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에 어떤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책장을 찍은 흑백 사진이었다. 세로로 꽂힌 책들 위에 가로로 뉘어진 책들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 가운데 딱 한 권의 책만 컬러로 처리해 눈에 띄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였다. 그 사진 덕에 나는 읽기도 전에 ⌜암리타⌟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읽어 보기도 전에 나는 그 책이 아주 묵직하고 어두운 소설일 거라고 믿었다. 그 무렵은 나의 생일이어서,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암리타⌟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암리타⌟는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밝았다. 아니, 밝다기보다 환한 소설이었다. 그 환함 아래 비치는 묵직하고 어두운 감정들은 담담해 보였다. 아주 이상하고, 매력적이었다.
지금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간은 종종 출간되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어느 시점 이후로는 바나나의 책을 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알맹이는 성장하지 못한 채로 옷만 팬시하게 갈아입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예쁘장한 양장본들을 죄다 모을 기세였지만, 지금 나의 책장에 남은 책은 조촐하다. 첫 작품 ⌜키친⌟, 친구가 선물해 준 ⌜암리타⌟, 그리고 ⌜불륜과 남미⌟ 등 몇 권뿐이다. 그 중 단편소설집은 ⌜불륜과 남미⌟ 하나다. 몇 차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책장에서 떠나보낼 때도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좋았다는 기억 하나만 믿고 남겨 두었다. 하지만 막상 목차를 보아도 어떤 내용의 이야기였는지 떠오르지 않아,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불륜과 남미⌟는 작가가 출판사의 주선으로 아르헨티나 여행을 한 후 쓴 단편 모음집이다. 책에는 아르헨티나의 사진도 많고, 하라 마스미의 선이 굵은 일러스트도 여러 장 포함되어 있어 좀 더 풍성한 느낌을 준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제목과 같이 '불륜과 남미'라는 소재가 포함되어 있다. 어쩌다 '불륜'이 '남미'와 같이 묶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야기가 끈적해질 만한 농도는 아니다. 소설 속 화자는 대개 아르헨티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그곳에 머무르는 여행자로. 남미, 하면 떠오르는 '풍경의 진함'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로도 - 결코 정열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 잘 드러나 있어, 나도 모르게 함께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소개하려는 소설 <마지막 날>은 주인공이 아르헨티나의 한 박물관 안을 둘러보다 문득 그날이 자신이 죽는다고 예언되었던 날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그 예언을 한 사람은 외할머니다. 점술가였던 외할머니는 외손녀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는 얼른 손녀의 점괘를 뽑아 전반적인 인생을 훑어본다. 그러고는 지독한 난산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의 엄마에게 이 아이는 몇 날 몇 시에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전한다. 그 일을 계기로 엄마와 외할머니의 사이는 심각하게 나빠진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 자신은 그런 예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의 출장을 따라서 온 아르헨티나에서 그날을 맞이하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필 남편은 업무로 종일 바빠 함께 할 수도 없다. 주인공은 그 '마지막 날'을 홀로 보내며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게 되기까지 있었던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남미의 풍경을 신비롭게 마주한다.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깜빡 잠든 사이, 남편이 돌아와 불을 끄는 기척에 문득 잠에서 깬다. 이미 '그날'은 지난 시각이다. 주인공은 내심 안도하는 마음으로 돌아누운 남편의 등을 바라본다.
내가 먼저, 가령 오늘 죽었다면 그는 둘이서 살며 정든 그 방에서 계속 살아가리라. 그는 나의 기척이 구석구석 스며 있는 그 거실에서, 매일 아침 커피를 끓이리라. 둘의 몫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몫. 그 커다란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남편은 늘 냉장고에서 꺼낸 병에서 커피 가루를 덜어 필터에 담는다. 그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상상했다. 내가 맛있다고 해서, 남편이 항상 커피를 끓여준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칭찬해 주는 사람이 하나 없는데도, 그 방에서 그 빛 속에서 음악을 쾅쾅 틀어놓고 말없이 맛있는 커피를 끓이리라.
그 광경에, 가슴이 메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마지막 날> / ⌜불륜과 남미⌟ 중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사랑했던 이유를 떠올려 본다. 하늘이 너무 파랗고 맑아서 어쩐지 서글퍼진 적이 있는가?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해진 적이라던가. 바나나의 세계의 한쪽에는 그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정원, 가족과 함께 만든 예쁜 추억,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통하는 찰나, 그런 장면이 반짝반짝 빛난다. 다른 한쪽에는 이상하고 기이한 세계가 딱 붙어 있다. 연인이나 가족을 잃은 사람, 심하게 상처 입은 몸과 마음, 집안에 내려오는 이상한 저주,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재능으로 인한 고통 같은 것들이. 그 양 극단을 대비함으로써 인생이란 얼마나 모순적이고 인간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엄숙하게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딱히 엄숙해질 마음은 없는 것 같다. 대신 작가의 글 속의 존재들은 빛으로 그런 어둠을 콱 끌어안아 버린다. 선한 마법사가 상처 위에 손을 댔더니 따뜻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상처가 점점 사라지더라, 하는 느낌이랄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번역하신 김난주 번역가는 이를 '행복한 상처깁기'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너무나 적확해 덧붙일 말이 없다.
그리고 올해 오늘 이 밤, 어렸을 적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일로 가슴이 멜 수 있는, 이런 순간이 내 인생에 찾아왔다는 것이 그저 한없이 기뻤다.
요시모토 바나나 <마지막 날> / ⌜불륜과 남미⌟ 중에서
요시모토 바나나 ⌜불륜과 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