여지를 더 심어 청소년 책으로 출간해야 했던 게 아닌지 싶었다던 예. 한편으론 이런 어른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면서 "돼지가 왔다" "내가 유튜버 OOO 가 한 것처럼 돈가스 만들어 볼래!" 하며 마냥 신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이에 동감하며 권정민의 <사라진 저녁>을 도서관 어린이 코너에서 아이 소리를 들으며 봤던 은은 아이들이 이 책 속에서 재밌는 부분을 더 볼 것 같았다고.
책 속을 더 파고들어 옥은 정육점 돼지 그림처럼 이제 아이들도 이런 책을 통해 돈가스 등 음식 재료인 돼지, 닭 등을 자연스럽게 알고 이해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그렇기에, 지금 시대 지금 세대를 잘 파악하고 그려낸 책 같았다고. 한편 정은 앞 부분에서 게을러서 아파트 각 호 별로 배달음식 주문한 걸 보여주고 이어 아파트 주민들이 배달된 돼지를 두고 잡아서 먹을 계획을 할 때 엄청 웃었다고. 게다가 돼지는 잡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다같이 파티할 생각에 풍선부터 불던 장면도 어처구니없었다 했다.
Q.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밥하기 싫어서 배달음식을 주문한 이들이 돼지를 잡으려고 휴대폰을 눈이 충혈되도록 보면서 주문하고 배달된 택배 상자가 문 앞에 쌓인 걸 보면, 비대면 문제를 비대면으로 풀려고 했던 상황이 어이없었다는 은. 역시나 돼지를 잡는다고? 바퀴벌레도 못 잡으면서?? 다시 한 번 어이없어하던 광. 한편 돼지를 잡으려다 돼지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놓은 불에 천장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터져 어른들이 옷이고 얼굴이고 할 것 없이 푹 젖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깔깔깔 웃겠다 싶은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던 옥. 그리고 책의 핵심 소재인 배달음식보다도 코로나19 이전부터 재택근무를 병행하고 있어 책 첫 부분에 아파트 주민들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는 부분에 격하게 공감했다는 예.
다들 책 속 상황을 하나하나 꺼내던 와중에 배달음식 대신 배달된 돼지를 잡는다는 설정과 구인광고에 빵 터졌고, 순간 "환불했어야지" 일침을 가한 정. 이에 은을 비롯해 "그건 생각도 못 했다. 환불할 수도 있었네!" 경악했던 멤버들. 당황스러운 순간에 이성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책 속 아파트 주민들 중 이런 분이 있었다면 이 책 내용은 꽤 달라졌을 텐데.
Q. 책 속 상황 - 돈가스 대신 살아있는 돼지가 배달된 일 - 처럼 저녁으로 요리 재료가 아닌 생물이 배달된다면? 자신이 생물을 죽이고 음식으로 만들고 뒤처리까지 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어떤 게 있을지.
식물을 뜯어먹고 살겠다던 정, 극한의 상황 특히 무인도와 같은 곳일 경우 요리를 할 불만 있다면 뭐든 다 할 것 같다던 옥, 털 있는 거 빼고 다 할 수 있겠다던 은, 책 속 돼지 잡는 계획을 보니 생물 죽이는 게 힘들 것 같아 안 죽이고 끓는 물에 담그면 금방 끝날 듯한 새우와 오징어 정도만 요리 가능하지 않겠느냐던 예. 이에 문어도 크기만 컸지 충분히 가능하다고 꿀 정보 나눠주던 광. 한편 광은 아이를 생각하면 뭐든 가능할 듯하나 나만 생각한다면 닭, 새 정도 가능할 것 같다고.
이후로 저마다 어릴 때 어른들이 개, 닭, 뱀 등을 죽여 집 밥 또는 보양식으로 먹는 걸 봤다며 기구를 휘두르거나 뜨거운 물에 털을 뽑거나 불에 털을 그을려 생물의 목숨을 끊었다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라떼 이야기를 들추거나 이전 시대를 다룬 영화나 책으로 간접 확인해 보시길.
Q. 직업이 세분화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이것만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하는 게 있다면?
극히 목소리가 적어졌던 질문. 기본적으로 먹고 자고 씻고 등 일반적인 걸 제외하면... 가능한 한 전문가나 누군가가 대신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모두 수긍했던 순간.
누군가 차라리 '이것까지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를 말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양치를 맡기고 싶다던 은. 그리고 청소에 민감해 청소가 정말 필요하다는 정과 예.
Q. 위와 반대로, 일상에서 이것만은 전문가의 힘이 필요하다! 하는 게 있다면?
그래도 나름 부지런한 사람들이라 이런 질문에 다들 머뭇거리고 있는데 스케일 큰 산업 분야가 주로 거론됐다. 안전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던 은. 원자력은 꼭 그래야 하지 않을까 했던 광. 한편 다시 한번 청소를 강조한 정. 이에, 이제 웬만한 로봇청소기 기능이 좋아졌으니 나중에 마련하라던 옥. 그리고 더 소소하게 최근 이사를 하며 전기, 배관, 도시가스 공사 등 이사 초기에 하는 일들을 생각했던 예. 어쨌든 안전과 기업, 국가 단위로 규모 있게 서비스 지원되는 부분은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걸로.
Q. 내가 어린이책 작가였다면, 배달음식 관련 책을 쓸 때 어떤 말을 더 하고 싶은지?
배달음식의 일반 과정(주문/결제 - 픽업 - 배달 - 제품 전달 - 먹기 - 치우기 - 제품 후기) 중 더 구체적으로 풀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이 책과 달리 어떤 말을 더 하고 싶은지를 들으면,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이나 인생관을 알 것 같아서 혹은 최근 관심사를 알 거 같아서 던졌던 질문. 이 질문에 쓰레기를 언급했던 은과 옥과 정과 광. 이중 은은 먹은 게 배설물로 나오기까지를 어린이그림책 특유의 가벼움으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한편 정은 쓰레기 산에 아이가 허우적거리는 장면 등을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더 보여주고 싶다고. 한편 예는 쓰레기가 먼저 떠오르긴 했으나, 주문/결제 부분도 요즘 배달음식만큼이나 블랙 코미디로 만들기 좋을 것 같았다고. 최근 제품 구매 시 단순 할인이 아니라 카카오페이 할인을 받고 결제 진행 시 연동 신용카드로 할인 추가가 적용돼 더블 할인받았던 경험에 가성비는 물론 '나 이렇게까지 할인받았다' '나 이렇게까지 아껴봤다'는 트렌드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았다고.
이외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마무리된 독서토론 모임. 각자 일반 책보다 길쭉해서 가방에 휴대하기 힘든 이 책을 가지고 와놓고, 찍겠다던 그림책 단체 인증샷은 찍지도 못했고 이를 집에 돌아갈 때까지 기억한 이도 없었는데. 이후 이어진 집밥과 스파클링 와인 때문일까.
p.s. 아무쪼록,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을 읽으실 분들도 블랙 코미디의 마음 아픈 면만 집중하지 마시길.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아이가 좋은 생각을 갖고 실천할 수 있도록 책을 읽은 후 좋은 질문을 던져주시길.
읽은 책 : <사라진 저녁> 권정민 지음 I 창비
장소 : 집
사진 제공 : 참여자 지원
2023년 1월 28일 오전 11시
참석자 - 광, 예, 옥, 은, 정 (총 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