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하이난 거리>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섰을 때 뚜엣은 머리를 살짝 숙인 채, 규의 팔에 조심스레 손끝을 걸쳤다.
햇살에 빛나는 그녀의 손등이 규의 심장을 콕콕 찔렀다.
“오빠, 여긴 정말 활기차요.”
“응. 여기는 다 살아 있어. 사람도, 냄새도, 시간도.”
규의 대답에 뚜엣은 눈을 반짝였다.
“야, 박 병장.”
김 병장이 슬쩍 다가와 규의 어깨를 툭 쳤다.
“너 말야. 뚜엣한테 말 했냐?”
“뭘?”
“너 허리 부실한 거!”
“··· 뭐?”
규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자 함 상병이 바로 거들었다.
“맞다. 맞다. 지난번에 사격 훈련할 때 허리 삐끗했잖아요.”
“맞어라! 지두 봤당게라~”
김 일병은 양손을 머리 위로 들며 과장스런 제스처를 취했다.
“총 들고 일어나려다 끄응~ 하면서 주저앉던 모습. 크으~ 저는 박 병장님 허리 부러진 줄···”
함 상병이 낄낄대며 던졌고, 김 병장이 바로 받아 부풀렸다.
“두 말하면 잔소리!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우리 박 병장이 근성은 있는데 근육이 없어, 근육이···”
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뚜엣을 슬쩍 봤다.
뚜엣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규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 땐 갑자기 비가 와서 미끄러진 거야.”
“아, 그래, 어련하시겠어~”
“허리가 미끄덩~”
“미끄럼주의 표지판 부착해야겠어요!”
죽이 척척 맞는 셋이 던지고 받고 때리면서 낄낄댔다.
그리고 덥석-
김 병장이 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무리 봐도 뚜엣이 아깝단 말이지··· 어때? 나한테 양보하는 게?”
“떽! 아들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차차! 내가 유부남이었지··· 아이구! 양헌아, 아빠가 미안허다~”
김 병장의 넉살에 뚜엣은 얼굴이 빨개져 발끝으로 모래를 툭툭 찼다.
그리고 수줍게 말했다.
“저는··· 우리 오빠가 제일 좋아요.”
햇빛 아래 살짝 붉어진 볼, 깃털처럼 흔들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숨을 멎게 만드는 눈부신 미소.
규는 심장이 뛰는 걸 숨기려는 듯 모자를 눌러 썼다.
즐겁게 웃고 떠들다 보니 벌써 오후 세 시.
규는 뚜엣에게 손목에 찬 시계를 보여줬고, 뚜엣이 쾌활하게 말했다.
“린 보러 가요. 우리~”
잠시 후 그들은 하이난 거리 끝 골목, 빛바랜 간판이 달린 건물 앞에 섰다.
SON MÔI ĐỎ. 립스틱 클럽.
창문은 바람에 흔들렸고, 문 옆엔 반쯤 벗겨진 포스터들이 달랑거렸다.
“여기가 린이 일한다는 데야?”
규가 묻자 뚜엣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문틈으로 낮은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자, 들어가자.”
규가 앞장서서 문을 밀었다.
끼이익— 립스틱 클럽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클럽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클럽 안 한켠—
바의 끝자락 스툴에 한 여자가 마네킹처럼 앉아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얇은 치마, 붉은 입술···.
그녀는 뚜엣을 보자 벌떡 일어나 넘어질 듯이 달려왔다.
“뚜엣! 여기까지 웬일이야?”
희미한 조명 아래 뚜엣과 린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눈빛이 마주친 순간, 둘의 가슴에 묻어뒀던 눈물이 터졌다.
“린···”
“뚜엣···”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어떤 인사도,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오직, 서로 살아 있다는 감촉이면 충분했다.
잠시 후 뚜엣과 포옹을 푼 린의 눈길이 규와 김 일병을 스쳤다.
김 일병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숨이 멎었고 심장이 흔들렸다.
조금 늦게 들어온 김 병장과 함 상병도 평소와 다르게 쭈뼛댔다.
그 순간 뚜엣이 몸을 돌려 말했다.
“제 친구 린이에요.”
김 병장이 흠흠~ 헛기침을 했고, 함 상병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클럽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은 여섯 명.
테이블 위에는 맥주 몇 병과 간단한 안주가 놓였다.
린은 말없이 컵에 따른 맥주를 마셨고, 뚜엣은 술 대신 따뜻한 차를 마셨다.
조명이 은은하게 번지는 클럽 안은 이상하리만치 그들뿐이었다.
린이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눈가의 미세한 떨림은, 무언가 감춰진 얘기가 시작될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술병이 몇 개 더 비워지고, 클럽 안엔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빈 공간을 잔잔한 음악과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가 채웠다.
린은 가만히, 잔을 내려다보았다.
입술이 잔 위로 닿기 직전,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탁자 건너 김 일병을 바라봤다.
김 일병은 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뚜엣이 살짝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린··· 괜찮아?”
린이 살짝 웃었다.
뚜엣은 알고 있었다.
린이 오늘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