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가장 사소하고 빈번한 절망

by 달을읊다

절망[絶望]

1. 희망이 없어져 체념하고 포기함

2. 인간이 극한 상황을 맞아 자기의 한계와 허무함을 자각할 때의 정신 상태


다음에서 검색한 절망의 사전적 의미는 저렇다. 체념, 포기, 한계, 허무함 등을 내포하는 단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겪는 가장 사소하고 빈번한 절망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다. 아침잠도 많고 점심잠도 많고 저녁잠도 많다. 그래서 애플워치를 사고 제일 기대했던 기능이 수면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다. 기본 탑재된 기능이 아니라서 별도 유료 앱을 구매했다. 그리고 분명 나의 이 잠 많음은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서 일거라고, 이제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사용해본 결과 나의 수면의 질은 남들과 비교해도 제법 좋았다. 깊은 수면, 실질 수면 시간도 제법 되고 심박수 또한 꽤나 낮게 나온다. 내가 잠이 많은 건 수면의 질과 무관하게 그냥 많은 모양이다. 뭔가 억울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면 늘 깊은 절망감에 휩싸인다.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나는 엎드려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어째서 지구는 고작해야 24시간 동안만 자전을 하는지, 왜 오늘은 토요일이 아니고 목요일인지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래 봐야 바뀔 것은 없다. 그 상태로 다시 혼곤해지면 그날은 그저 늦게 출근하는 날이 될 뿐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유연 근무제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지각'이라는 개념은 없어졌다. 그래도 어쨌거나 한 달 동안 일을 위한 필수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에 가서 계획한 시간만큼 일을 하는 게 나중에 덜 힘들다. 그런 계산을 매일 아침마다 하며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소모적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부추기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저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아침 식사는 오래전부터 포기하고 살고 있다. 조금 전에는 수건 빨래를 돌려놓고 너무 피곤해서 잠들었다가 세탁기의 완료음을 들었는데,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게 너무 힘들어 내 뺨을 때리면서 (진짜로 세게) 간신히 일어났다. 휘청 휘청 수건을 널고 있자니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이 놈의 수건들 다 불태워 버리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일어난 김에 시 필사도 하고, 이 글도 쓴다. 역시 깨어나 있어야 의미 있는 일이든 무의미한 일이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사소하고 빈번한 절망을 날마다 털어내며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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