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 없는 이해의 세계, <스펙트럼>

by 달을읊다

즐겨 보는 유튜브 중에 '안될과학'이라는 채널이 있다. 과학이 어렵고 낯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흥미를 느낄만큼 쉽고 재밌게 설명해 주는 유튜브다. 게다가 접하기 어려운 최신 과학 소식을 풀어 주는 점이 좋아서 구독해 두고 종종 보곤 한다. 최근에는 <당신이 보는 색의 진실!? 색의 비밀 한 방 정리!>라는 편을 보았는데, '본다'는 것이 어떤 원리인지를 설명하고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시각의 차이를 다루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람과 새와 벌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역과 그들이 보는 영역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벌은 노란색보다 파장이 짧은 빨간색 영역은 보지 못한다. 대신 보라색 너머의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영역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벌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해도, 벌에게 빨간색이 어떤 것인지 이해시키기 힘들 것이다. 사람과 벌이 보는 색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문득 김초엽의 단편 소설 <스펙트럼>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지구와 대기 조성도, 풍경도 거의 비슷한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조난된 지구인 '희진'은 그 행성에서 인류 최초로 외계 문명을 조우한다. 다섯 개의 위성이 뜬다는 점만 제외하면 지구의 황무지를 연상시키는 곳에서, 희진이 만난 외계인은 싱거우리만큼 지구인과 닮았다. 지구인보다야 훨씬 크고 팔이 세 개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들 중 '루이'라 불리는 자가 희진을 돌봐 준다. 루이는 대체로 무언가를 그리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희진이 보기에는 화려한 색채의 추상화 비슷한 것이다. 그들은 말을 하지만, 인간의 가청주파수와는 조금 어긋나 있어서 오랜 시간 관찰해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수명은 길어야 3년에서 5년 정도로 매우 짧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이 다른 개체에 전달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희진을 돌봐주던 루이가 죽자, 다른 이가 와서 '루이'로서의 역할을 이어받는다. 그들은 정말로 영혼이 전달되기라도 한 것처럼 희진을 익숙하게 대한다. 희진이 '루이들'의 기억의 전승에 그림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네 번째 루이가 찾아왔을 때였다. 그들에게 색채는 언어고, 추상화처럼 보이던 그림은 일종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루이가 바로 며칠 전까지 함께 지내던 바로 그 루이처럼 느껴졌다. 루이는 희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희진의 뒤로 펼쳐진 노을을 보고 있었다.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스펙트럼> p.88




나는 문득 이 지점에 멈춰서 이 행성의 사람처럼 생각해 보려고 애써 본다. 그들은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어린 왕자처럼 노을을 볼 것이다. 시시각각 색이 변하며 전하는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다. 너무 빠르게 변할 테니 아주 집중해야 한다. 노을이 전하는 말은 수고했어 - 다 괜찮아 - 평온한 하루였어 - 따뜻하지? - 내일 또 만나, 그렇게 읽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파란 하늘을 보니 왠지 씩씩하다, 상쾌하다, 하고 쓰여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들은 말로 전하기 어려운 것을 전하고 싶을 때면 특정 시간에 만나 함께 하늘을 볼지 모른다. 무지개는 또 얼마나 커다란 편지일까. 이렇듯 '다른 존재'를 그리는 일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우리는 - 지구인은 -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눈이 인지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다, 벌과 사람만큼의 차이는 아닐지라도. 어떤 사람이 구분할 수 있는 미세한 파장의 변화를 다른 누군가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같은 것을 볼 수 없는 우리는 어쩌면 서로 영원히 닿지 못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로 상대를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늘 그 안에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이 보이는 것만 같다. 마치 붉은 노을이 '오늘 하루 수고했어'라는 말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괜찮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다.




그런 생각에 도달했을 때, 희진은 루이가 가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눈앞에는 회색의 축축한 피부를 가진 여전히 낯선 존재가 서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에는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


하지만 희진은 이해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루이의 연속성을,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그때 네 번째 루이가 희진을 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희진은 그것이 미소임을 알았고, 그래서 마주 웃어주었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스펙트럼> p.91



허블출판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https://hubble.page/%EB%8F%84%EC%84%9C-%EB%AA%A9%EB%A1%9D/view/239877

안될과학 <당신이 보는 색의 진실!? 색의 비밀 한 방 정리!>

: https://youtu.be/F3-3Hj4tB40


• 이 글은 오키로북스의 <도전! 브런치 작가!> 워크샵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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