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만나 사랑에 빠진 첫 번째 마을의 이름은 나바레떼(Navarrete)다. 그날의 컨디션,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 혹은 눈 맞춤, 약간의 계단을 오르면 한눈에 마을의 구조가 속속들이 보이는 것까지 처음으로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
마을 입구에 우둑허니 동떨어져 있는 알베르게가 눈에 들어왔다. 6시간을 걸었고, 햇볕이 한창 뜨거울 때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들어가 볼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
해가 유독 잘 드는 곳이었다. 시원하게 뚫려있는 통창도 마음에 들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타난 스페인 청년과 짧게 안부를 주고받은 후 방까지 안내를 받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을 둘러보며 창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짐을 풀었다.
서둘러 하루의 피로와 함께 땀을 씻어내고, 손빨래까지 마치면 공식적인 하루 일과가 끝난다. 빨래를 널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맥주 한잔에 풍경을 안주삼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Hola, 그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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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레떼라는 마을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집들이 둥글게, 그리고 겹겹이 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겹, 두 겹, 세 겹. 그렇게 빙글 돌면서 20-30분 정도를 걷다 보면 마을 전체를 본 것이다. 나는 마을의 둥근 모습에 반했다.
깜빡하고 가져오지 못한 손톱깎기를 나바레떼에서 드디어 구입했다. 한국인을 만나면 빌려볼까 생각하며 이빨로 물어뜯어 보기도 했지만 역시 손톱깎이가 제일이다. 어색하게 잘려나간 손톱의 끝을 시원하게 다시 깎아냈다.
마을 전체가 쉬어가는 시에스타 시간도 문을 연 카페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가 시원한 음료 하나와 토르티야를 주문했다. 오래 앉아 있으려니 살짝 눈치가 보여서 카페 콘 레체를 한잔 더 주문했다. 하루 중에 가장 뜨거운 시간이 끝나갈 즈음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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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분. 3분 남겨두고 도착했는데 익숙한 얼굴이 앞에 앉아 있다. 길에서 만날 때마다 무심하게 내 앞을 지나가던 친구다. 그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숨 한번 크게 들이쉬더니 내쉬는 숨에 나에게 말을 건네온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순례길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와인을 한잔 마셨다. 즐거운 밤이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폭풍이 오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두껍고 짙은 구름이 떼 지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외출을 감행했다. 혼자 보는 것이 우울할 정도로 황홀한 경치를 감상하며 한동안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해가 지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