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맞춤에 민감한 날이 있다. 기분이 너무 상큼해서 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회색 옷과 가방을 찾는 때가 있다. 보라색 티셔츠와 파우치를 코디하고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바라본 꽃집에서 보라색 꽃다발을 안고 돌아온 적이 있다. 내 안의 카멜레온 습성은 역으로 튀어나와 되려 포인트가 되곤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기분 좋은 깔 맞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는 게 가장 좋지 않나 싶다. 특히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이라면 더 좋은. 그래서인지 지역 구분 없이 이따금 캠핑을 다니다 보면 사진에 담고 싶어지는 풍경을 만나곤 한다. 캠핑장을 둘러싼 산과 텐트와 하늘이 하나가 된 듯한 착각이 들 때.
위 사진을 담아왔던 날도 그랬다. 새벽안개를 보려고 일찍 일어났던 날 저수지 주변을 돌다 뒤늦게 집에서 챙겨온 카메라가 생각났다. 다시 텐트로 돌아가 잠든 카메라를 깨워 손목에 감고 나왔다. 그 잠깐 사이 안개는 흔적을 감추고 있었는데. 산책했던 길 역방향으로 걸으니 그늘막 역 톡톡히 할 듯한 낚시 텐트와 파라솔이 보였다. 그 무늬를 보다 보니 저수지 건너편 군부대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보호색이 따로 없네, 싶었던.
그렇게 안개가 걷히고 있는 저수지와 낚시 용품과 캠핑장과 군부대는 한 공간 안에 하나로 연결된 듯 잘 어울렸다. 아침 햇살이나 노을의 방해 없이 저대로 카멜레온 복장 같았다. 영상으로 찍었다면, 분명 KTX 소음에 이질감이 들었으리라. 낚시꾼이 의자에 앉아 민물고기 유혹하는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숨 고르며 매운탕 생각만 하고 있는 공간, 그 어디보다 조용해 산들바람도 성난 파도처럼 달려오나 싶을 때, 갑자기 열차 소리가 커지며 오른 편으로 숨 가쁘게 그 긴 몸뚱이가 지나갔다면 영상 화면은 갑자기 낚시꾼의 손으로 클로즈업되어 낚싯줄이 급히 감기고 두어 마리 담긴 물통을 들고 터벅터벅 캠핑장 옆 가까운 매운탕집으로 철수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조마조마함이 사진엔 찍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저수지와 낚시 용품과 캠핑장과 군부대의 조화 덕에, 내 마음도 새벽 풍경에 스며들어, 내 숨도 마음도 정갈하게 고르고 올 수 있었다. 사진에는 제법 잘 어울리는 공간의 단면만 담은 채. 다음엔 어떤 색깔 맞춤을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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