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베트남 끼엠마을 / 하이난 거리>
“오빠··· 나, 두 달 동안··· 꽃이 피지 않았어요.”
뚜엣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말은, 규의 심장에 단숨에 가시처럼 박혔다.
규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뜨거운 덩어리 탓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규는 탄을 떠올렸다.
지금 뚜엣의 뱃속에 자라고 있을,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을 아기.
규는 먹먹한 숨을 삼켰다.
고개를 들어, 어둑어둑 저무는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사이로 작은 별 하나가 깜빡였다.
그 별을 향해, 그리고 뚜엣을 향해, 규는 속삭였다.
“뚜엣! 네가 피우지 못한 꽃은··· 내가 꼭 대신 피워줄게.”
그것은 비극적 결말을 알고 있는 남자의 처절한 사랑이었다.
뚜엣은 살짝 웃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아래, 그녀는 빛을 머금은 듯 투명해 보였다.
그러나—그 빛은 머지않아 어둠에 지워질 운명이었다.
6개월 후··· 뚜엣은 죽는다.
규는 입술을 꼭 다문 채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순간까지라도 뚜엣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자.’
“뚜엣.”
“응, 오빠?”
규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다음주 비번 때··· 우리 하이난 거리 가자.”
뚜엣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정말요?”
“응. 우리 데이트하자.”
뚜엣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붉혔다.
“린이랑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랑 가는 건, 처음이에요.”
“그럼 가는 김에, 린도 같이 보자. 내 동료들도 같이 갈 거야. 김 병장, 함 상병, 그리고 김 일병··· 다들 재밌는 사람들이야.”
규는 문득, ‘장하사 새끼 또 린 괴롭히러 간다’며 떠들던 김 일병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그가 웃자, 뚜엣도 따라 웃었다.
방금 전까지 긴장으로 굳어 있던 표정에, 따뜻한 햇살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리고, 둘은 꼭 잡았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 * *
햇살이 환하게 쏟아진 토요일 아침.
부대 정문 앞은 벌써부터 들썩였다.
병사들은 손에 외출증을 든 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드디어 비번이네. 이게 몇 주 만이냐.”
김창열 병장이 모자챙을 털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옆엔 함돈혁 상병, 김정수 일병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오늘은 운 좋게, 분대원 넷이 동시에 비번을 받았다.
규는 일단 따로 움직이겠다며 미리 양해를 구해 두었다.
“오늘 느낌이 좋아! 예쁜 아가씨랑 눈 맞을 것 같아!”
함 상병이 눈을 반쯤 감고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능글맞게 말했다.
“됐고! 일단 한 잔 빨자. 간뎅이에 버짐 피겠다.”
김 병장이 짧게 내뱉자 함 상병과 김 일병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 일병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오늘 그동안 이름만 들어본 ‘린’이 있는 립스틱 클럽에 간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세 사람은 오전 9시, 정문을 나섰다.
규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낮 12시.
그 전까지는 셋이 따로 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셋은 시끄럽게 떠들며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작은 펍에서 맥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