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여름보다 좋아하는 사람
미세 먼지만 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여름하고 비교하자면 언제나 겨울의 승리다. 그렇다고 추위를 덜 타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사실 유독 겨울만 되면 더 게을러지는데, 추운 나머지 자꾸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까닭이다. 겨울밤 이불속에서 팟캐스트 들으며 귤 까먹는 걸 좋아한다. 올 겨울이라면 아마 팟캐스트 대신 넷플릭스를 택할 테지만.
겨울 새벽이나 밤의 그 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으면 부르르 떨릴 만큼 춥다. 그래도 그 추위에 머리가 맑아지면서 가벼운 흥분이 느껴진다. 그래서 겨울 산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눈이라도 내리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너무 폭설만 아니라면야. 가능한 두꺼운 차림으로 단단히 대비를 한다. 장갑을 꼈어도 보통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뒤뚱뒤뚱 걷는다. 혼자 걸을 때면 헤드폰을 착용한다. 그래도 오래 걷기는 힘들다. 그럴 때면 걷다 말고 근처 카페로 숨어든다. 언 손을 머그잔에 녹이고,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게 겨울 산책의 일반적인 루틴이다.
12월에는 상가들이 많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설레었다. 식상해도 상점에서 나오는 캐럴과 무해한 크리스마스 단골 팝송들이 쿵짝쿵짝 신나기도 했다. 나무에 좋지는 않다고 하는데, 나무마다 전구를 걸어놓고 밤에 노란 꼬마전구들이 빛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일부러 찾아 걷기도 했다. 요즘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과 전구 셋 다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한 번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 정동길을 걸었다. 덕수궁 사잇길로 접어들어 이화여고 방향으로 걷는데 나무마다 손뜨개로 만든 옷을 입혀 놓았다. 저마다 색색깔의 털옷을 입은 모습이 어딘가 초현실적이었다. 꽤 추워서 손이 얼었을 것 같은데, 그 옆에서 뮤지션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들의 사진도 찍어주고 뮤지션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내 주머니에 넣은 채 다시 걸었다.
올 겨울에도 이따금 산책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겨울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미세먼지도 덩달아 심해졌다. 안경잡이라 안 그래도 겨울이면 불편한데, 마스크까지 쓰면 김이 서려 너무 귀찮고 답답하다. 매년 점점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해질 거면 올해야 말로 라식을 고려해 봐야겠나 싶다. 그래도 가끔 공기 괜찮은 날은 동네 한 바퀴 슬슬 돌아보려 한다. 이사 오고 처음 맞는 겨울인데, 산과 접해 있는 동네라 겨울산 냄새가 그윽할 것 같다. 걷다 추우면 동네 어귀의 카페에 들러 봐야겠다. 크리스마스 장식 구경도 하고 싶고, 새로 달달한 디저트를 들여놨을지도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