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8년 1월 1일에 첫 직장에 입사했다. 이후 2018년 4월 6일까지 그 회사를 다녔고, 지금 회사를 같은 해 4월 16일부터 쭉 다니고 있다. 12년째 직장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다니는 중에는 10일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열흘 이상 쉴 만큼의 사건도 사고도 없었다는 말이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 길다면 제법 긴가 싶은 기간이다. 어쨌거나 유년기 이후 내 신분은 줄곧 학생 아니면 직장인이었다.
대학 다닐 때 어떤 선배가 그랬다. 너는 정말 사회생활 같은 건 못할 것 같다고. 내가 무슨 말을 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비난을 하려던 건 아니고, 어쩐지 조금 딱하다는 듯한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기사 학교 다닐 때는 지금 보다는 좀 더 또라이 같은 기질에 어둠의 다크니스 한 기운이 뒤섞인 사람이었으니, 남이 걱정할만한 인성이었던 건 확실하다.
애초에 그런 인성이 걸러지지 않는 걸 보면 대기업 신입 공채 때 보는 인적성 검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이 들어 지레 겁먹고 있는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취직한 이후에 나 스스로는 전혀 이 '사회'에 잘 적응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러모로 둥글어지긴 한 모양이다. 그리고 회사 일로 피곤한 날이면 깎여나간 모서리의 흔적을 못내 긁적이게 된다. 마치 발을 잃은 사람이 발가락의 간지러움을 느끼는 것처럼.
일단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회사와 관련된 일이 내 삶을 잠식해 간다. 단지 야근을 많이 해서 내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내 카톡 대화방의 대부분 회사 업무용이다. 친구나 가족을 만날 계획을 세울 때도 회사 일정이 우선시된다. 잠자기 직전 내 머릿속을 채우고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대체로 회사 일이고, 나를 가장 열 받게 하는 사람도 회사 사람이다. 새해 벽두에 가장 먼저 연락하는 사람? 바로 회사 사람이다.(과장님~ xx가 안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내 의지로 끊고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내 삶의 운전자 자리에 어느샌가 회사를 앉혀 놓았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하지만 직장에 다닌다는 건 사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일단 수입이나 하루의 일정이 어느 정도 고정되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무언가를 대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도 많고, 악마인가 싶을 만큼 해괴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항마력을 기르게 된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경험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자기 통제력을 가질 수도 있다, 초 봄 시냇물을 덮은 얼음보다 잘 깨지겠지만. 회사의 이름으로 보호받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대신에 그 틀에 맞지 않는 내 모서리들을 잃을 뿐이다.
가끔 충분히 미친 듯이 일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회사에서 더 이상 내가 그다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안 들거나, 내가 가진 스킬이 너무 협소하고 얕다고 느낄 때 그렇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야 말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내게 부족한 점이 단지 이 회사가 내게 기대하는 부분인지, 아니면 나의 커리어상 필요한 부분인지. 그런 기준으로 돌아보면, 오히려 나는 좀 더 '못한다'는 말을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도취에 중독되지 말고 좀 더 멀고 길게도 생각해 볼 걸. 이제 와서 다시 지도를 꺼내 들어 보니 윤곽선도 희미하고 어디가 북쪽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먼지를 털고 자세히 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