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날씨가 다시 좀 쌀쌀해졌다. 이런 날일수록 오늘이야 말로 운동을 하고 얼른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웬걸, 서래마을 쪽에 자주 가는 맥주집에 또 좋은 맥주가 들어왔다는 인스타를 보고 말았다. 결국 룰루랄라 발걸음을 서래마을로 향한다. 오늘 들어온 맥주도 아주 좋다. 보틀 샵을 겸하고 있는 곳인데 전용잔 세트 행사도 자주 하고 새로 들어온 맥주들도 잘 갖추어 놓아 늘 한 바구니씩 맥주를 사서 가게 된다. 결국 맥주 아홉 캔과 전용잔 하나를 짊어지고 흐뭇하게 귀갓길에 오른다.
신반포역 사거리에서 버스를 타면 집 근처까지 올 수 있다. 조금 구불구불 돌아가긴 하지만 보통 이렇게 맥주가 한 짐 생기기 때문에 지하철을 대신 그냥 버스를 이용한다. 늘 그렇듯 자리는 여유가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맥주를 발치에 놓고, 노래를 들으려고 이어폰을 꺼낸다. 그때 기사 아저씨가 틀어둔 라디오에서 아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움만 쌓이네>이다. 리메이크 버전이 아닌 정말 원곡이다. 레이지본도 노영심도 아닌, '여진'이라는 가수의.
버스 안에서 원곡을 들을 때는 그게 노영심의 곡인 줄 알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노영심 버전이 좀 더 현대적이며 보컬은 기교 없이 잔잔하다. 원곡은 듣자마자 이 노래가 이렇게 오래된 노래였나 싶은 기분이 들만큼 약간의 촌스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보컬은 말도 못 하게 파워풀하다. 기사 아저씨도 흥얼흥얼 노래를 간간히 따라 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시대 사람도 아니면서 퍽이나 반가워하며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한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하는 가사 때문이다. 사실 스물 하나에 만난 사람을 여태 사귀고 있으니 제대로 된 이별을 겪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나는 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그저 애끓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만 가능하던 시절은, 나도 겪어 봤다. 어쩌다 포기하지도 않고 잘도 견뎠다. 그 사람과 14년을 사귀고 올 12월에 결혼한다. 그런 오래된 일은 잊은 것처럼 잘만 지내고 있는데 노래 한 곡 들었다고 그 시절의 그리움이 이렇게 훅 덮칠 줄이야. 어디 가지 않을 사람인데도 어쩐지 볼을 꼬집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