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상한 사료 … 막내는 살았다

by 부지깽이

어둠이 소곤소곤 내려앉은 마을 끝자락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다. 그 아파트 화단 구석에는 고양이 가족이 숨어 살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와 태어난 지 보름쯤 된 새끼 고양이 세 마리였다.


새끼 고양이들은 낮에는 나무 아래에서 숨어 지냈다.

엄마 고양이는 먹이를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바쁘게 오갔다. 그러다 해가 기울면 새끼들도 살금살금 기어나와 세상 구경을 했다.


고양이 가족에게는 마음씨 따뜻한 캣맘이 있었다.

그녀는 근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저녁때마다 꼭 화단에 들러 엄마 고양이와 새끼들을 살피곤 했다.


그녀는 남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살았다.

큰 딸은 고등학교 1학년, 작은 딸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두 딸은 공개입양으로 가족이 된 아이들이었다. 그 집엔 고양이도 세 마리 살고 있었다.

모두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던 길냥이들이었다.


캣맘은 자기 집 고양이들을 챙기면서도, 화단의 고양이 가족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난 걸 알게 된 뒤로는 엄마 고양이 그릇엔 통조림을, 새끼들 그릇엔 따뜻한 우유에 물에 불린 사료를 갖다 주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던 어느날 해질 무렵,

먹이를 찾아 온종일 돌아다닌 엄마 고양이가 돌아왔을 때 보금자리 앞에는 사료가 듬뿍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새끼들의 밥그릇은 비어 있었다.


엄마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캣맘이 바쁜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배가 고팠지만 새끼들 배부터 채워주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입 안으로 가져가, 작게 잘근잘근 씹은 다음 조심스럽게 새끼들 그릇에 뱉어 주었다.


그런데… 사료 맛이 좀 이상했다.

낯선 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고, 입 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그래도 너무 배가 고팠던 엄마 고양이는 사료를 입안 가득 물고 천천히 우물거리다 반은 삼키고, 반은 새끼들 그릇에 뱉어 주었다. 새끼들은 허겁지겁 먹었다.


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던 막내는 오늘도 나무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다.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가느다란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 시각, 허둥이는 찜질방 바닥에 지친 몸을 뉘려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세상 구경을 다니느라 몹시 피곤했다.


그 때였다,

파르르—

목에 걸린 전생 거울이 울렸다. 허둥이는 벌떡 일어나 문을 밀고 나가, 거울의 진동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달빛은 유난히 차가웠다.


허둥이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작은 화단이었다.

그곳엔, 엄마 고양이와 새끼 두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그 순간, 전생 거울이 두 번째로 울렸고,

스르르—

안개같은 어스름 속에서 지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엄마 고양이의 몸에서 가늘고 투명한 무언가가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새끼들의 몸에서도 작은 영혼이 떠올랐다.


지둥이는 엄마 고양이에게 다가가 고개를 살짝 숙여 눈을 맞췄다. 그리고 앞발을 들어 말없이 찜질방 쪽을 가리켰다. 세 고양이의 영혼은 지둥이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허둥이는 그 모습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았다.


엄마 고양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허둥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무 아래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허둥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막내 고양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몸은 삐쩍 말랐고, 눈곱을 떼지 못한 눈꺼풀은 위아래가 붙은 채 닫혀 있었다. 막내 고양이의 숨소리는 거칠고 불규칙했다.

크르륵, 크르륵— 어디가 아픈 건지,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허둥이는 막내 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다. 체육복을 입고,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멘 한 소녀가 화단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가방 옆구리엔 펜싱칼 끝부분이 삐져나와 있었다.


허둥이는 그 소녀를 향해 큰 소리로 울었다.

냐옹!”

놀란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허둥이는 살며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화단에 도착한 소녀는 깜짝 놀랐다.

고양이 세 마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고,

나무 아래 작은 고양이 한 마리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소녀는 무릎을 꿇고 막내 고양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소녀의 집은 화단이 내려다 보이는 앞동 1층이었다.


잠시 후, 소녀는 아빠와 함께 다시 화단으로 뛰어왔다.

바로 그때, 캣맘이 골목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소녀는 엄마를 보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놀란 캣맘이 뛰어와 화단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은 회식이 있어서 조금 늦게 밥을 주려고 왔는데, 그 사이에 너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캣맘과 아저씨가 다시 화단에 나타났다. 캣맘의 손에는 수건과 물티슈, 키친타월이 들려 있었고, 아저씨는 종이 박스와 삽을 들고 있었다.


캣맘은 엄마 고양이와 새끼들의 몸에 묻은 흙을 털고, 물티슈로 입안과 몸 여기저기를 정성스레 닦았다.

그리고 키친타월로 감싸서 박스 안에 조심스레 눕혔다. 엄마 고양이를 가운데에 뉘었다.

마치 새끼들을 안고 자는 것처럼 보였다.

그 위에는 하얀 수건을 덮고 박스를 닫았다.


두 사람은 아파트 뒤편 작은 동산으로 걸어갔다.

풀잎이 무성한 언덕 아래, 아저씨는 말없이 삽을 들었다. 부드러운 흙이 천천히 걷히며, 땅속에 작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구덩이에 조심스럽게 박스가 놓이고, 그 위로 포슬포슬한 흙이 덮였다.

허둥이는 담벼락 위에 앉아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캣맘과 아저씨가 집에 돌아왔을 때, 막내 고양이는 작은 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캣맘은 조심스레 고양이를 받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작은 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묻혀 고양이의 입안을 헹궈주고, 몸에 묻은 먼지와 흙을 씻어냈다.

그리곤 마른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잠시 후, 거실로 나온 캣맘은 큰딸이 데워둔 우유를 작은 스푼으로 떠서 막내 고양이 입안에 조심조심 흘려보냈다. 배가 몹시 고팠는지 고양이는 조금씩 받아먹었다.


베란다 창문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허둥이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던 막내 고양이의 숨결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허둥이가 찜질방에 헐레벌떡 도착했을 땐 밤 11시 35분이었다. 지둥이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오냐?”

살짝 얄밉지만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냥이는 사료를 듬뿍 담은 그릇을 툭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허둥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오늘 겪은 일을 쏟아냈다. 막내 고양이 이야기, 펜싱 소녀, 그리고 세 고양이의 마지막까지.

지둥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냥이도 슬며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벽시계는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둥이와 지둥이의 배에서 동시에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지만 둘은 오늘만큼은 사료가 당기지 않았다.


둘이 벌칙방을 힐끗거리며 그냥이를 바라보자,

그냥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사료 그릇을 들고 갔다. 잠시 뒤, 작은 접시 두 개가 테이블에 툭 던져졌다.


“앗! 고등어다.”

그냥이가 말했다.

“10분 남았다!”

허둥이와 지둥이는 잽싸게 앞발로 고등어를 끌어당겨 살코기부터 뼈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댕~ 댕~ 댕~

괘종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12시다.”

지둥이는 꼬리를 말고 계단 쪽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허둥이는 입에 고등어 가시 하나를 문 채 멀어지는 지둥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자…”


그렇게 기묘한 찜질방의 두 번째 밤이 조용히 저물었다.




* 본문에 삽입된 이미지는 직접 작성한 프롬프트를 바탕으로 제작된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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