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터져 나간 생의 절망

by 달을읊다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얹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전문




여기 '소희'가 있다. 나이는 스물하나, 얼마 전 8년 동안 자신을 돌봐주던 언니가 이사를 빌미로 소희가 대출받은 보증금을 들고 잠적했다. 그 언니도 8년 전에 같은 방식으로 엄마에게 당했다. 소희는 10만 원을 더 준다는 이유로 이전 직장보다 출퇴근 시간이 두 배는 긴 직장으로 옮겼다. 직장에서 그녀는 아무 생각도 없고, 대화가 안 되는 애로 취급받지만, 사실 늘 돈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월급에서 얼마 간은 집세와 대출 이자를 내고, 몇 년 후 대출 원금을 갚기 위해 얼마 간은 저축하고 나면 한 달에 소희가 먹고 살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20만 원 뿐이다. 갚아야 할 돈과 그 돈을 다 갚은 후 소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도대체 몇 살 때의 일일지, 열심히 헤아리는 소희의 마음은 가쁘다.


권여선의 소설 <손톱>을 읽은 것은 지난 1월 9일이다. 한 달도 넘도록 나는 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고도 망설이기만 했다. 그것은 한 페이지하고도 반을 넘기는 소희의 돈 계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소희와 비슷한 나이 때 나도 그렇게 돈 계산을 하곤 했다. 소설 속의 상황만큼 암담하지는 않았지만, 고시원비와 당장 한 주간을 먹고살 돈과 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이율의 학자금 대출 이자를 생각하고, 하나뿐인 신발의 발꿈치 부분에 못이 튀어나왔는데도 새 신발을 살 여윳돈이 만들어지지 않아 한참을 뒤뚱대며 걷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 시절의 한가운데서는 딱히 절망도 분노도 느끼기 힘들다. 덧난 마음만 이상하게 뒤틀리고 흉한 형태로 딱딱해질 뿐이다, 다친 소희의 엄지손톱처럼.




그러니까 소희는 고객들이 대하기에 어리고 편하고 만만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객이 뭐라고 하면 어쩜 그렇게 앵무새처럼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지, 그래서 잘 파는 애였다. 자기주장이란 게 없고 애가 아주 '무나아안하다'고, 무색무취하다고,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라고 매니저는 말했다. 그렇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무존재하다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라는 식으로 직원들은 이해했다.


권여선 <손톱> / ⌜아직 멀었다는 말⌟ 중에서




한 사람의 존재를 그렇게 '무의미'한 것으로 쉽사리 규정짓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애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상의할 가족이 있기나 한지 관심이 없다. 소희는 그들을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돈을 들고 튄 언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직후 언니도 한번 집을 나갈 시도를 했지만 다시 돌아왔으니, 언니는 엄마와 다르다고 애써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소희는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숙해 보인다. 하지만 소희는 사실 달리기를 잘하고, 한 푼 두 푼이라도 아끼고 모으기 위해 알뜰하게 살림을 해나가는 아주 빠릿빠릿한 사람이다. 그런 애를 두고 세상은 너무 쉽게 없는 존재처럼 다룬다.


하지만 소희도 '사람'인지라 한 번씩 마음속의 무언가가 터져 나갈 때가 있다. 그 터져나간 부위는 손톱으로 묘사된다. 학교와 알바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엄마와 상의했다는 직장의 한 언니 이야기에, 소희는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육상 선수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가 돈을 이유로 너무 쉽게, 너무 냉정하게 거절당한 일을 떠올린다. 그것도 '상의'라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한 직후 소희는 짐을 꺼내다 손을 심하게 다친다. 엄지손가락의 손톱이 기괴한 모양으로 반쯤 꺾여 나갈 정도로. 손톱은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낫지 않는 손 때문에 병원에서 권하는 대로 한 번에 7만 원이나 하는 비싼 치료를 받고만 소희는, 망연한 가운데 어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내가 뭘 어쨌기에? 소희는 낫지 않은 손톱을 외제 차 매장의 유리 벽에 짓이기고는 도망친다. 도망치는 동안 속으로 언니에게 심한 욕을 내뱉는다.


하지만 소희의 분노는 그렇게 오래가지도 않는다. 언니와 둘이 같이 산다는 가정하에 보러 간 집이 너무 좋아 보여서. 남은 휴일의 하루를 휴대전화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공짜 사탕을 먹고 믹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나른하고 좋아서. 그런 소희의 맞은 편에 한눈에도 소희와 같이 가난이 몸에 밴 할머니가 앉는다. 할머니는 마치 늙은 후의 소희같다. 할머니는 껌을 나눠주고, 자신의 다친 손에 대해 염려도 한다. 마주 웃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잠깐의 여행 같은 순간일 뿐이다. 소희도, 글을 읽고 있는 나도 그렇다는 걸 안다. 그게 너무나 암담하고 미안하고 무력해서 이 이야기에 대해 뭐라고 글을 써야 할지 오래 망설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록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고, 다친 손톱을 쓸며 소희가 거기 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진통제 기운이 떨어졌는지 손톱이 쿡쿡 쑤신다. 약을 먹고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 밥도 짓고 국도 끓여야 하는데 소희는 가만히 앉아 있다. 어디서 내릴지 어느 역에서 헤어질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밖은 어두워지고 휴일이 지나가는데 소희는 조금만, 조금만, 하며 울듯이 앉아 있다.


권여선 <손톱> / ⌜아직 멀었다는 말⌟ 중에서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 https://www.munhak.com/book/view.php?dtype=brand&id=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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