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유머 게시글에서 본 영웅과 악당의 특징이라는 글이 있다. 아래와 같은 특징이 언급되는데, 일반적인 악당과 영웅에 대한 사람들의 상식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만화에서 보았던 전형적인 악당과 영웅들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피식하고 웃음이 난다. 재치 있는 분석이다.
일반적인 영웅들에게는 위의 특징에서 첫 번째로 꼽았던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대부분 정의를 위해 싸운다. 정의의 이름으로 악당을 용서하지 않았던 세일러문이나, 주님께 오늘도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 달라고 했던 - 이 무슨 형용 모순인지 - 천사 소녀 네티나 모두 정의 하나만을 위해 산다. 그들도 연애를 하고 심지어 아이도 낳기도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사랑은 정의라는 꽃을 감싸는 예쁜 리본 정도로 그려진다. 악당은 끝없이 나타나고, 더 이상 히어로가 필요치 않을 만큼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목마르게 살 팔자다. 가엾은지고.
그래서인가 영웅의 고뇌를 그리거나 영웅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는 내용도 근래에는 종종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원펀맨>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제목으로 삼기도 한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는 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노래다. 노래 가사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죽어가며 아들에게 너는 그런 일(지구를 지키는)을 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는 내용이다. 심지어 엄마가 일찍 죽은 것도 다 아버지가 히어로였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참 골 때리는 가사다. '눈뜨고 코베인'의 노래답게 블랙 유머가 담뿍 묻어 있다.
하지만 정말 <원펀맨>의 세계와 같이 직업인으로서의 히어로가 있다고 하면 정의 하나만을 목표로 삼아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정의라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개념이다. '트롤리 사고 실험'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철로 위에 다섯 사람의 인부가 있다. 기차가 달려오고, 이 상태대로라면 그 다섯 사람은 기차에 치여 죽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 옆에는 아주 뚱뚱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철로로 밀어 버리면 그 뚱뚱한 사람은 죽지만 열차를 멈춰 다른 다섯 사람은 살릴 수 있다. 이때 다섯 사람이 죽도록 두는 것이 정의로운가? 아니면 뚱뚱한 사람을 철로로 밀어 다섯 사람을 살리는 게 정의로운가? 이 질문에 아무도 선뜻 어떤 것이 정의롭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의가 이다지도 모호한 개념이다 보니 자신이 선택한 정의를 추구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른다. 사회적 합의에 이른 정의라면 사적인 정의보다는 더 정의로울 것이니, 사회의 정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좀 더 영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라는 거대한 사회적 정의에 따라 일어났던 숱한 참사들을 돌이켜 보면 내가 속한 집단에 한정된 정의는 정의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범지구적인, 그리고 모든 시간대에 두루 정의라고 이를법한, 그런 절대적 정의는 있을 수 있을까? 아직 소견머리가 좁은 나로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 절대적 정의를 추구하는 영웅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팬이 되겠다. 여차하면 '로빈'처럼 그의 정의를 따르고 행동하는 주니어 히어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세계에서는 그런 정의도 없고, 그런 정의를 추구하는 영웅도 없다. 지구를 지키는 일을 가업으로 물려줄 생각이 없는 히어로가 죽어가는 세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히어로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는 정말 신나는 노래다. 꼭 한번 들어 보시길.
* 눈뜨고 코베인 -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 EBS 스페이스 공감
* 트롤리 사고 실험 - 나무 위키, 트롤리 딜레마
- 본문 글에 언급된 내용은 '사례 2'에 해당한다. 동일한 상황에서 나의 개입 정도에 따라 '사례 1'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니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