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 13_노르웨이의 숲에 가보셨나요?

15년 하루키 덕질 인생

by 달을읊다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루키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상실의 시대>이다. 아마도 <상실의 시대>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하루키는 이 소설로 처음 접했다. 2002년, 고3이었다. 아직 만화책 대여점이 동네에 하나씩은 있었다. 대여점에서는 만화뿐만 아니라 베스트셀러나 로맨스 소설 같은 것도 같이 취급했다. 이미 광고에도 나온 그 책, <상실의 시대>는 거기도 있었다.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쓸데없이 야한 느낌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지금보다 한층 더 성격이 암울했고, 염세적이었으며, 신비주의와 판타지 세계에 좀 더 관심이 있었으므로 하필 하루키 소설 중 유일하게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상실의 시대>가 맞을 리 없었다. 그렇게 하루키는 내 인생에서 사라질 뻔하다, 내 친오빠의 말발에 의해 복권될 수 있었다.


나와는 네 살 차이 나는 우리 오빠는, 세 시간 반짜리 영화였던 <타이타닉>을 두 시간 동안 줄거리를 읊을 만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두 시간이나 지겹지 않게 들을 수 있었던 건 디테일에 대한 묘사의 생생함과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일 것이다. 오빠는 어디서 어쩌다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태엽 감는 새> 1권을 보고 와서는 내게 한 시간 정도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래 봐야 하루키야,라고 생각이 됐지만 오빠의 말솜씨 때문이었을까, 2권의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1권의 내용을 내가 다시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들썩들썩한 마음으로 만화 대여점에서 <태엽 감는 새> 전 권이 있는 것을 보고, 1권을 먼저 선 채로 훑어보았다. 오빠가 심하다 싶을 만큼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은 탓에, 굳이 1권을 다시 읽고 2권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2권을 빌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3권과 4권도 마저 빌렸다. 어디선가 하루키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학에 들어가자 도서관에는 넘칠 듯이 책이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기 작가여서 <상실의 시대> 같이 대출이 많은 책은 여러 권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찬찬히 하루키의 소설을 독파해 갔다. 다시 <상실의 시대>를 읽어 보았고, 맨 처음에 쓴 책부터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었다. 이후 하루키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만났다. 장편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단편을, 그리고 에세이를 읽었다. 나는 대학교 다닐 때 처참할 정도로 돈이 없었지만 한 권씩 그의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직장에 들어간 후에는 좀 더 마음 놓고 책을 살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 <1Q84> 1권이 나왔을 때는 평일이었음에도 밤을 새워서 읽고 출근하기도 했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무라카미 라디오>를 거듭 읽었고, 친구들에게 <먼 북소리>를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 신간 소식이 나오면 일단 예약을 걸어둔다. 이사 다니는 통에 책이 상했거나, 누굴 빌려 줬는데 안 돌려주거나, 새로 번역이 나와도 책을 산다. 그 덕에 우리 집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태엽 감는 새 4>, <상실의 시대>가 두 권씩 있다. 단편집과 에세이는 자꾸만 예쁜 양장본으로 나와서 아이 참, 싶어 진다.


어떤 점이 좋은지 나는 오빠만큼 말솜씨가 없어서 잘 설명하기 어렵다. 확실한 건 그의 책을 일단 손에 잡으면, 딱히 추리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도 아닌데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꼼꼼하게 읽으면 사건들의 얼개가 치밀하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딱히 읽는 동안에 눈에서 걸리는 부분이 없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것처럼, 이야기에 긴장과 이완이 고르게 잘 배치되어 있어 피로감이 덜한 모양이다. 무엇보다 맛깔난 직유법을 사용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상실의 시대>에서 나온 '봄날의 곰' 비유일 것이다. 그런 달달한 묘사뿐만 아니라 대부분 하루키 소설의 특유의 위트는 직유법을 구사한 문장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것.


제법 오랫동안 나는 그냥 서 있는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와 엘리베이터는 <사나이와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의 정물화처럼 거기에 정지된 상태로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를 좋아하고, 한편으로는 무척 혐오한다. 대중적 인기와 문학성이 같이 가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일본 내부에서는 문단과 친하지 않고 비평가들로부터 숱하게 치였다는 것 같다. 최근에 읽은 기사 중에는 노벨문학상의 대안으로 만든 무슨 상에서 세 명의 후보 중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정되었는데, 본인이 후보 자리조차 고사했다고 한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 상을 받으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지니까 그랬으리라는 악의적 추측이었다. 정작 본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벨문학상이든 다른 상이든 수상에 관심이 없다고 누차 밝히고 있지만, 별로 그런 이야기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오스카에 관심이 없다고 인터뷰하는 것 같아 보였으려나.


하지만 최근 라디오에서 일일 DJ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무척 흥미로웠다. 언론 노출이 극도로 적은 사람인데 라디오 방송을, 그것도 DJ를 한다는 점이 재밌었고, 아무래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만담하는 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편 소설을 메인으로 하는 작가니까, 물론 인터뷰 집도 재밌었고 이런 기사도 반갑지만 다른 무엇보다 다음 장편 소설을 기다리게 된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재밌는 소설들을 잔뜩 써주셨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말년에는 분명 하루키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신간을 기다리던 기억이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저는 문학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낸 번역본으로 접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제목이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고 판단하여 본문에서는 일괄 <상실의 시대>로 지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