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15_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수능 시험날에 얹혀 가는 이야기

by 달을읊다

카카오미니c 구입 이후,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묻는다.


"헤이 카카오, 오늘의 날씨는?"

"헤이 카카오, 오늘의 미세먼지는?"

"헤이 카카오, 오늘의 초미세먼지는?(미세먼지를 물을 때 한 번에 알려주지 않는다.)"

"헤이 카카오, 오늘의 주요 뉴스는?"


오늘 아침 주요 뉴스를 듣는데 수능날이라고 한다. 관공서와 은행 등 영업시간이 조정되고 출퇴근 시간을 길게 잡아 대중교통을 증차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능은 원래 11월 몇 째 주인가의 수요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은 목요일이었고, 수능 한파도 없었다. 그래도 수험생들은 아침 8시 20분까지 모두 입실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일찍부터 일어나 낯선 남의 학교로 향하는 몸이 무척 떨렸을 게다.


나는 2002년에 수능 시험을 봤다. 400점 만점일 때였다. 시험 전날 담임 선생님이 나눠준 일일이 포장한 초콜릿, 그 포장에 선생님 따님의 귀여운 필체로 쓰인 '수능 대박 아뵤~'라는 글자, 수능 보는 학교 앞까지 같이 지하철을 타고 배웅해 준 엄마의 표정 - 본인도 긴장했으면서 힘내라고 웃어주는 그 표정이 무척 짠했다 -,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던 몸이 1교시 언어 영역 듣기 문제 1번이 나오는 순간 긴장이 풀리던 기묘한 느낌 - 모의고사를 하도 많이 본 탓이다 -, 수험표 뒷면에 빼곡하게 적어왔던 내가 쓴 답안, 다음날 아침 무료로 배부되는 수능 시험 답안과 문제가 실린 신문, 답을 맞혀보고 점수 계산을 하던 그 두근대던 마음, 초상집 같았던 다음날 교실, 그런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도 엄마 집에 가면 내가 고등학교 때 쓰던 성적 노트가 남아 있다. 1학년 때 담임이 만들라고 해서 만든 것이다. 보는 시험마다 받은 성적표를 노트에 붙였다. 고3 때는 워낙 모의고사를 많이 보니까 절반이 고3 때 붙인 성적표다. 그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수능 점수표가 붙어 있다. 성적별 원점수와 등급, 최종 등급이 적혀 있다. 그 숫자 하나로 대학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공계 장학금까지 타 먹을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수능 시험 하나 잘 본 덕에 지금 적당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다. 대학 가는 것 말고는 얼마나 대안이 없길래 듣기 평가 방송이 송출되는 중에는 군사 작전도,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되는지. 수능 시험 그거 사람의 긴 인생에 대면 별거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슬프게도 아직까지는 그 나이 때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를 들고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다.


나는 수능 시험날 뉴스에 나오는 자료 화면들 속의 어머님들의 모습이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아이가 시험 보러 들어간 교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도하며 서 계시는 그 모습이.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도 수능 시험날 부모님의 '시험 잘 보고 와'라는 인사말 속에는, 나보다는 우리 아이가 더 잘살기를,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기를, 행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짠하다. 그 마음이 오늘 시험을 본 수험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 지기를 바란다. 잘했어도, 잘못했어도, 다들 잘했다. 두 번 다시 수능 시험에 임하지 않을 수 있길 기원한다.




* 오늘 커버 사진도 출처는 Pixaba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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