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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Nov 20. 2023

이유 없는 일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남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이고 대부분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보다는 얼마나 별로인 사람임을 깨닫게 되기에, 내 마음이 겸허해 지려는 상태가 아니고 고집에 휩싸여 있는 상태라면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 다음 단계는 괴롭다.

그나마 괴롭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아껴주고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애정결핍인 상태의 나에게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를 억지로 집어넣는 상태가 아닌, 나의 나됨을 인정하고 그 누구의 부가적인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내 아내는 나와 사고하는 방식이라든지, 표현 방법이나 MBTI도 완전 딴판이다. 거의 반대편에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랬기에 결혼하고 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고, 사실 지금도 (흥미롭게, 하지만 흥미롭지 않았다 처음엔) 알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부분에 있어 알게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사람이 내 아내이기에, 내 생각이 맞다고 굳게 믿고 살아왔던 시절을 부정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내 고집을 꺾는 것이 싫었고 짜증났으나, 결국 그 누가 강제로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결심하고 내 고집이 정말 버려야 할 아집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면서는, 내가 정말 별로인 사람임을 알게 됐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부분을 (지금 체감상 90% 이상) 개선해야 할지 설레이지만(?) 아집에 갇혀있을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바로 사람들이 내게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답을 얻게 된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경험하지는 못할 걸 알기에 나는 엄청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생각이 맞고, 남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고 그 상태로 살아가다가 모르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내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분명 그런 사람이 되었을 거란 생각에 몸서리쳐진다.

옛 성인은 내 나이가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했지만 나는 모든 것에 미혹되고 있고, 모든 것에서 배워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그 동안 알고 지냈던, 확신했던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도 드는 요새이다.

부디 긍정적인 결과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더 나아가 사랑을 주고 희망을 나눠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게 있다.

누구나 받고 싶은 게 있다.

누구나 하기 싫은 게 있다.

받고 싶은 건 사랑, 관심, 인정.

받기 싫은 건 상처.

그래서 방어한다. 그래서 마음과 다르게 행동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길 새 없이, 왜 그랬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남이 원하는 대로 맞춰서 살았던 삶. 그게 맞다고 강요받은 삶. 그게 우리와 우리 윗대의 교육 방식. 실제 그렇게 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겉으론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속으로는 곪고 자유롭지도 창의적이지 못함. 그러지 않았다면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면 안된다. 감정 하나하나 소중하고 귀하게. 잘못한 것은 물론 혼나더라도. 왜 혼나는지도 알게.



긍정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리 긍정적인 것 같지도 않다.

다정하다는 건 무엇인가. 느끼는 이마다 다 다르다.

오히려 아니었던 것이 맞는 것도 같고,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주제넘는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데,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또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야간조가 시작된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길 기대해 본다.



수고한 사람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 또는 고맙다.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집단. 오로지 자신의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집단. 아주 작은 범위의 주변도 돌아보지 않는 집단. 다른 집단도 이기주의는 있겠지만, 이곳은 계급이 있어서 힘든 것일까. 내가 아닌 조직을 위해 수고하고 나서,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리 큰 기대인가? 왜 받는 것이 당연할까? 줘본 사람이라고 해서 받을 때 감사하다고 말하는 배려와 노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I am sick of it.



같은 동 엘레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고 문을 뒷사람을 위해 잡아주고, 삶에 대해 감사해야만 하며, 가진 게 없어도 더 가진 것 없는 사람과 비교하여 행복을 느껴야 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밝은 분위기로 전환해야 했던 나의 모든 삶이 옳다고 여기고, 나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을 탓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았고. 하지만 실상은 그냥 나는 다른 생각은 해보지 않은 거였다.

이유도 모르고 좋은 척 하려 했던 시간 대신, 내 감정이 왜 그랬을까, 내 짜증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것을 따져보는 일을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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