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그래도, 엄마

by 달을읊다

14년이나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먼저 우리 집에 인사를 드렸다. 워낙 어릴 때부터 사귀었으니 언젠가 결혼은 하겠구나 싶으셨을 테고, 한편으로는 빨리 결혼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은근한 압박도 하셨지만 막상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우리 집 식구들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사실 나조차 14년 만에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장소는 인천 모처에 있는 고깃집이었는데, 아버지 생신과 내 생일을 겸해서 모인 자리라 오빠네 세 식구와 우리 부모님, 그리고 아산에 사는 할머니까지 계신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원래 남자 친구나 나나 붙임성이 좋지를 못해서 남자 친구는 우리 아버지가 늘어놓는 끝없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하염없이 고기를 구웠다. 나도 아버지와는 잘 대화를 하지 못하는 편이라 적당히 분위기 좋게 끼어들 수가 없어, 고기만 계속 날름날름 먹어 치웠다.


다음날 저녁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원래 수다가 많은 집안이 아니라 정기 연락선 정도만큼 뜸하게 통화를 하는 터였다. 무슨 일이 있으려나 싶어서 전화를 받았는데 별 용건은 없으신 듯했다. 남자 친구가 들고 간 진도산 멸치는 할머니도 조금 드렸다던가, 남자 친구가 별 얘기는 안하냐던가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시더니만 불쑥, 딸이 결혼한다는 게 실감이 나니까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전날 제대로 못 주무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10년이나 나와 살았는데 뭘, 하고 조금 힘들게 웃었고 엄마도 그러게 말이다, 오빠 결혼할 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하셨다.


그 두어 달 뒤에는 상견례를 했다. 남자 친구의 어머님이 가장 긴장한 가운데 각자의 자식 자랑도 조금씩 하고, 결혼식과 관련된 이야기도 몇 가지 하고, 서로서로 우리 자식 예쁘게 봐달라는 말씀도 하시면서 긴 시간이 흘렀다. 의외로 나는 상견례 자리가 그리 긴장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음식이 맛있다는 둥,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자 친구의 어머님이(남자 친구는 외동아들이다.) 우리 엄마에게 딸 시집보내려니 섭섭하고 아까우시겠다고 인사치레를 하셨다. 그러자 엄마가 너무 단호하게 그럼요 아깝죠, 하고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정말 나는 우리 딸 보내는 게 아깝다고, 하지만 자기가 너무 그렇게 얘길 해서 언짢게 생각하셨으면 어쩌나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내가 결혼식날 엄마 얼굴을 보고 울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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