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추억, 사랑, 쓸쓸함,
그리고 동경

by 달을읊다

인천에서 아산에 가려면 지금이야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겠지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꾸역꾸역 서울로 들어가 경부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명절에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가장 이상적인 루트였던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자그마한 티코의 뒤 좌석에 앉아서 무한히 반복되는 것만 같은 명절 특집 라디오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어둑어둑한 밤에 능선만 보이는 산 그림자를 훑다가, 안성 휴게소 즈음에 도착해서 정체가 의심스러울 만큼 커다란 닭 다리를 쥐고 헤벌쭉 웃고는, 이내 끄덕끄덕 조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 이를테면 '만남의 광장'의거대한 표지를 본다던가 - 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일 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톨게이트를 지나 한참을 지루하게 거슬러 오르고, 차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 때면 나는 마침내 그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밤의 한강이 점점이 선 가로등의 오렌지빛을 가만히 제 몸에 비치며 출렁이는 장면이다. 나는 늘 그 광경을 고대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한껏 속도를 내는 차의 유리에 이마를 바짝 붙인 채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또 저만큼 멀어지는 가로등 불빛의 행렬을 보는 것이, 나는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벅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감정은 아마도 가로등과 그 아래 펼쳐진 새까만 한강이 마치 별과 밤하늘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은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는 낯선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런 풍경을 본 것은 스물 대여섯 무렵 혼자 강원도 산속으로 템플스테이를 갔을 때뿐이니까. '그래서'와 '그런데도' 중 어떤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별과 우주에 대한 동경이 있다. 별을 보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신기함'보다는 어쩐지 '그리움'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어쩌면 우리가 모두 한때 별이었던 것들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나를 이루고 있는 어느 한 부분이, 한때 저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 놓여 있었던 기억을 품고 있어,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처럼 저 우주를 애틋하게 바라고 있는 건 아닐지.


별을 보며 느끼는 황홀한 감정과 동경, 그리고 쓸쓸함을 가장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가가 있다면 단연 레이 브래드버리일 것이다. 나는 ⌜화성 연대기⌟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SF가 이렇게 시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은밀히 그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화씨 451⌟로 대표되는 사회 비판적인 소설도 있고, 소름이 돋는 SF 호러 작품도 제법 많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의 소설은, 그보다는 좀 더 향수 어린 꿈결 같은 이야기다. 이를테면 ⌜민들레 와인⌟이라던가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실려 있는 <로켓>과 같은.

아마도 미래의 어느 날, 어느 시골에 가난한 가족이 있다. 가장인 보도니 씨는 고물상을 운영하며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산다. 부자들은 로켓을 타고 저 별똥별 사이를 마음껏 누비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로켓 소리에 잠을 설치며 동경하는 마음으로 그 자취를 좇을 뿐이다. 보도니 씨가 열심히 모은 돈으로 식구들 중 한 사람쯤은 로켓에 태울 수도 있었지만, 가족들은 모두 사양한다. 우주여행이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날 보도니 씨는 아주 오래되고 낡은 로켓을 고철로 사들인다. 이미 수명이 다한 물건이지만, 보도니 씨는 가족 모두와 함께 우주여행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로켓을 고친다. 준비가 완료되자 아내가 만류하는 가운데 보도니 씨는 세 아이를 데리고 로켓에 오른다. 보도니 씨는 아이들을 자리에 단단히 앉힌 채 로켓을 출발시킨다. 곧 창밖으로 우주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별들과 혜성이 흐르는 것을 보며 꿈 같은 시간을 만끽한다. 늦은 시간, 아이들이 깊이 잠들자 보도니 씨는 가만히 로켓 문을 연다. 그곳은 우주가 아닌 보도니 씨의 고물상 마당 한가운데, 로켓의 창 밖으로 흐르는 것은 입체 영상, 그는 로켓 문밖의 아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아내도 마주 손을 흔들어 준다.




맹꽁이자물쇠를 단 공장 대문도, 고즈넉한 강가의 오막살이집도, 그 집 부엌의 불 켜진 창문도, 항상 가던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도, 변함없이 그대로 녹슬어 가는 중이었다. 동시에 마당 한가운데서 경쾌하게 털털거리는 로켓은 마술 같은 꿈을 자아내는 중이었다.


레이 브래드버리 <로켓> /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중에서




아직 이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우주여행이 더 이상 꿈만은 아닌 시절이 되었다. 요즈음 나는 넷플릭스의 ⌜카운트다운:인스퍼레이션4, 우주로 향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민간 우주 기업인 스페이스X에서 민간인 4명을 로켓에 태워 우주정거장보다 높은 580km 상공으로 쏘아 올리고, 사흘 동안 지구 궤도를 도는 미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우주여행'은 이미 작년 9월에 성공했다. 스페이스X 외에도 우주여행에 도전하는 기업이 존재하며, 로켓을 사용하는 비용은 점차 저렴해 지고 있다. 어쩌면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화성을 실제로 가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분명 이 소설을 떠올리며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아주 멋진 영상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짓고는, 우주선의 해치를 의심스럽게 여길 것이다. 로켓 안에서 나는 창밖에서 점점이 다가왔다가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운석을 보며 어린 시절 차창 밖으로 흐르던 한강 변의 가로등 불을 떠올릴지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제 궤도를 돌고 있는 '9766 브래드버리'라는 소행성의 이름을 기억해 낼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로켓의 엔진이 고요해 지면, 이 모든 게 전부 꿈 같다가, 또 아득히 먼 옛날에 이미 있었던 일 같은 이상한 감각으로 낯선 행성에 첫발을 디딜 순간을, 나는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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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http://goldenbough.minumsa.com/book/831/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카운트다운:인스퍼레이션4, 우주로 향하다⌟

: https://www.netflix.com/kr/title/8144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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